내일 또 만나는 친구

by 배진화

올해 4학년이 된, 첫째의 참관수업 날이다. 아이들이 총총거리며 오갔을 통학로를 오랜만에 걸었다. 반은 초록으로 반은 노랑으로 물든 잎사귀들을 보니 시간의 흐름을 실감했다. 새 학년 첫날, 등교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보고 서 있던 때가 엊그제 같으니 말이다.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교실은 설렘과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요즘은 전자칠판이라 클릭 한 번에 글과 그림이 펼쳐졌다. 어린 시절 당번의 기억이 떠올랐다.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이 써놓은 필기를 지우고 몽땅한 분필들을 정리하고 창문 밖으로 흰 가루가 폴폴 날리는 지우개를 털었다. 잊을만하면 손에 가시가 들게 한 나무 책상과 의자, 그 와중에 홈을 파서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는 아이들도 있었다. 교실 바닥은 또 얼마나 정갈한가. 왁스와 천 걸레를 들고 다니며 광을 내던 시대를 지나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오늘의 주제는 고마운 사람에게 편지 쓰기였다. 부모님 또는 선생님께, 할머니나 형, 동생에게 말로 다하지 못한 인사를 전했는데, 국군 아저씨나 김구 선생에게 편지를 써온 아이들도 있었다. 딸은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함께하던 단짝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서로를 알게 된 것이 무척이나 행운이고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다정함이 듬뿍 담긴 글보다 와닿은 것은 편지의 제목이었다. ‘내일 또 만나는 친구’. 40대의 반을 넘어서고 보니 만나는 것보다 헤어지는 일이 익숙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보다 연락처의 이름을 정리하는 일이 자연스러운데, 내일을 당연하게 약속하는 친구라니 뭉클하게 다가왔다. 오지 않은 날을 기대로 만들어 주는 사람이 있어서 아이는 행복한 시절을 지나고 있구나.

일본영화 <황색눈물>에 좋아하는 대사가 나온다. “인생을 앞에 두고 단지 허둥대기만 하는 무능한 그리고 가련한 청춘이지만 지금 이마에 첫 주름이 생길 즈음이 되어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인생에 대한 신뢰이고, 동의이며, ‘친구, 너에 대한 것이라면 알고 있어.’라는 의미의 미소이다”
30년이 넘은 오랜 지기들에게 가장 자주 듣는 말이 “그럴 줄 알았다”다. 주로 놀릴 때 쓰는 말이지만 그만큼 예측이 되는 사이라는 뜻이기도 하니 우리에게는 돌발상황이 많지 않다. 설령 발생했다 하더라도 “어이구”한마디면 종료가 된다. 나는 즐거운 순간을 남기는 것을 좋아해서 수시로 카메라를 들이대는데 친구들은 투덜거리다가도 하나 둘 셋 소리에 얼른 포즈를 취한다. 그 모습이 재밌고, 따뜻하다. 구구절절하지 않아도 속속들이 아는 서로들, 당연하게 또 만나는 그들이 있어 나는 넉넉한 사람이다. 친구에게 고마움의 편지를 쓴 아이는 이미 넉넉한 분을 아는 것 같다. 다양한 이들과 두루 사귀는 것도 좋을 테지만, 결이 닮은 친구와 걸음을 맞추어 오래 걷는 것도 행복이다.
발표를 끝내고 들어가는 아이가 나를 뿌듯한 얼굴로 바라본다. 사는 동안 만남과 헤어짐은 끊임없이 반복되겠지만 지금처럼 비슷한 모양을 가진 사람을 발견하는 행운이 계속되길,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소중하게 대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길 하고 응원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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