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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Feb 01. 2023

AI에게 소설을 쓰라고 해 보았다

ChatGPT가 쓴 소설, 그리고 번역

번역가는 AI에게 대체당할 직업의 상위에 있다. 산업 번역 분야에서는 이미 '기계 번역'으로 초벌을 하고, 인간 번역가나 번역 PM이 이를 감수, 수정하는 시스템도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출판 번역 쪽이어서 아직 체감되지는 않지만, 몇 년 후 번역계가 어떻게 바뀔지 생각하면 두려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번역가 모임에서도 ChatGPT 이야기로 시끌하다. 대화형 인공지능이라는 ChatGPT의 뛰어난 성능, 어느 기업이 얼마를 투자했더라는 소식, 구글이 몰락할 거라는 전망, 교육계의 우려, 뛰어난 한영 번역 기능으로 수려한 영작이 가능하더라는 정보, 하지만 한국어 언어 정보는 부족한지 아직 한국어로 대답하거나 번역을 하거나 작문을 하는 것은 부족하다는 얘기들까지.


베타 버전에 들어가 보았다. 코딩이니 자연어처리니 하는 기술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무지하지만 내 일의 존망이 걸린 문제니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삼십 년은 더 일하고 싶다면 욕심일까.


먼저 짧은 소설을 쓰라고 해 보았다. 호기심이 동하자 급한 마음에 생각나는 대로 아무 키워드나 넣었다. 지금 보니 AI에게 AI와 종말이라는 키워드를 준 것은 어디 한번 네놈 생각을 들어 보자 하는 무의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괜히 잘 노는 애들한테 강짜를 놓는 심술쟁이가 된 것 같아 헛웃음이 나온다.

커서가 깜박이더니 몇 초 되지 않아 짧은 글 한 편을 써냈다. 아무 망설임도, 고민도 없이 단어를 술술 뱉어 내는 커서를 보고 있으니 약간 소름이 돋았다.


ChatGPT의 짧은 소설


결과물은 소설이라기보다는 개요 수준이다. “새로운 건 없네. 어디서 많이 본 내용이다." 그랬더니 옆에서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던 딸아이가 "클리셰만 키워드로 잔뜩 줘 놓고 새로운 걸 바라면 안 된다”고 그런다. 으윽, 아프다. 나처럼 AI에 대한 경계심과 적대감이 없는 아이다. 할 말이 없다. 다음에 좀 더 시간을 들여서 ‘하늘 아래 새로운’ 키워드를 조합해 보아야겠다.


하지만 단순히 키워드만 넣는 방식보다는 인과를 따져 물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A가 B라는 행동을 했는데 심리학적 관점에서 그 이유가 무엇일 것 같으냐라든가 A라는 캐릭터의 성격, 배경, 기질 등이 이러이러한데 B라는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 같으냐라는 질문을 던지면 다양한 플롯의 조합을 엿볼 수 있을 듯하다.


더 깊게 파고드는 것은 다음번으로 미루고, 이제 궁금한 것은 번역이다. 먼저 ChatGPT의 글을 구글 번역기에 돌려 보았다. 역시 자동판매기 수준으로 즉석에서 번역문을 뽑아 준다.


구글 번역


첫 문장은 그럴싸하지만 이어지는 번역투, 딱딱하고 어색한 문장을 보자니 어쩔 수 없이 조금 마음이 놓인다. 번역가나 편집자의 손을 거치지 않고서는 내보일 수 없는 수준이다. 구글 번역의 한계다.


하지만 ChatGPT에게 ‘좀 더 문학적인 표현, 은유와 비유와 상징,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의 부사와 형용사를 사용하라’라고 요청하면 어떨까? 구글 번역기나 파파고와는 달리 ChatGPT의 장점은 인간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몇 번이고 퇴고를 거칠 수 있다는 점이니까.

먼저 ChatGPT에게 자신이 쓴 소설을 한국어로 번역해 달라고 요청했다.


번역을 하다가 포기했다


커서가 갈 길을 잃은 듯 십 초 정도 깜박이다가 한 문장을 쓰고, 다시 십 초 정도 버퍼링에 걸렸다가 한 문장을 써낸다. 그러다가 결국 중간에 끊겨 버렸다. 세 번 시도해 보았으나 마찬가지였다. 한국어 데이터는 아직 충분히 수집되지 않아서일까? 사실 가장 알고 싶은 기능이 영한 번역이었는데 아쉽다. 기계와 효과적으로 대화하는 법부터 파악하고 다시 실험해 보아야겠다.


이 와중에 “그중 한 명은 나쁜 과학자였습니다.”라는 번역은 어쩌다 나온 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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