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자렛과 임윤찬, 사물놀이의 즐거움
2024년 8월은 역대급으로 더웠던 달로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모두가 무더위 앞에서 힘을 못 쓰고 있다. 이렇게 덥다면 실내에서 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 실내에서 오랜 시간을 작업하기 위해서는, 집중을 위한 좋은 음악들이 당연히 필요하다.
7월 말부터 클래식과 재즈, 제이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었다. 내가 들은 앨범 중에서 언급하고 싶은 앨범이 몇 가지 있어서,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었다.
배경이 전부 날아간 흑백 사진의 앨범 자켓은 키스 자렛 트리오의 내재적이고 내면적인 '쿨함'을 대변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사진의 가운데에 서 있는 자렛이 뒤를 돌아보면서 짓는 표정은 "쿨하다"라는 술어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등을 돌리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서 튀어나온 저 표정을 바라보자. 자렛은 뒤를 돌아보았을 때 필름 사진을 찍은 카메라맨에게 입을 작게 열어서 뭐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혹은, 자렛은 셔터를 누르는 카메라맨의 태도에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그저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이 앨범 자켓이 ECM Records의 미니멀리즘과 차가운 추상이라는 컨셉에 걸맞는 자켓이라는 거다.
첫 번째 곡 "It Could Happen to You"부터 치고 나오는 연주는 흠 잡을 데가 없다. 이어지는 "Never Let Me Go"는 도쿄의 바에서 흘러나올 법한 모범적인 재즈 음악이다. 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라고 해서 배경 음악으로 소비되기에는 연주가 너무나 감미롭다. 피아노의 선율이 감미로울 뿐만 아니라, 피아노를 뒤에서 충실하게 받쳐 주는 드럼과 베이스도 수준급이다. 키스 자렛 트리오의 연주는 재즈 음악이 빠질 진부함을 거부하고 있다. 그들의 장기는 96년 도쿄의 연주에서도 빛이 난다.
7번 트랙 "Autumn Leaves"는 자유롭게 그리는 추상화, 붓과 나이프를 들고 즐겁게 그리는 그림을 보는 것만 같다. 세 사람의 연주는 호흡이 척척 맞는다. 중간중간 음악의 향락을 이기지 못하고 분출해 나오는 자렛의 괴성은 또 어떤가. 자렛을 처음 듣는 사람들이라면 기겁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Autumn Leaves"의 연주 속에서 자렛의 동물적인 목소리는 연주와 잘 어우러진다. 내가 96년에 도쿄에 살았다면, 자렛 트리오의 연주를 듣기 위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티켓을 구했을 것이다. 재즈 클럽의 담배 냄새와 요리에서 솟아 오르는 증기, 사람들이 조용히 이야기하는 대화까지, 재즈 클럽 안의 분위기를 재현하기 위해서 ECM은 최고 수준의 녹음 장비를 사용했다. 박수 소리가 종종 올라올 때마다 나는 96년의 도쿄에 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제법 안타깝게 생각한다.
무척이나 심플하고 쿨한 앨범 자켓이다. 하얀색 배경 위에 연주자들의 이름이 산세리프 고딕체로 적혀 있다.
오스트리아의 색소폰 연주자인 볼프강 푸슈닉과 레드 썬, 김덕수의 사물놀이, 린다 샤록이다.
앨범 제목도 단순하다. 그 뒤에 백호가 온다고? 여기에는 어떤 뜻이 숨겨져 있을까. 알고 보니까 영어 가사 중에서 "청룡이 오고 그 뒤에 백호가 온다"라는 가사가 있다. 거기서 빌려 온 제목이다. 이국적이다.
사물놀이 풍물패의 진가를 발견한 사람이 오스트리아 사람이라는 점에 놀랄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이들의 연주를 들어 보면 단순히 우리의 전통음악을 서양의 재즈 음악과 퓨전한 결과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앨범을 여는 첫 트랙 "난장(Nanjang)"부터 날카로워서 예사롭지 않다. 색소폰과 장구, 꽹과리 소리가 매우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실제로 '난장'을 피우고 있지만 감상자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어서, 소리가 탁하거나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3번 트랙 "길근악"과 4번 트랙 "Hear Them Say"도 퓨전 재즈들이 갖는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9번, 10번 트랙 "풀하우스(Full House)"는 동양의 전통적인 소리들, 북과 장구들이 내는 소리와 색소폰이 들어오는 소리, 남자의 창이 한데 모여서 음악의 전주비빔밥을 뚝딱 만들어내고 있다. 내지르는 창은 날카로우며,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락 보컬의 샤우팅처럼 들린다.
고등학생이던 시절부터 대학교에서 인문학 수업을 듣던 시절까지 나는 "푸른 눈의 서양인"이라는 말을 자주 보았고, 그렇게 교수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나중에 가서 알게 된 사실은 눈동자가 파란색인 "푸른 눈의 서양인"은 그 숫자가 적다는 것이었다. 또한, 한국의 전통 문화를 발굴해 낸 것도 한국 사람들이 아니라 한국에 관심이 있어서 찾아온 서양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말도 유행했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쓴 책 『오리엔탈리즘』에서 처음 쓰였던 그 어휘는, 원래 하나의 이론과 지식 체계로 굳어진 동양에 대한 서구적인 이해 방식, 또는 서양인의 관점을 의미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어휘는 동양에 대한 서양인의 가치평가를 거부하는 방향으로도 사용이 되었다. 그러나 '오리엔탈리즘'은 문화가 전혀 다른 서양인들이 해가 먼저 뜨는 나라를 이해하기 위해서 거기에 의존해야 했던 하나의 안경이자, 창문이었다.
전 세계의 문화가 섞여서 용광로 속에서 재창조되는 2024년에, 동양과 서양이라는 구분은 문화적인 관점에서 볼 때 예전 만큼 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사람들이 미국 힙합과 팝을 소비한다고 해서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서양인들이 한국 케이팝을 소비한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이러한 다문화 공생 사회의 실천으로서 위 앨범을 듣는다면, 우리는 앨범의 퀄리티에 놀랄 뿐만 아니라 30년 전부터 새로운 시도를 해 온 선구자들이 있었다는 것에도 놀라지 않을까 싶다.
3. 임윤찬 at BBC Proms,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제5번 "황제"
유튜브를 통해서 들어 주시기를 바란다. 연주는 2024년 7월 29일에 런던의 로열 앨버트홀에서 이루어졌다.
임윤찬은 이미 2022년에 광주 심포니 오케스트라(지휘자 홍석원)와 함께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황제"를 협연한 적이 있다. 이 연주는 이후에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베토벤, 윤이상, 바버 (Beethoven, Isang Yun, Barber)]라는 제목으로 발매되기도 했다. DG의 레코딩 퀄리티는 따로 칭찬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이 있는데, 임윤찬이 앵콜을 위해서 스크랴빈을 연주했다는 사실이다. BBC Proms 연주에서는, 앵콜을 위해서 바흐의 시칠리아노를 연주했다.
그 어떤 오케스트라가 온다고 해서 임윤찬의 연주를 100%로, 완벽하게 받쳐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풀 컨디션의 베를린 필이라면 가능할 것 같다), BBC의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최대한 임윤찬의 연주를 뒷받침하려고 노력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다. 날아가는 독수리를 따라 잡으려는 인간의 시도처럼. 임윤찬의 연주는 2악장 아다지오에서 물이 오른 피아니즘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3악장으로 넘어가면서, "Rondo: Allegro ma non troppo"에서는 2년 전의 연주보다는 약간 천천히, 유려하게 시작한다. 물이 흐르듯이 새로운 악장이 시작되고, 오케스트라가 적절한 타이밍에 치고 들어와서 연주를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어떻게 이런 연주가 나왔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뛰어난 연주이면서도 동시에 모든 게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계속적으로 반복해서 듣고 싶으면서도, 그와 함께 아껴서 듣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8월에는 다양한 장르의 많은 앨범을 들을 예정이다. 이런 다채로운 앨범들과 함께라면, 이번 여름도 건강하게 무사히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모두 더위 조심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