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초록불이 아니다” 신랑이 내게 자주 하는 말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좋은 결과만 생각하고 돌진하는 버릇 때문에 나온 이야기다. 생각해 보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 크게 겁이 없고, 문제가 생기더라도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도와줄 거라는 기조가 있긴 한 것 같다. 잘못되어도 얻어 나올 것이 있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고 일단 가자! 를 외쳐대는 내게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사람은 정반대 성격의 신랑이다. 이 사람으로 말하자면 구명조끼에 튜브까지 두르고도 돌다리를 발로 열두 번을 툭툭댔다가 그것도 모자라 손으로 일일이 눌러보고 나서야 한 걸음씩 건너가는, 극 J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런 탓에 캔들을 배워보고 싶다 하면 “제사상에 올라가는 양초부터 만들어봐” 하고, 김밥집을 해볼까 하면 “소쿠리에 김밥을 이고 지하철 역 앞에 나가는 것부터 해봐”라며 찬물을 붓기 일쑤였다. 그에게 부정적이라고 푸념을 할라치면 긍정과 상관없이 인지기능의 문제라며 놀려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벌레를 극도로 싫어하는 내게 여름은 그야말로 쉐도우 복싱의 계절이다. 전방 30미터의 움직임도 귀신같이 알아채서 벌레가 나에게 올까 봐 온몸으로 공기를 휘저으며 다니거나 대화 중에 빛의 속도로 사라져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이사 온 집은 산 밑이라 각종 곤충이 대행진을 해댔다. 작게는 혹파리부터 시작해서 알락하늘소니 장수풍뎅이니 잠자리니...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게다가 저층이라 불빛을 보고 벌레들이 달려들까 봐 비싼 돈을 들여 커튼 라인에 설치한 간접조명은 켜보지도 못했다.
때마침, 아파트 게시판에 올라온 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미. 세. 방. 충. 망!!!!!!!
물구멍을 막아도 아침이면 창틀로 들어와 죽은 벌레들이 꽤나 있을 때였다. 이 방충망을 설치하면 벌레는 물론이고, 미세먼지도 막아줄 수 있어 온 가족의 호흡기질환 예방에도 좋다고 했다. 게다가 낚싯줄로 사용되는 모노필라멘트사로 만들어져 튼튼하고, 발수기능이 좋아 세척에도 용이하다는 것이다. 사실 45년 전통을 자랑하는 벌레 공포증(?) 자로서 미세방충망을 알아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당시 가격이 무려 백 단위가 넘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업체를 통해 신청을 하면 세탁실의 작은 창까지 모두 포함해서 삼십만 원대에 할 수 있다는 거였다. 두근두근 가슴이 벅차올랐다. 당장 이 방충망을 설치하여 날파리조차 얼씬 못하는 병충해 없는 집으로 만들고 싶었다. 나는 새벽까지 작업을 하고서 늦잠을 자고 있는 신랑의 곁으로 가, 이 기쁜 사실을 고했다.
잠결에도 그는 “싼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야....”라고 돌다리를 두들길 준비를 해댔다. 그러나 이미 그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었다.
“그럼 그거 설치한 집으로 가서 어떤지 확인해 봐야 되지 않을까?”
“모르는 사람의 집에 가서 방충망을 구경시켜 달라 하라고??!!” 아니 아니. 그럴 깜냥은 없지. 대신 그에게 채팅을 보내 대만족이라는 답변을 들은 상황이었다. 결국 신랑은 “하고 싶은 대로 해”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예쓰!!!!!!!!
며칠이 지났다.
드디어 미세 방충망님께서 우리 집으로 오시는 날이다. 사장님은 먼저 기존 방충망 틀을 다 떼어 가셨다. 뭐.. 새집이라서 방충망도 흠 하나 없이 탄탄하긴 했다. 잘 가라 철사여.
이윽고 촘촘히, 윤이 나는 블랙슈트를 걸친듯한 그분께서 등장하셨다. 괜스레 신랑과 나는 긴장이 되어 입을 굳게 다물고 침을 삼켰다. 철커덕철커덕.
안방 베란다의 방충망 하나가 설치되었다. 나는 떨리는 손길로 방충망을 쿡- 눌러보았다.
‘......................... 응??????.......................’.
가볍게 누르면 단단한 탄력감이 느껴질 줄 알았는데 흐물흐물, 손가락이 허공을 향해 한없이 나아갔다. “어... 이 느낌은.....”
눈치 빠른 신랑의 손도 방충망을 더듬었다.
‘스타킹인데?!’
침묵 속에서 동공지진을 일으키던 신랑의 눈이 뾰족해지고 있었다. 서느런 기류를 눈치챈 사장님이 갑자기 방충망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남의 거실 바닥이 물에 젖든 말든 물뿌리개를 뿌려대며 발수코팅이 어떻고 장황한 말들을 했지만 영혼이 탈출해 버린 나는 입꼬리를 히죽대고 있었다.
“저기.. 이 방충망이 혹시라도 찢어지면 어떻게 되나요?”
“아. 그러면 복구가 안 돼서 틀까지 새로 하셔야 해요”
“헛.. 허허허....”
사장님이 잔금을 입금하라며 계좌번호가 적힌 명함을 주고는 도망치듯 사라졌다. 신랑은 훽 얼굴을 돌려 사마귀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멀쩡한 방충망을 때다가 스타킹을 달아놨네!”
아 정말이지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나의 초록불이 남긴 우리 집 대 참사의 날이었다. 신랑은 윗집에서 혹시나 덜 끈 담배라도 던지면 우리 방충망이 다 불탈 거라는 둥.. 아이들이 장난감으로 금세 다 끊어 놓을 거라는 둥... 온갖 무시무시한 소리로 멘털을 흔들었다. 이건 정말 관속에 들어갈 때까지 가져갈 고통의 에피소드였다. 실로 오랜만에 우울의 그림자가 등짝에 오스스 달라붙었다. 미안하다는 말 대신 최대한 슬픈 표정을 지었다.
방충망을 설치한 지 5년이 흘렀다. 다행히 작은 올도 나가지 않았다. 이것으로 바꾸고 창틀에 보이는 죽은 벌레가 현저히 준 것도 사실이다. 발수인지 방수인지 모를 자가세척기능은 전혀 없는 것 같지만 그토록 거슬렸던 방충망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익숙해졌다. 신랑도 방충망에 대해서 무념무상이 된 지 오래다. 역시나 걱정도 한때다. 지나고 나면 어디가 얼마나 아팠는지도 가물해지고 만다. 그런 자국 몇 개쯤은 가지고 있어야 인간적이지.
회사를 다닐 때 동료가 별명을 배지나칭칭으로 지어주었다. “늘 신나 있잖아!”라며. 꽤나 그 별명이 마음에 들어서 20년이 넘은 지금도 어딜 가든 닉네임을 배지나칭칭으로 사용 중이다. 인생을 초록불로 생각하는 게 어때서 빨간불로 여기는 것보다 낫잖아.
“오랜만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껴봐”
작업 중인 신랑 옆에 앉아, 이 글을 읽어 주었다. 신랑이 낄낄낄 입꼬리를 올린다. 이쯤 되면 스타킹 방충망은 초록불이었다 할 수 있겠다. 거봐. 나 덕분에 심심할 틈이 없잖아. 그러니까 잘했다고 해. 백번 잘했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