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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테크리스토르 Mar 03. 2019

비를 잊은 당신은 충분히 메마르다

- 미세먼지 가득한 날 그리는 봄 비에 대한 목마름

#끄적이는하루 


@몬테크리스토르 

"산성비가 해로운 물질을 방출한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그게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끼지 못해.
비가 내리면 사람들은 우산을 들고 빗속을 걷는 낭만 대신에 차를 선택하지.
그리고 그 때문에 더 많은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거야."  


- 김지원 <런던 디자인산책> 중에서.





아이들에게 우산과 장화는 비와 함께 놀기 위한 장비다. 오해해선 안된다.


"비 온다."
어릴 적엔 그랬다.
비가 내리면 우산을 들고, 장화를 찾아 신고 물 첨벙이를 하며 즐거워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체육 수업은 단연 비 오는 날 했던 축구 시합이었다.

빗물이 고여 곳곳에 웅덩이 진 운동장은 거침없는 슬라이딩을 날려도 마치 천연잔디구장마냥 수 미터씩이나 몸을 미끄러지게 해 주었다. 

다음 수업 시간에 젖은 속옷 차림으로 앉아 있다가 선생님께 꿀밤을 먹어도 마냥 즐거웠던 날이 비 오는 날의 체육 시간이었다.

선생님들께서도 감기 들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걱정은 하셨어도, 철없는 녀석들이라 생각없는 녀석들이라 나무라지 않으셨다.
간혹 가다가 "좋을 때다."라는 부러움?(?) 섞인 혼잣말을 남기시는 선생님도 계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 시절, 비가 내려서 좋았던 이유는 그저 좋았기 때문이었다.

비가 내려 좋은 이유만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비가 두렵지 않아서 행복하고 즐거웠다.



어느새 비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하염없이 내리는 것 외엔 별 것 없어 보이던 비.

사람들은 최근들어 이 비에게 이전에 없는 능력을 부여해 냈다.

비는 옷을 젖게 하고, 머리를 빠지게 하고, 도로를 막히게 하고, 교통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심지어는 하루에도 수 십, 수백, 수천 개의 우산이 분실되고 재구매되는 경제 활동을 일으키기도 하며, 이로 인한 서로의 부주의를 비난하고 힐책하는 사이에 가정 불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비는 그저 하염없이 내리기만 하는데, 사람들은 비를 맞아 들이지 않고 막아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땅을 파고 물을 채우는 일은 자연과 교감하는 본능적인 일이다.  메마르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이다.


아이들을 놀이터나 시골의 흙 바닥 또는 해변에서 놀게 하면,  십중 팔구는 땅을 판다.

그리고, 그 구덩이에 물을 날라다 부어 채운다.

뭐 재밌는 놀이겠냐 싶지만, 아이들은 물이 마르는 꼴을 못 본다.
저희들끼리 소리를 질러 가며 빨리 물을 떠오라 호통을 치며 땅을 파고 물을 채운다.

부모들은 옷이 더러워지고 운동화에 흙 들어간다며 질겁을 하고 말려대지만, 아이들은 옷, 운동화 따위엔 관심이 없다.  

그들은 마치 그 일이 위기에 빠진 지구를 구하는 일인양 심각하게 땅을 파고 물을 채운다.

아이들이 어른보다 더 작은 것에도 행복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철이 없어서가 아니다.
쓸 데 없는 두려움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만들어 내는 두려움은 세상을 메마르게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비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우산을 쓰게 하고, 우비를 씌우고, 장화를 신긴다.
그러나 아이들은 비를 마음껏 맞기 위해 우산을 쓰고, 우비를 입고, 장화를 신는다.

메마른 어른들이 아이들을 비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흙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그리고, 아이들까지 메마르게 만든다.

메마른 세상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일은 결단코 불행하다.

비를 두려워하는 세상은 충분히 메마르다.

충분히 메마른 세상이 이를 적셔줄 촉촉히 내리는 비를 두려워 하는 아이러니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비를 잊은 당신은 이미 충분히 메마르다.  
내리는 비를 함유된 유해물질로 바라보는 우리의 시대는 이미 충분히 메마르다.






어른들은 비 막으려 우산 쓰고,

아이들은 비 맞으려 우산 쓴다.

비 막으면 메마르고,

비 맞으면 자라난다.


#런던디자인산책

#비 #비내리는날의모습 


#끄적이는하루 


@몬테크리스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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