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질 때까지만

by 배진화

베이지색 떡볶이 코트에 발그레한 머플러를 두른 연경이를 마주한 것이 처음 기억이다. 나는 80년 12월생이고 연경이는 81년 2월생이라 학교는 달라도 같은 학년을 보냈을 것이다. 내가 그녀를 “연경아”라고 부른 것은 확실한데 그녀가 내 이름을 부른 기억이 없어서 아마도 나를 언니라 불렀던 것 같다. 그럼에도 연경이는 키가 170cm 가까이나 되었기에, 말수가 적고 자주 고개를 끄덕였기에, 나보다 훨씬 그림을 잘 그렸기에 더 언니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그녀는 가까운 강 선배의 여자친구였다. 빈 강의실에서 소개를 받은 이후로 우리는 자주 함께했다. 연경이와 <Be the Reds!>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아시아드 경기장에서 찍은 사진을 좋아한다. 웬만해선 담백한 표정을 짓던 연경이도 그 사진에서만큼은 입꼬리를 올린 채 활짝 웃고 있다.

내 대학 시절의 8할은 모두 그들의 차지다. 강의가 끝나도 질문을 멈추지 않던 박선배, 목사님의 아들이면서도 마릴린 맨슨에 열광하던 윤선배, 모범생인 척하지만 누구보다 까지고 싶어 했던 강선배, 그리고 연경이. 만화과의 독수리 오형제라는 말이 그럴듯하게 어울리는 멤버들이었다.
우리는 주로 대학 앞 튀김카페라 불리던 좁은 다락방에서 분홍 소시지와 김치찌개를 앞에 두고, 눅진하게 밤을 태웠다. 학교에 양주를 들고 와 쉬는 시간마다 술을 권하는 괴짜도 있었지만 오형제는 소주 한 병이면 충분했다. 주로 영화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고, 오시이 마모루나 우라사와 나오키의 연출에 대해, 에반게리온의 비밀을 파헤치는 데 열을 올렸다. 말을 아꼈던 연경이도 이 주제만큼은 쉬지 않고 말을 이었다. 누군가는 오타쿠 같다고 웃어도 내게는 다락방에서의 시간들이 지금까지도 완벽한 낭만이다.

졸업작품전을 준비하던 밤도 생각난다. 윤선배 덕분에 취향과는 상관없이 밤새 강의실에 록 음악이 울려 퍼졌다. 선배는 그날의 풍경을 필름 카메라에 담았는데, 현상하고 보니 눈을 감은 채 웃고 있는 얼굴이라든가, 빗나간 구도로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두 사람, 책상을 붙여놓고 쭈글 하게 잠든 모습 등 디지털카메라였다면 당연히 삭제되었을 사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쓸모없어 보였던 사진은 연경이가 사 온 간식들- 튀김우동, 프링글스, 게맛살.. 심지어 먹다 남은 쓰레기를 찍어놓은 것이었다. 먼 훗날, 그 사진 한 장이 밤늦도록 불이 켜져 있던 강의실을 끌고 와 가슴을 아리게 만들 줄은 꿈에도 모른 채 투덜댔던 기억이 난다.
작업보다 노는 일에 더 몰두하다, 몰려오는 잠을 밀어내기 위해 새벽을 쐰 날도 떠오른다. 먼 곳의 자동차가 파도 소리를 내며 어둠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선배들은 춥다며 호들갑을 떨었고, 나는 흙냄새가 개운하다는 연경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해가 뜨기 전 고요히 웅크린 파란 공기가 마치 우리를 닮은 것 같았던 시간- 이따금 어딘지 모를 길에 앉아 식은 한숨을 뱉을 때면, 그날의 새벽이 그립게 맴돈다.

다 함께 광안대교 위에서 새해를 맞이한 날은 잊을 수가 없다. 완전개통을 앞두고 있던 2003년 1월 1일, 부산시는 차량을 통제해 시민들이 대교를 걸어볼 수 있게 했다. 칼바람을 맞으면서도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연경이와 사진을 찍었다. 상기된 얼굴 위로 쏟아지는 금빛의 열기가 우리의 것인 줄만 알았던 아침. 졸업을 앞두고 있던 나는 취업 성공 같은 걸 소망했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같이 새해를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빌었던 것은 확실하다. 텅 빈 터널을 지나며 윤선배가 노래를 불렀다. 평소였다면 시끄럽다고 잔소리를 했을 테지만 그날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합창을 했더랬다. 음정 박자도 틀려먹은 노래가 요란하게 터널을 채웠다.


청춘의 연애가 그러하듯 연경이와 강선배도 이별을 맞이했다. 슬프지도 않은 영화를 보고 엔딩 크레디트가 끝나가도록 눈물을 훔치던 선배를 생각하면 나도 더 이상 연경이와 연락할 수가 없었다. 몇 년이 흘러 어느 출판사의 삽화를 함께 해보자고 연락이 온 그녀에게 거절의 말을 하고 밥 한번 먹자 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한참 더 시간이 지나 다시 연경이의 소식을 들었을 때는 나의 인사가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작업을 하다 책상 위에 엎드린 채로 잠을 자듯 갔다고 한다. 서른두 살- 누군가는 청첩장을 건네고 누군가는 합격 소식을 알리고 누군가는 월급턱을 내며 반짝거리고 있을 때, 연경이는 과로사라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다시 만날 일이 없다 하더라도 어딘가에 있는 것과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은 무게가 다르다. 가끔, 우연히 번화가에서 그녀와 마주치는 상상을 했었다. 당연하게 일어나 커튼을 걷고,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를 생각하고, 옷가게의 쇼윈도를 진지하게 훑으며 지나가거나 우리가 좋아했던 지브리 영화를 챙겨보고 있을 거라고- 뒤늦게 연경이의 흔적을 찾던 나는 기어이 목이 메고 말았다. 그녀의 블로그 메인에 어딘가 멋쩍게 웃고 있는, 우리와 함께 하던 시절의 사진이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멘트와 함께-
빈틈투성이었던 나를 우정으로, 꿈으로 채워 넣던 시절. 머물던 곳은 늘 허름한 다락방이었어도 허기지지 않았던 그때. 온종일 하찮은 것을 이야기해도 하찮지 않았던 시간들 속에 연경이가 있었다. 그녀가 떠나고 가득 차 있던 청춘의 한 구석에 그을린 구멍이 생겼다.


봄날에 꽃들이 썰물처럼 밀려왔다가 이내 떠나간다. 연경이의 이름에는 아지랑이가 아물거리는 봄의 경치라는 뜻도 담겨 있다. 그러고 보니 벚꽃이 꼭 연경이 같다. 그녀가 영영 떠나버린 탓에 아예 잊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짧은 봄이 오면 연경이 생각이 스친다. 그녀가 보고 싶은 것인지 그때의 내가 그리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
벚꽃이 다 떨어지고 나면 금세 여름이 올 테지.
그게 너이든 나이든, 꽃이 질 때까지만 마음껏 애틋해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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