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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테크리스토르 Aug 09. 2023

님아, 그 두부를 버리지 마오.

- 감옥에서 출소하는 이에게 두부를 먹이는 전통은 왜 생겼을까

교도소에서 13년 복역 후 출소한 금자씨에게 

전도사가 두부를 내민다. 


"두부처럼 깨끗하게 살라고 주는 것이에요." 


금자씨는 이 두부를 엎어 버리며 말한다. 


"너나 잘 하세요."
 


영화는 못 봤더라도 이 대사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한 장면이다.

금자씨는 두부를 외면한 채 출소하자마자 복수극을 벌이지만,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선 딸이 내민 두부 모양의 케이크에 얼굴을 묻으며 새 삶을 다짐한다. 

두부…왜 그...모양의 케이크였을까?

감옥에서 출소하는 이에게 건네는 두부엔 '음식' 이상의 의미가 있다. 더 알아보기로 하자...


 
 

왜 사람들은 교도소에서 나오면 두부를 먹게 되었을까?

얼마 전, 한국산 두부가 미국인의 식탁을 장악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미국인도, 일본인도, 코스타리카인도, 세계 각국의 다른 사람들도 감옥 갔다 오면 두부를 먹을까?

감옥 갔다 오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한국산 두부를 먹는 그런 날을 꿈꾸며....(음... 응?)

자, 두부의 세계를 들여다 보기로 하자.




두부의 기원(紀原)


두부의 발생지는 중국이다. 

하지만, 서양에선 두부를 일본식 발음인 TOFU(토후,とうふ)라고 부른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지만 일본을 통해 서양에 정착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두부의 탄생 설화에는 여러가지 설(設)이 있지만, 중국 저장성(浙江省) 일대에 살던 락의(樂毅)라는 효자가 두부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유력하게 전해져 온다. 

부모가 연로하여 이가 좋지 않아 콩을 못 씹는 것을 보고, 락의는 콩을 부셔 가루로 만든 다음 먹기 쉽도록 콩국을 만들어드리고 있었다.

콩국을 끓이던 어느날, 락의는 간을 맞추기 위해 소금을 붓는다는 것이 잘못해서 많은 양의 소금을 들이 붓고 말았다. 



그런데 그 다음날 솥 안을 들여다 보니 신기하게도 콩국이 젤 상태로 굳어 있었던 거다.

마음은 효심이 가득했으나 사실은 편한 걸 즐거워 했던 락의는, 그 후로 더 이상 콩국을 매번 끓이지 않고

두부를 만들어 두었다가 필요할 때 부모님께 드릴 수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전설을 넘어 상당히 신빙성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두부를 만들 때 응고를 시키기 위해 간수로 염화마그네슘이나 염화칼슘을 사용하는데, 염화나트륨인 소금도 비슷한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역사가 가장 깊은 것으로 알려진 강릉 초당두부는 독특한 자연의 맛을 내기 위해 지금도 간수로 1급 바닷물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부는 크든 작든 한 덩어리가 한 모다. 



"두부 한 모 주세요."


나는 어릴 때 우리집 두부 사오기 담당이었다.

한 모 사 올 때 당당하게 외치던 목소리는 반 모를 사와야 할 땐 조그맣게 기어들어 갔었다. 

재래시장에서 파는 두부는 보통 크기가 엇비슷한데, 마트에서 파는 포장 두부는 다 사이즈가 다르다.

두부 한 모 주세요 할 때의 그 한 모는 두부를 세는 단위죠인데,  ‘모’는 말 그대로 각진 네모 형태의 두부를 말한다.

마트에서 파는 각기 다른 크기의 100g, 300g, 340g, 380g, 500g 짜리 두부 모두 크기는 달라도 네모 반듯한 형태면 다 한 모라고 부른다.

우리 나라에서 만들어지는 두부의 모판은 네모 형태여서 우리는 늘 네모난 두부를 먹지만, 샐러드에 주로 두부를 넣어 먹는 서양에선 동그란 두부, 소시지 모양 두부, 심지어는 동물 모양의 두부도 판다.




두부는 고려 말 당시, 가장 교류가 빈번하였던 원나라로부터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전래 초기에는 단백질 섭취가 어려운 스님들에 의해 불교사찰 음식으로 사랑을 받았고, 조선시대에는 두부제조법이 더욱 발달해서 『세종실록』에는 명나라 황제가 조선에서 온 여인들은 각종 식품제조에 뛰어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두부를 잘 만든다고 칭찬하였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두부는 그 곳에서도 많은 인기를 누렸는데, 그 중 가장 맛있고 전통 있는 두부로는 일본 고지시의 ‘당인두부’를 꼽습니다. 

이 당인두부는 임진왜란 때 납치돼 가서 그곳에 살았던 경주성장 박호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의 사람들에게 두부는 고기를 대체할 수 있는 좋은 단백질 섭취 음식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일반인들과 비교해 형편없는 식단을 제공받았던 옛날 시대의 감옥 재소자들에겐 더더욱....



요즘이야 가끔 급식이나 구내식당이 열악한 사람들이 아씨, 어떻게 밥이 교도소 식단보다도 못해… 라고 말할 만큼 요즘 재소자들에 대한 복지가 좋아졌지만, 예전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의 재소자들은 감옥 생활에 몸이 약해진 상태로 출소하는 것이 당연했었다.

그래서 영양학 전문가들은 출소 후에 두부를 먹는 것이 흰 두부처럼 너도 이제 깨끗한 삶을 살아라 라는 상징적 의미 외에도 두부가 가진 영양학적ㆍ역사적 의미도 있다고 말한다.


두부에는 단백질을 비롯해서 지방, 탄수화물, 필수 아미노산과 함께 뇌 세포의 대사기능을 촉진시키고 불안감 해소 효과가 있는 가바(GABA)라는 성분이 들어있다. 

또한 콩의 섬유질은 물에 녹지 않지만 두부는 수용성으로 체내 흡수가 잘 되기 때문에, 산모들이 출산 후 두부를 먹으면 기질이 많은 미역국을 먹듯이 갇혀 지내며 약해진 체력을 단시간 내 복원시켜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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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두부를 출소하는 재소자들에게 먹이는 전통이 생긴 것은, 아픈 우리의 과거사와 무관하지 않다.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을 하던 수많은 애국지사와 무고한 사람들이 경찰서와 형무소에 잡혀 갔다가 

옥고를 치르고 나오는 일들이 잦았다.

가뜩이나 영양이 부족한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에 갖은 고초를 겪으며 춥고 배고픈 옥고를 치렀으니,

밖에서 기다리던 가족들은 감옥에 갇힌 사랑하는 사람의 출소 시기가 다가오면 가장 먼저 그의 건강을 확인하는 일이 시급한 일이었다.

더구나 일제는 투옥되어 있던 애국지사들에게 제대로 된 식사를 제공하지 않아서 출소 후 굶주린 상태에서 갑자기 음식을 먹다가 체해서 죽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는데, 이런 이유로 출소하는 이들에겐 영양분이 많고 소화가 잘되는 두부를 주게 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일제시대 이후 출소시에 두부를 먹이는 풍경들이 점차 많아졌다고 하니, 하얗고 따뜻한 한 모의 두부는 어쩌면 힘없고 억울했던 민족의 아픔을 위로하며 우리 곁을 지켜온 음식인 셈이다. 

일제시대 옛 대전형무소 전경. 

출소 후에 두부를 먹이는 이유

출소하는 이에게 두부를 먹이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영상출처 : 영화 '바람' 중에서>


출소 후에 두부를 먹이는 이유, 또 다른 학설은 두부의 제조과정과 관련이 있다.

출소자들에게 두부를 먹이는 전통이 생기던 시절의 기술로는 두부를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때문에, 출소 후 먹는 두부는 출소자 인생에 있어서 두 번 다시 죄 짓지 말고 착하게 살라는 뜻, 다시는 그런 고초를 겪지 말라는 뜻이 담겨있다.

또 어떤 이들은 두부가 콩으로부터 만들어졌지만, 두부가 다시 콩이 될 수 없듯이,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두부처럼 새로운 삶을 살라는 의미로 두부를 먹이기 시작했다고도 말한다. 

참고로 미국의 재소자들은 감옥에 있다 나오면 핫도그를 먹는 전통이 있다고 하는데, 때문에 박찬욱 감독은 “<친절한 금자씨>의 그 두부 장면을 봤던 “해외 영화 팬들이 금자씨가 출소하는 날 두부를 먹이는 한국의 문화를 흥미로워 하더라” 며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의 두부 사랑을 언급한 적이 있다.


역사적으로 살펴봐도 두부는 옛날부터 사람들에게 좋은 체력회복제 역할을 해왔다. 

험한 산 속을 한 달 넘게 돌아다니는 심마니나 포수들에겐 두부가 참 좋은 영양제였다고 한다. 

특히 산세가 험해서 심마니나 포수들이 많이 활동했던 강원도에선 동해 바닷물로 만든 간수에 콩물을 타서 응고시켜 순두부 같은 형태로 섭취해 체력을 보강했다고 할 정도다.미국 두부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풀무원은 2022년 상반기에도 미국 두부 매출이 작년 동기 대비 11% 늘었다고 발표했다.

미국 식탁에 오르는 두부의 3/4이 한국의 풀무원 두부인 셈이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미국 내 건강에 신경 쓰는 소비자가 급증했고, 식물성 단백질 웰빙식품으로 두부가 주목받으며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 공장을 모두 가동해도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바야흐로, 서양에서도 두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두부가 꿈꾸는 미래


아이러니하게도 이 팬데믹 시대를 틈타 전세계의 가정에  파고든 것 중 하나가 OTT 서비스 기반의 한국 콘텐츠다. 

오징어게임으로 대표되는 한국 드라마, 영화 시장의 영향력 강화는 한국의 음식문화와 역사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을 늘리는데 큰영향을 끼쳤다.

이제는 '친절한 금자씨'에서처럼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장면 중 두부가 담고 있는 역사와 회한과 정(情)과 따스함의 정서가 세계인의 가정 안에 자연스레 전해질 날이 더 많아질 게 분명하다.

하루의 고단한 노동을 마친 노스캐롤라이나의 건설 노동자 제임스가 끓여먹는 된장찌개 안의 두부 한 조각, 오랜 마피아 조직 내의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고 새 삶을 꿈꾸며 감옥을 나서는 암흑가의 보스 카를로스가 아내에게서 건네 받는 두부 한 모, 두바이 5성급 호텔의 메인 레스토랑 수석 셰프인 

오늘은 따뜻한 두부 한 모 썰어 넣고 보글보글 끓인 된장찌개를 먹어 봐야겠다.



한국인의 마음과 역사를 담은 두부가,

세계인의 식탁에서 따뜻한 이야기의 소재와 마음이 담긴 음식으로서 사랑받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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