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신문 청소년기자단 출신 청년 인터뷰
옥천신문 청소년기자단으로 활동했던 청소년들은 당시의 활동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청소년기자단, 청소년 참정권을 말하다’ 보도와 ‘청소년기자단, 역사를 만나다’를 비롯해 2018년 선거보도에 참여했던 박진희, 한채하, 한영순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회 문제 대하는 태도를 바꿔준”
한영순(21) 씨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18년, 청소년기자단 활동을 했던 한영순 씨는 청소년기자단 활동으로 진행된 선거 보도 외에도 당시 옥천신문이 개최한 교육감 후보 정책 토론회에서 지역 학교 통폐합에 대해 질의했던 일이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다. 그는 이후 교육감이 주재한 남부3군 학생 토론회에서도 ‘보은여고 통폐합 반대’ 의견을 뚜렷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이렇게 당당히 학교 통폐합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역시 학교 통폐합이 논의되던 학교의 학생이었던 데다 청소년기자단 활동을 통해 이 논의가 얼마나 비민주적으로 이루어지는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고2 때 저희 학교(청산고) 통폐합 얘기가 나왔어요. 학생들은 전혀 몰랐던 얘기였고요. 저는 당시 방송반이라 통폐합 설명회가 열렸던 청산중학교 강당에 방송설비를 가져다 주러가던 길이었는데, 거기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거예요. 뒤통수 맞는 느낌이었죠. ‘학교에 다니는 건 우리인데 왜 다른 사람들이 통폐합 얘기를 하는 거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결국 통폐합 논의는 중단됐지만, 학교와 관련된 일임에도 우리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것을 인식했던 사건이었어요.”
하지만 청소년기자단 활동은 이런 생각을 바꿔주는 계기가 됐다. 당시 통폐합 설명회 현장에서 옥천신문 이야기를 접한 후 자연스레 청소년기자단에 합류하게 됐는데 이때 약 1년의 활동 경험이 세상을 보는 시선을 바꿔놓았다고 영순 씨는 말한다.
“지방선거에서 청소년에게 필요한 정책을 찾기 위해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모여서 토론회를 하기도 했고요. 군수, 교육감 후보 모의 투표를 진행했던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죠. 무엇보다 우리끼리 서로의 생각을 서슴없이 말할 수 있고 그게 신문에 보도된다는 것, 그걸 통해 선거 출마자들이 우리 이야기에 귀기울여준다는 경험을 한 게 정말 좋았어요. 청소년기자단을 너무 늦게 알아서 고2 때에야 활동했다는 게 한스러울 정도로요.”
영순 씨는 기자단을 통해 사회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함께 공감하며 다양한 생각을 나눌 수 있었다고 말한다. 덕분에 얕게만 보던 것을 깊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렀고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태도를 바꿀 수 있었던 게 큰 성과로 남았다고.
“어떤 문제를 바라볼 때 결과만 보는 게 아니라 ‘왜, 무엇이’ 문제인지를 함께 보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됐죠.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를 가져오는 게 시간이 많이 걸리고 오래 기다려야 하는,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님도 알게 됐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어요. 많은 사람 앞에서 제 주장을 펼칠 수 있었던 것도 기자단 활동 덕분이고요. 기자단 경험은 앞으로도 제가 살아가는 데 있어 소중한 자산이 될 것 같아요.”
“내 생각의 길잡이, 청소년기자단”
박진희(22), 한채하(21) 씨
옥천고등학교 재학 시절 청소년기자단 활동을 했던 박진희, 한채하 씨는 기자단과 관련한 추억이 유독 많다. 기획보도 참여는 물론, 이런 활동을 통해 깨어난 열망(!)이 교내 다양한 활동으로 이어졌기 때문. ‘청소년기자단, 역사를 만나다’ 기획보도에 참여했던 채하 씨는 이후 ‘작은 소녀상 건립 운동’을 이끌었고, 진희 씨는 페미니즘 관련 내용을 담은 포스트잇 부착 운동을 펼친 일 등이 그것이다.
채하 씨가 참여한 옥천고등학교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는 학내의 반대 여론을 설득하기 위해 8개월여의 논의 과정을 거쳤다. 위치 선정 및 모금활동까지 합하면 장장 1년여의 시간이 걸린 끝에 2018년 전국에서는 215번째, 옥천에서는 첫 번째로 옥천고에 작은 소녀상이 세워지는 쾌거를 이뤄냈다. 진희 씨의 페미니즘 포스트잇 부착 운동은 말 그대로 페미니즘 관련 문구를 포스트잇에 붙여 교내 여자 교실, 여자 화장실 등에 붙였던 활동이다. ‘포스트잇을 붙인 주동자’를 색출하겠다는 남학생이 등장하는 등 심리적 위협이 가해지기도 했다고. 하지만 당시 학교 게시판에 관련 논쟁을 담은 대자보가 붙고 이를 둘러싼 토론이 이어진 것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의미 있는 일이 됐다.
두 사람은 기자단 활동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교내 운동이었다고 이를 평가한다.
“기자단 활동을 하면서 소녀상 건립 추진 운동이 있다는 것도 알았고, 페미니즘 강연도 듣게 됐죠. 청소년들은 신문 볼 시간도, 뉴스를 볼 시간도 없는데 기자단 활동을 통해 저희는 물론이고 주변 친구들에게까지 다양한 사회 문제를 알리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줬던 거 같아요. 청소년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주체가 돼 활동을 펼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2017년 옥천고 축제 중 발생한 교감의 성희롱 발언에 문제를 제기하고 공식사과를 이끈 것도 청소년기자단 활동을 했던 학생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당시 교감은 여장을 하고 무대에 오른 남학생들의 신체 일부를 만지거나 “예부터 며느리들은 엉덩이가 커야 아이를 잘 낳고, 가슴이 커야 젖이 잘나온다” 등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채하 씨는 “현장에 있던 학생들 대부분 불쾌하다는 반응이었고 어떤 친구는 울 정도로 충격을 받았던 일”이었다고 당시를 설명한다. 학교 안팎으로 논란이 번져가자 교감은 교내 방송을 통해 1차 사과를 했지만 이 역시 미흡하다는 학생들의 지적이 이어졌고 결국 학교 강당에 모인 전교생 앞에서 공개사과를 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됐다. 학교 측은 ‘일부 예민한 학생의 반발’ 정도로 이를 축소하려했지만 학생들의 명확한 지적과 사과 요구가 교내 문제를 바로잡았던 셈이다. 이뿐 아니라 학생들은, 성 고정관념을 강화시킬 수 있는 불필요한 행사를 주최한 학생회의 사과도 받아냈다.
진희 씨와 채하 씨 모두 이런 시간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기자가 꿈이라고 밝힌 채하 씨는 “기자단 활동을 하며 스스로의 생각을 말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으며 제 생각을 정리하고 확립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됐다”며 “동시에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자를 꿈꾸게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진희 씨 역시 “짧다면 짧은 사이에 제 시각과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며 “청소년기자단 활동 자체가 제 생각의 길잡이가 됐던 셈”이라고 말했다.
월간 옥이네 2020년 3월호(VOL.33)
글 박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