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을 읽고 쓰는 짧은 에세이
https://www.hani.co.kr/arti/animalpeople/human_animal/1142654.html
안경을 쓴 한 남자가 "거울의 집"이라고 이름 붙여진 어트랙션에 들어간다. 남자는 콧수염을 기르고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개에게 티켓을 주고, "거울의 집" 안으로 들어간다. "거울의 집"에는 다양한 거울이 늘어서 있고, 남자는 세로로 긴 거울과 가로로 긴 거울을 보고 즐거워한다. 그러나 거울이 보여주는 상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남자는 소파에 앉아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고, 빨랫감을 들고서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면서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이런 걸 거울이 보여준다고? 남자는 당혹스러워한다. 앞으로 계속 걸어가면서 남자는 가방을 메고 걸어가는 자신의 모습, 한 손을 아래 방향으로 쭉 뻗는 자신의 모습, 두 팔을 활짝 벌려서 누군가를 맞이하는 자신의 모습을 응시한다. 마지막으로 남자는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가, 자신 옆으로 온 '누군가'에게 방어적이지 않은 진실한 미소를 보여주고 있다. 남자는 거울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빗방울? 이 남자의 배경으로 지나간다. "거울의 집"을 즐기고 밖으로 나온 남자는 머리를 긁으면서 어딘가로 돌아간다. 그 모습을, 아까 본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개가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다.
만화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만화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은 뭐가 있을까?
나는 가끔 대사가 없는 만화에서, 대사가 존재하는 만화들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혹은 읽는다)
이 만화에는 대사가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제목이 가리키는 것처럼, 남자가 거울의 집에 자발적으로 들어가서 "거울치료"를 받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그렇다면 남자는 거울 속에서 왜 자신을 보게 된 걸까? 추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거울의 집"을 지키고 서 있는 것이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개이기 때문이다. 남자를 보는 거울은 인간의 시점이 아니라 개의 시점을 표상한다. 개는 사람과 산책을 나갈 때마다 사람의 얼굴을 주의 깊게 본다. 개는 인간에게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다. 인간이 개를 통해, 개의 투명한 눈을 통해서 자신을 바라보려고 시도한다. 그럴 때 인간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느낀다.
인간과 개는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소통하는 건 아니다. 남자는 거울에 비쳐진 자기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무엇을 느끼는가. 소통의 대상이 아닌 주인은, 오직 개에게 사랑받을 뿐이다. 레비나스의 말처럼, 얼굴visage을 통해 다가오는 타자는 인식과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받는 대상이다. 남자는 자신이 사랑의 대상, 좀 더 나아가면 사랑을 주고받는 능동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빗방울들이 상징하는 건 깨달음의 순간이라고 볼 수 있겠다) "거울의 집"을 나오면서 남자는 개에게 조금 더 충실할 것을 다짐한다. 그렇다. 나는 만화 속에서 이연수 작가의 말을 듣는다. 아주 가끔, 나도 고양이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