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 뭘 알겠어’, ‘청소년이 뭘 한다고’ 같은 편견에 저항하고 목소리를 낸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일부이긴 하나 청소년 참정권이 실현될 수 있었다. 이런 청소년 자치활동은 옥천 곳곳에도 숨어있다. 장장 6개월의 논의를 통해 생활규정을 바꾼 충북산업과학고등학교 사례가 그렇고, 몇 해 전 학교 축제에서 있었던 교직원의 성희롱 발언에 문제를 제기하며 공개사과까지 이끌어낸 옥천고등학교 학생들 이야기가 그렇다.
그리고, 오랫동안 지역 청소년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보여주며 폭넓은 자치활동을 이어온 ‘옥천신문 청소년기자단’이 있다. 2001년 태동한 옥천신문 청소년기자단은 2009년까지 명맥을 이어오다 중단되기도 했지만 2014년 부활의 신호탄을 올린 후 2017년과 2018년, 취재활동을 통해 청소년 자치의 좋은 예를 보여줬다.
월간 옥이네 3월호에서는 옥천신문 청소년기자단이 이어온 활동을 정리하고 당시 이 활동에 참여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모든 활동의 역사를 소개할 수는 없기에, 최근 지역사회 전반으로 기자단이 널리 알려지는 데 기여한 몇 가지를 중심으로 정리했다. 청소년기자단을 거쳐간 수많은 청소년 중 일부의 이야기만을 담는 것을 아쉬움으로 남기며. 언젠가 이들을 한 자리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려본다.
▮옥천 청소년이 말하는 옥천 이야기
옥천신문 청소년기자단이 지면을 통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2014년. 당시 옥천신문이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청소년 탐사보도 대회’가 침체기에 빠졌던 청소년기자단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었다. 40여 명의 청소년이 8개의 팀으로 나뉘어 약 두 달에 걸쳐 지역 곳곳을 누비며 직접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했는데, 무척 고무적인 성과를 낸 것. 이때 참가 청소년들의 관심이 얼마나 폭넓고 다양했는지는 이들이 작성한 기사 제목을 통해 엿볼 수 있다. △교육현장과 달리 가는 교육부 수학여행 정책 △옥천 청소년 10명 중 8명 ‘지역 독립운동사 모른다’ △우리고장 청소년, 즐길거리 찾아 타 지역 ‘원정’ △중학생 용돈 어디서? ··· ‘알바’보다 ‘부모님’ △옥천의 명물 포도·복숭아, 옥천에선 찬밥? △늘어만 가는 청소년 범죄, 옥천도 예외 아니다 △학교 매점 가격 ‘어째 좀 비싸다 했어’ △요즘 아이돌, 가족이 함께 보다간 ‘민망해져요’ 등.
지역 밀착형 주제가 대부분인데다 기사의 문제의식을 명확히 하기 위해 설문조사와 인터뷰, 현장 취재는 물론 담당부서 관계자를 직접 취재하고 대안이 될 다른 지역 사례를 함께 소개하는 등 ‘발로 뛴’ 기사로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았다. 열악한 청소년 문화공간 현실을 고발한 ‘우리고장 청소년, 즐길거리 찾아 타 지역 원정’ 기사는 후에 청소년수련관 시설 개선 사업을 이끌어내기도 해 실질적인 지역사회 변화를 불러오기도 했다.
이 활동은 잠자던 청소년기자단에 시동을 걸었다. 2015년 청소년기자단 재모집이 시작됐고 기자단 활동은 토론과 강연을 중심으로 꾸준히 진행되다 2017년 또 한 번 ‘폭탄’을 터뜨렸다. 신문 총 7면에 걸쳐 보도한 ‘청소년기자단, 청소년 참정권을 말하다(총 4회)’와 ‘청소년기자단, 역사를 만나다(총 3회)’ 시리즈가 그것. ‘청소년기자단, 청소년 참정권을 말하다’는 당시 대선과 함께 지역에서 청소년 참정권 관련 화두를 던져보기 위해 마련됐던 것. 청소년기자단은 연속 보도를 통해 △청소년 참정권에 대한 지역 청소년 인식 설문조사 △청소년 참정권 관련 전문가 인터뷰 △청소년 참정권 토론회 △청소년 자치를 실현하는 광주광역시 청소년 의회 현장을 소개했다.
‘청소년기자단, 역사를 만나다’에서는 △보은군에 거주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이옥선 할머니를 만나 인터뷰하고 보은에서 추진된 소녀상 건립 활동을 소개한 데 이어 △‘대한민국 작은 소녀상 건립 운동’을 주도한 이화여고 역사 동아리 ‘주먹도끼’ △직접 소녀상을 빚어 마을에 전시한 조각가 이원면 장찬리 송경숙 이장 등을 취재해 지역사회의 관심을 촉구하기도 했다. 청소년기자단의 보도는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고 지역신문발전위원회가 주최한 ‘2017 지역신문 컨퍼런스’에서 동상을 수상하는 등 지역사회 안팎으로 호평을 끌어냈다.
이듬해, 청소년기자단은 더욱 지역에 천착한 문제를 지면을 통해 끌어낸다.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진행된 옥천신문 선거보도에 청소년기자단이 결합, 청소년이 생각하는 문제를 선거 의제로 던진 것. 14주 동안 ‘청소년이 생각하는 지역에 필요한 정책’을 제안하는 인터뷰를 싣는가 하면, 군수와 교육감에게 보낼 정책 질의서 작성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고 실제 정책 질의서를 발송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어 군수 후보와 교육감 후보 정책 토론회에 직접 참석해 현장 질의를 하는 등 직접 후보들과 접촉하며 청소년이 제안한 정책이 반영될 수 있도록 힘을 실었다. 그야말로 청소년 자치가 실현되는 현장이 선거 기간 내내 이어졌던 것. 이를 바탕으로 지역 청소년 199명이 참여한 군수‧교육감 모의 투표를 실시, 기자단이 아닌 청소년에게도 선거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킬 수 있는 활동도 있었다. 2018년 청소년기자단의 지방선거 보도는 그해 열린 지역신문 컨퍼런스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활동의 성과를 공히 입증하기도 했다.
중학교 재학 시절 이 활동에 참여했던 박채은(옥천고2) 청소년기자는 “후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던 정책 토론회나 모의 투표를 통해 짧은 순간이지만 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다”며 “더불어 내가 살고 있는 옥천에 더욱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고 더 많은 친구들과 이런 자리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지면을 넘어가는 청소년기자단
청소년기자단의 자치 활동은 지면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청소년기자단 소속 학생들이 옥천군 청소년의회에서 △소규모학교 통학버스 지원 조례안 △청소년 교내 휴대전화 사용 조례안 등을 발의하는가 하면, 민선7기 옥천군 주요 사업 중 하나인 ‘아동친화도시’ 토론회 및 간담회에 꾸준히 참석하는 것 등이다. 뿐만 아니라 교내 문제에 대한 지적과 고발 역시 청소년기자단 소속 학생들의 활동이 있었기에 이어질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는 평가다.
물론, 그랬기에 청소년기자단 활동은 때로 외압(?)에 시달리기도 했다. 학교 관계자의 ‘청소년기자단 탈퇴 종용’ 같은, 웃지못할 일이 발생하기도 한 것. 중학생 때부터 청소년기자단 활동을 한 허정수(20) 씨는 “학교 시설이 부서진 것을 기사로 썼던 친구와 함께 교장실에 불려가는 일도 있었다”며 “지금은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이야기로 남았지만 청소년을 너무 어리게만 보고 스스로 사고할 수 없는 존재로 보는 것 같아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어 “기자단 활동을 통해 사회나 정치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었고 스스로도 자부심을 얻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옥천신문 이현경 취재부장은 이런 일련의 과정이 청소년 스스로 주체성을 회복하고 민주시민으로의 성장 의지를 키우는 시간이 됐다고 평한다. 이 취재부장은 “청소년들이 보도를 통해 지적한 문제가 해결되는 경험이 쌓여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우고 문제 해결의 의지도 키울 수 있었다”며 “청소년뿐 아니라 당시 선거 출마자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도 영향을 줬고 실제로 옥천군 청소년참여예산 같은 것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쉬움도 있다. ‘요즘 청소년만큼 바쁜 세대가 어딨겠냐’며 웃은 이 취재부장은 “2019년은 기자단 소속 학생들의 바쁜 일과로 ‘선거 보도 이후’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며 “현재 선출직들의 임기가 절반쯤 지난 상황이라, 앞으로 청소년 공약이행평가단을 운영해 공약 이행 정도와 내용을 평가하고 점검하는 활동을 이어가보면 어떨까 싶다”고 계획을 밝혔다.
월간 옥이네 2020년 3월호(VOL.33)
글 박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