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수입의 절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판도라의 상자

by 몽고메리

병원에 급하게 입원하면서 전달하지 못한 아버지의 휴대전화를 내가 잠시 가지고 있게 되었다.


작년에 새로 바뀐 전화에는 연락처에 저장기능이 되어 있지 않아서, 그냥 번호만으로 수신을 하게 되어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까운 가족들의 연락처를 저장해 드리면서 아빠의 휴대폰을 몇 가지 들여다보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최근 통화기록에 있는 내 번호가 그냥 번호로만 뜬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다.

연락처에 저장되니, 내 이름이 뜨면서 조금이나마 아빠가 전화를 받으실 때 편안해지실 것 같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그러다가 문자메시지에 자주 소통을 해 온 친한 지인이 있는 것 같어서 들여보다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충격 속에 지내시다가 재혼을 하게 되었다. 1년을 같이 사셨나? 몇 달 정도였나.... 그 정도를 함께 사시다가 함께 사시는 동안의 경제적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오셨고

10년이 넘게 별거를 하고 계셨다.

우리 형제들이 알고 있기로는 10년 넘게 연락이 그쪽과는 끊겨 있었다. 아빠가 이혼하겠다고 하셨고, 우리가 십시일반 필요한 소송비용을 드렸으나, 이후 아빠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서류를 정리하지 못하셨다.

그렇게 그분의 이름은 가끔 가족관계 증명서에만 나오고 우리 가족들의 기억 속에 잊혀 있었다.

사실 우리는 새어머니가 아버지의 유족 연금을 받고자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빠는 고집도 굉장히 세고,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은 절대 말을 하지 않으셔서 누구나 억지로 추궁할 수는 없었다...


이제는 은퇴한 지 10년이 넘었고, 70대 후반이 되어가는 아버지....

이상한 일은 항상 쉬지 않고 일을 하셨다. 아빠는 늘 일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하셨다. 꼭 일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직장이 없으면 나는 죽는다고 가볍게 할 수 있는 월 60만 원 혹은 100만 원 정도를 받을 수 있는 하루 몇 시간의 관공서의 일자리를 하고 계셨다. 어떨 때는 하루 3~4시간, 길어도 6시간 내외의 산책 겸해서 하는 일이어서 자식들도 말리지 않았다.


사실 아버지는 빈털터리이다.

재혼을 하셨을 때 무리하여 신축아파트를 대출부담을 안고 구입하셨고 별거를 하게 되면서 남은 대출 금액과 함께 집의 명의를 새어머니께 다 주고 나오셨다. 어느 정도의 대출 금액을 그쪽에서 부담한 것으로 알지만 아빠가 부담한 금액이 훨씬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원래는 공동명의였지만, 별거를 하며 따로 살게 되면서 거의 빈털터리가 된 상태로, 목돈은 다 그쪽으로 들어갔기에.... 그렇게 정리를 하고 나왔다.


아빠는 그 후 목돈이 없는 채 낡은 월세 아파트에서 계속 거주하셨다.

잘못된 재혼으로 인하여 거의 전 재산을 날리고, 그래도 아빠는 홀가분한 채로 살아가신 걸로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래도 공무원 퇴직 연금을 300만 원대 이상을 받고 계셔서(공직 생활을 40년 넘게 하셨다), 노인 일자리를 해서 또 약간의 수입이 있으셔서 아빠는 생활이 힘들지는 않으셔야 하는데 이상하게 돈이 없었다.


가끔 나에게 돈을 빌리셨는데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떤 때는 휴대폰 요금이 밀리기도 하셨다. 씀씀이도 굉장히 절약하시고, 전체적으로 검소하셔서 생활비가 그렇게 많이 들 수가 없는 생활패턴이신데 이상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아버지 연세에 봉사직도 하시고 항상 새벽같이 일어나셔서 열심히 사시는 모습은 정말 대단하시다는 말밖에는.....


그런데 이번에 아빠가 몸이 많이 아프면서 쓰러지게 되셨고 입원하면서 나는 모든 비밀을 알게 되었다.

휴대폰을 어쩌다 보게 되었는지, 차라리 몰랐다면 이렇게 충격을 받지는 않았을 텐데....



아빠는 서류상으로만 남아있는 줄 알았던 새어머니와 주기적으로 연락을 하고 있었다.

서로 안부를 정하면서 챙기고 있으셨다. 중요한 것은

생활비에 관련한 언급이다.

매월 25일에 공무원 퇴직연금이 입금이 되고, 매월 바로 전체 금액의 정확한 절반이.... 누군가에게 입금이 되고 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새어머니의 이름이 아닌 그 아들의 이름으로 돈이 보내지고 있다.


함께 살고 있지도 않고 가끔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그 가족들에게 빈털터리가 된 아버지의 남은 수입마저도 보내지고 있었다.

함께 살고 있지도 않고 아무런 아버지에 대한 보살핌도 없는 그 가족들에게_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이제 아버지는 쓰러지셔서 지병이 생기셔서 투병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말기질환이라서 잘 회복이 되어도 병원 다니시면서, 약을 타 드시고, 요양위주의 생활을 하셔야 한다.


사실 오빠와 나는 어느 정도의 생활기반을 이루고 있지만,

동생은 경제적으로 안정을 이루지 못했다. 실직도 했었고 하는 일들이 잘 풀리지 않아서 많이 어려운 생활을 계속해왔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빠는 만약 도와주신다면 어렵게 살고 있는 막내아들을 도와주지 않으시고 왜 잠깐의 인연을 맺어왔고 지금은 문자 정도 보내고 있는 별거 중인 새어머니가 그렇게 애틋하실까?


새어머니가 어렵게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잘 살고 있는 자식들도 있고

아빠가 주고 나온 신축아파트도 시세가 올라서 아빠보다 훨씬 여유롭게 살고 있다.


도저히 잘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지금의 결론은

아빠는 내적으로 마음의 안정을 둘 곳을 찾고 싶어 하고(정서적으로 기댈 곳)

수입의 절반을 주더라도 그쪽과의 인연을 끊고 싶어 하지 않으셨던 것으로 보인다.


나는 사실 이 상황들을 나만 알고 있고,

가족들에게 아직 알리지를 못하겠다. 형제들이 받을 충격도 있을 것 같고...

하지만 알려야 한다.


앞으로 아버지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고 먼저 말을 하기도 어렵고

아버지의 경제적인 선택을 내가 간섭할 수도 없다.

다만, 자신의 병원치료비조차도 그쪽으로 보내실 것 같고

자신의 이렇게 중한 병이라는 사실조차도 그쪽에 말을 못 하실 텐데...

(평상시 성향으로 인해, 자존심? )


딸로서 마음이 참 불편하다.

내가 아버지께 그동안.. 드린 용돈조차도 결국 그쪽으로 흘러간 결론이 이르게 되니....

우리 가족이 모두 호구가 되어버린 것 같다.


인생 참.... 어렵다.


매거진의 이전글추운 겨울, 아버지의 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