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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테크리스토르 Apr 20. 2020

자녀들은 의외로 부모에 대해 아는 게 없다.

- 아이들에게 부모의 어린 시절 실수담 들려주기가 필요한 이유

할머니께서 손자들의 피아노 발표회를 대견해 하신 이유


아들들아,

피아노 학원을 다니던 너희 두 아들의 발표회 날이었다.

긴장된 표정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시작한 너희의 모습을 나는 흐뭇하게 보고 있었다.

"잘 하죠?"

손자들의 발표회 소식을 들으시고 구경 오셨던 너희 할머니께 자랑하듯 여쭈었다.
할머니께선 짧고 단호한 답을 나즈막히 읊조리셨다.

"애비보다 낫구만."




그래, 

너희 아들들도 잘 알다시피 아빠도 초등학생 시절 피아노를 배웠었다.

내 기억으로는 꽤 오랜 기간 친 것 같은데, 너희도 아다시피 지금 아빠는 도레미파솔라시도 만을 겨우 짚는다.

물론, 연주가 가능한 곡은 없구나.

총각 시절이었던 것 같다.

TV에서 남자 배우가 멋지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말했지.

"아, 남자가 피아노 저렇게 앉아서 치면 되게 멋있는데... 아, 나도 피아노 계속 치게 하지. 그랬음 지금도 꽤 쳤을 텐데..."

옆에서 과일을 깎고 계시던 너희의 할머니께선 아빠를 물끄러미 바라 보셨다.

"왜요? 야단을 쳐서라도 좀 가르쳤어야죠..."

그날 할머니께선 아빠만 모르고 있었던 비밀을 말씀해 주셨다.

열심히 피아노를 배우고 있던 초딩시절의 아빠를 흐뭇하게 생각하셨던 할머니는 어느 날 피아노학원 원장님의 상담 요청을 받으셨단다.

무슨 콩쿨이라도 내보내잔 얘길 하려나 싶어 피아노학원을 찾은 어머니께 원장님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꺼내 놓으셨다 한다.

"어머님, 피아노 그만 가르치시죠..."
"왜요? 우리 애가 무슨 말썽이라도.."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무슨..."
"어머님, 가르쳐도... 진도가 안 나갑니다. 재능이 영..."

그렇다.

아빠는 피아노에 영 재능이 없는 둔재였던 것이다. 혹은 취미가 없거나 재미가 없었을지도...

너희들의 연주 모습을 보며 퍽 감동스러 하시던 할머니를 보며 아빠의 피아노에 관한 흑역사가 떠올라 아빠는 더더욱 감동스러웠단다.

연주회를 마친 너희에게 할머니께선 그 재능이 아비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강조하셨었지.

"아휴~~ 잘했어. 너무너무 잘 쳐서 할머니가 깜짝 놀랐어. 아빠는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웠는데도 지금 하나도 못 치잖니."

너희들은 이런 할머니의 반응을 덤덤히 받았다.
"알아요. 아빠 가르쳐도 진도 안나가서 그만두라고 했다면서요. 하하하"

그렇다.
나는 너희가 피아노를 처음 시작할 무렵, 이미 나의 과거를 이미 너희에게 털어 놓았다.
부끄러운 과거일 수 있으나, 사람은 누구나 다른 재능을 타고 난 것이니 각자의 달란트를 활용하면 그만인 것이라 얘기했었다.

그러니 재미가 없어지거나 하기가 싫어지면 억지로는 하지말고 엄마나 아빠에게 이야기하라 했었다.

너희는 아빠가 자기들만할 때 피아노학원에 다니기 싫어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무척 신기해 했다.
그리고, 학원 원장님의 권고로 피아노를 그만 두었다는 사실조차도 재밌어 했다.

아니, 통쾌해 했다.

아빠도 하기 싫은 일이 있는 사람이고, 아빠도 못하는 게 있다는 사실에 너희는 의외로 기뻐하고 즐거워 했다.




아들아, 세상의 3대 거짓말이라는 걸 들어본 적 있니?.

노처녀가 결혼하지 않을 거라 말하는 일, 노인이 얼른 죽었음 좋겠다 말하는 일, 장사하는 사람이 밑지고 파는 거라 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지.

그러나 내가 이보다 더 흔한 거짓말이라 여기는 말이 있다.

세상의 모든 부모가 자녀들에게 하는 거짓말, 그건 바로
"아빠는(엄마는) 너만할 때 안 그랬어." 다.

왜 안그랬을까, 어떻게 안그럴 수 있었을까.

너희도 아다시피 아이들은 다 실수하고 실패하며 큰다.

사실 아이들의 실수와 실패를 더 무겁고 부담스럽게 만드는 건, 전적으로 난 안 그랬는데 넌 누굴 닮아 그 모양이냐 구라를 치는 부모들이다.

우리 부모는 완전하고 완벽했었다는데, 왜 나는 이모양이지 하는 자책이 아이를 멍들고 주눅들게 하곤 하지.




위대한 인물보다 부모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더 와닿는 이유



아들들아,

아이들이 한글을 뗄 나이가 되면 대개의 부모들은 위인들의 전기를 많이 읽히곤 한단다.

자신들의 아이들이 그 위대한 인물처럼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지.

그들의 삶을 통해 배우고 닮아가길 바라는 마음이지.
내가 읽은 위인전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백범 김구 선생의 자서전인 백범일지였다.

그의 삶이 훌륭해서, 위대해서라기 보다는 이 책에서 선생  스스로 자신의 흠을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담했던 동학운동에서의 좌절, 상놈 집안의 자손이라는 컴플렉스 등 백범은 그 책에서 자신을 포장하려 애쓰지 않았다.

위인은 대개 사람들에 입에 오르내리는 동안 신화가 되어 범접하지 못할 인간으로 추앙 받는다.

아이들은 위인전을 읽으며 그 위인이 어떤 어떤 행적을 쌓아 위대한 인물이 되었는지를 묻지 않아도 열거할 만큼 주르르 외우곤 하지.

물론 너희들은 백원짜리 동전을 보여주며 "이순신 장군이 발명한게 뭐지?" 라고 묻던 아빠에게 "백원짜리 동전?" 이란 답으로 숨을 막히게 해 준 적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안타깝게도 그 위인들은 너희같은 아이들에게 살아가며 마주치는 인생의 문제,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할 곁이 되어 주진 못한다.
왜냐하면, 그 위인들이 해결했던 문제들은 너무도 숭고하고 위대해서, 그런 구국의 문제와 쉽사리 마주하기 어려운 보통의 아이들이 범접하기란 쉽지 않기 떄문이란다.

피아노 진도 따라잡기가 버거워서 힘들어하는 어린아이에게 이순신장군이 12척의 배로 수백여 척의 왜군을 물리친 교훈은 위로를 주기 어렵지 않겠니?

아이들에게는 자신들의 문제를 가장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아이가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의 이야기가 필요하단 얘기이기도 하다.

그 아이를 꼭 닮은 채로 앞선 인생을 살았을 부모의 이야기가 필요한거다.

바로 그 아이 때, 그 아이의 유전자와 가장 닮은 자신의 부모가 어떤 생각과 어떤 문제와 어떤 고민 때문에 힘들어하고, 눈물짓고, 좌절하고, 어떻게 이를 극복했는지가 아이에겐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구나.

너만할 때 무엇이 무서웠는지, 무엇이 하기 싫었는지, 무엇이 좋았는지, 무엇이 속상했었는지, 무엇을 실수하고 무엇을 실패했었는지, 그리고 그걸 어떻게 이겨냈는지 부모의 이야기를 자녀에게 들려주면 어떨까 싶다.

우리 엄마, 아빠도 그랬었구나 하는 안도가 아이를 힘나게 할 것이다.

부모로서의 위엄이 안 선다고?

아이는 부모의 삶을 보고 배우며 자란다.  

부모가 실패하고 실수하는 것보다 그걸 어떻게 이기고 열심히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를 고스란히 곁에서 보는 사람이 아이다.

너희도 엄마 아빠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며 자라는 것처럼 말이다.

분명히 공부 잘 못 했을 것 같은데, 아빠는 엄마는 너만할 때 그렇게 공부 안하지 않았다고 말해 봐야 아이는 신뢰하지 않는다.

그럼 난 누굴 닮아 이 모양인가 하겠지.

아이에게 친자감별의 유혹을 던져 주지 않으려면 솔직히 부모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게 필요하다.

아이는 비로소 기댈 곁을 찾아, 자신이 힘들고 어려워하는 일들이 무언지를, 좋아하고 꿈꾸는 일이 무언지를 부모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할 것이다.

부모가 자신에게 얘기 해 줬듯이.


아빠는 지금도 피아노 치는 너희들의 모습을 진심으로 부러워 하며 존경의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어렵지 않다. 

진심이니까...

아빠가 못했던 것들을 해내는 너희들에게 바치는 칭찬이 진심인 걸 믿게 하려면,

아빠가 못했던 과거를 너희가 알아야 한다.

그래야 아빠의 칭찬이 진심인 것을 너희들이 믿고 스스로 자부심을 갖게 될테니까.

지적질보다 쉬운 이 진솔한 과거 고백이 가져다 주는 행복은 실로 크단다.

아빠에게도 너희에게도 말이다.

오늘도 아빠는 헤드폰을 낀 채 전자피아노 건반을 뚱땅거리며 앉아있는 너희들의 풍경에 눙물을 찔끔하곤 한다.

아빠를 넘어선, 극복한 너의의 성장이 아빠는 너무 기쁘다.

진도 잘 나가는 너희가 진심 대견하다. 



의외로 아이들은 생각보다 자신의 부모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알려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신화가 되면, 아이는 좌절부터 배우기 십상이다.

과거를 포장 말고, 다 까자. 시원하게... 


아빠 어렸을 땐 안 그랬어...라는 세상 세상 세상 그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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