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몬테크리스토르 Nov 19. 2020

너는 왜 거기에 묻혀야 하는가

- 반려견 뭉치의 묘지를 돌아보며 

텃밭을 주로 드나드시는 내 어머니가 정성스레 묘표지석으로 주워다 고여놓으신 흰 대리석(?) 타일
배산임수, 명당의 기운을 고스란히 품은 나무 밑 뭉치의 묘



내 반려견 뭉치는 부모님 텃밭

밤나무 밑에 묻혔다.

가족의 추억이 담겨있고

그만큼 자주 드나드는 곳이다.



지난 주말에 그 곳을 찾았다가

문득,

정작 뭉치는

살아 생전 한번도

이 곳을 와 본 적 없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여긴 어디길래 왜 날 여기다 묻었지 하고

의아해 했을 뭉치 생각이 나서

아차 하고 미안했다.



살아 생전

같이 뛰놀던 공간으로 만들어 주지 못한게,

그래서 뭉치에게도 따뜻하고 익숙한 공간으로 기억하게 해 주지 못한게

조금 많이 미안했다.

그랬음 혼자 묻혀 있는 동안도 덜 외로와 했을텐데...



하지만,

죽음 뒤에 묻히는 곳이

대부분 낯선 곳이 되기 십상인

세상의 모든 생명들을 생각하곤

그만 미안해 하기로 했다.

나도 언젠간 그리 낯선 땅으로 돌아갈테니까...



그리운 뭉치 생각에 이 전직 개집사는

훈련이라곤 전혀 안 된...

앉아 엎드려 따위 다 무시하고

던져주는 간식에만 순종하던,

옆집 강아지 두 마리만 하염 없이 쓰다듬다 왔다.



문득, 

모든 생명이 묻힌 자리는

어쩌면 남은 자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함께 세월을 보낸 집사로서 미안했고,
마음껏 내 편한 곳을 찾았을 때 뭉치도 함께 추억할 수 있음에 겸연쩍게도 감사했다.



나도 세상 떠난 후,

내 사랑하는 이들이 자주 찾는 곳에 묻혀
나 때문 아닌 일로 그 곳을 찾았더라도

마침 내게도 들러 나를 추억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 

언제일지 모를 내 죽음 후를 기대할 수 있어 좋은 주말이었다. 



꽤 한동안 그랬었다.



오로지 추모의 마음으로 없는 예술혼을 끌어모아  직접 그린  일생의 역작 '잠든 뭉치'

@몬테크리스토르 &  뭉치


#그립다 #그리다 #그리워그린그림

#끄적이는하루 


매거진의 이전글 힘이 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