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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Jan 08. 2023

AI 녀석, 어딜 감히!

주말 내내 고민 중이다. 도대체 어떻게 옮겨야 “그래, 아직 AI는 멀었지, 어딜 감히 문학 번역을 넘보느냐!” 일갈할 수 있단 말인가.

본성이 우직하고 강직하고 정직하고 충직한 남자, 우리의 주인공 Simon. 세상의 평화와 정의를 위해 싸워야 하기 때문에 주변의 사사로운 일에는 마음 쓸 여유가 없다. 그런데 거참, 옆에서 친구라는 놈은 별 쓸데없는 이야기만 자꾸 늘어놓는다. 그래서 그냥 "음." "음." 정도로 예의만 차려 대답해 주는 참이다. 그러자 심통이 난 친구가 투덜거린다.

"어휴, 부모님이 네 이름 하나는 참 잘 지으셨어, Simple Simon."

Sim이라는 세 음절이 겹친다. 말장난을 살리면서도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는 심플한 성격이 드러나야 한다.


먼저 Simon이라는 이름에 어떤 의미가 담겨 지는 않은지 살펴보았다. 히브리어에서 유래했고, ‘듣다’ ‘경청하다라는 의미가 있었다. 저자가 의도한 것인지는   없지만 “네놈은 듣는 거냐 마는 거냐.” 하고 타박하는 상황이 절묘하다.

혹시 고리타분하고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이름은 아닌가, 어린 시절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는 이름은 아닌가, 이런 말장난이 나온 데에는  심오한 문화적 정서가 깔린 아닌가 싶어   알아보았다.


www.babycenter.com



그런 것 같진 않다. 아기 이름으로 사랑받고 있다.


www.babycenter.com


우리의 주인공이름마저 졌다니!


‘심플한 사이먼'이라고 옮기고 싶진 않다.

'심플' 이제 거의 외래어처럼 쓰이긴 하지만 아직 외래어가 아니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표현이라 하더라도 이왕이면 멋진 우리말로 옮기고 싶다. ㅅ이 겹치긴 하지만 말장난이라기엔 애매하기도 하다.


'단순한 사이먼'

직역을 해서는 말장난이 성립되지 않는다. 게다가 사람에게 쓸 때 단순하다는 표현은 '심플'과는 달리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그래서는 안 된다. 왜냐고? 주인공이니까.

게다가 사이먼은 세상을 구하는 큰일을 앞두고 있고 나는  캐릭터가 멋져 보이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는 중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만 보고 달리긴 하지만 단순한 사람은 아니다.


'사이코 사이먼' ‘사이다 사이먼' '사서 고생 사이먼' '사채업자 사이먼'(응?)

고민하다 보니 '사'로 시작하는 별의별 단어가 머릿속에서 날뛴다. 원작자가 뒷목 잡고 쓰러질 노릇이다. 이거다 싶은 표현은 아무리 해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좋다,  '' 시작할 필요는 없지. ''으로 압운을 맞추어도 된다.

'먼치킨 사이먼' 오, 신선한데? 하지만 딱 그뿐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키 크고 잘생기고 힘세고 강하고 성실하고 용감하고 책임감 강하고 사려 깊은 데다가 한 여자밖에 모르긴 하지만, 그렇다고 먼치킨 쪽은 아니다. 장르가 달라져 버린다.


'좋구먼 사이먼'

아, 이젠 개그까지.


그만하자. 이럴 땐 시간이 약이다.

잠시 커피 한 잔 마시고 다른 책 좀 읽고, 드라마도 보고, 수다라도 떨다 보면 갑자기 번개처럼 영감이 떠오를지 모른다. 잠시가 일주일이 될지도 모르지만 이대로 물러날 순 없다.


기다려라, 파파고. 인간의 능력을 보여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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