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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옥이네 Apr 16. 2020

나의 자리에서 4월을 기억한다는 것

세월호 참사, 제주 4·3항쟁 등 만화로 현대사 아픔 그리는 김홍모 작가

제주도에 유독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가 많다는 것은, 그를 만나기 위해 자료를 찾다 우연찮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제주 4·3 이후 국가의 억압을 피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제주 출신이 많았고 박정희‧전두환 정권이 이들을 간첩으로 몰아가면서 피해자 수가 유독 많다는 것이다. 


1990년대 학생운동으로 구치소 생활을 했던 이야기를 담은 만화 ‘좁은 방’을 보고 나서였기 때문인지, 제주도와 그의 인연이 심상치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국가폭력으로 대규모 희생자가 발생한 곳에 터를 잡고 만화를 그리는 이 역시 비슷한 억압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것, 그런 그가 제주 강정마을 투쟁(책 ‘섬과 섬을 잇다’ 중 ‘수눌멍 살게마씸’)과 4·3 항쟁(책 ‘빗창’)을 그리고 지금은 제주도에 사는 세월호 생존자 김동수 씨를 화자로 한 웹툰 ‘홀’로 당시 참사 현장을 다시 불러내고 있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닌 것 같았다.


‘잊지 않겠다’던 약속이 조금은 희미해져 가는 여섯 번째 봄, 제주의 푸른 바다와 하늘 아래서 김홍모 작가를 만났다. 그와 나눈 이야기를 간추려 지면에 담는다.


다시 4월,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이토록 많음을 되새기며, 이곳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는 딜리헙(https://dillyhub.com/)에서 연재되는 웹툰 ‘홀’과 최근 출간된 ‘빗창’으로 들어보자.

김홍모 작가  ‘떠날 수 없는 사람들’, ‘내가 살던 용산’ 등 철거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를 기획하고 작업했다. 1990년대 학생운동으로 수감된 구치소 생활을 담은 ‘좁은 방’, 한국 사회 민주화 과정에서 발생한 이슈를 담은 ‘빨간 약’을 비롯해 제주 지역 신화와 전설을 담은 ‘심마’ 등의 작품을 그렸다. 현재 제주도에 살며 세월호 참사를 다룬 웹툰 ‘홀’을 연재 중이다.




화물차 기사인 김동수 씨는 세월호 참사 당시 소방호스를 이용해 승객 20여명을 구조해 ‘파란 바지의 의인’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참사의 충격으로 그는 현재까지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다. 승객들을 구조하며 다친 어깨와 손가락 신경이 끊기는 등의 부상은, 그가 겪고 있는 정신적 스트레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지 모른다. 김홍모 작가의 ‘홀’은 그런 김동수 씨의 시각으로 세월호 참사를 다루고 있다.


▮‘홀’ 연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사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만화 기획은 오래 전 준비했던 것이었다. ‘내가 살던 용산’ 작업을 함께 했던 작가들과 당시 박근혜 정부 하에서 자행됐던 각종 사회적 불합리를 담은 만화 ‘빨간 약’을 진행하던 중이었는데, 그 와중에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빨간 약’ 출간 후 자연스레 세월호 참사에 대한 작업을 진행해보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그런데 또 사건이 터진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였다. 상황이 급격히 촛불정국으로 바뀌고 다들 광장으로, 거리로 나가 촛불을 드느라 세월호 참사 만화 진행은 일단 보류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다가, 문득 혼자만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하기로 했던 작가들도 사실 다 전국에 흩어져있는 상태라 모이기가 쉽지 않았고, 마침 제가 살고 있는 제주에 세월호 참사 생존자들이 거주하고 계시기도 해 그분들 이야기를 전해들을 일이 많았다. 이들이 트라우마로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지만 사실 제주도 안에서는 별다른 대책 없이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제가 할 수 있는 작업을 통해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준비기간만 2년 정도 걸렸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세월호 참사 자료를 찾아보는 건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다.


▮올해 2월부터 연재를 시작했는데, 연재처를 찾기 힘들었다고 들었다.

어차피 이런 무거운 내용의 웹툰은 기존 플랫폼에서 연재가 안 될 거라 충분히 예상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에서 연재하는 걸 생각했는데, 회당 분량이 많다보니 이것도 적합하지 않았다. 한 회 당 나오는 컷이 60컷 정도라 SNS용으로는 불가능하더라. 다시 연재처를 알아봤는데 역시나 다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어떤 웹툰 플랫폼에서는, 내부 편집회의를 통해 연재가 확정됐지만 마지막에 대표 선에서 최종 거절되기도 했다. 그때 들었던 얘기가 ‘한국에서는 이런 작품 연재할 플랫폼이 없을 거다’는 말이었다. 맞는 얘기다. 그래도 직접 듣게 되니 조금 절망스럽긴 했다(웃음). 다행히 이 과정에서 만난 편집자가 이 작품에 애정을 보여주며 백방으로 다른 플랫폼을 알아봐줬다. 그 분이 소개해준 곳이 지금 ‘홀’을 연재하고 있는 ‘딜리헙’이라는 독립 웹툰 플랫폼이다. 여기는 편집권이 작가에게 있어서 플랫폼 쪽에서 작품에 대해 뭐라 하지 않는다. 대신 고료는 없다(웃음). ‘홀’의 경우 처음에는 유료로 연재를 시작했다가 많은 사람이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4월까지는 무료로 연재 중이다.


'딜리헙'에서 연재 중인 '홀'의 한 장면


▮웹툰 플랫폼도 많고 정권도 바뀌었는데(웃음) ‘한국에서 이런 웹툰 연재할 플랫폼은 없을 것’이라는 말이 조금 의외다.

웹툰 플랫폼은 결국 다 ‘사업’이다. 돈이 되면 하고 돈이 안 되면 안 하는. 특히 요즘 웹툰은 게임화, 드라마화 하며 부가 수익을 창출하는 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홀’ 같은 리얼리즘 계열 웹툰은 환영받기 어렵다. 게다가 웹툰 산업 자체가 현재 하향세에 있다. 그렇다 보니 플랫폼들이 더욱 보수화되는 경향이 있다. 가급적 돈이 되는 쪽으로 가려고 하고, 정치적 부담도 지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직 연재 초반인데 독자들의 반응은 어떤가.

세월호 참사 자체가 워낙 무겁고 아픈 이야기인데다, 코로나19로 국가적 재난 상황이기도 하다 보니 보시는 분들이 더 힘들어하시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이 작품을 보신 분들은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주시려고 해서 감사할 따름이다. 처음부터 책 한 권 금액을 미리 후원하고 보는 분들도 계신다.



'수상한 집' 세월호 기억공간에 전시된 김동수 씨의 파란 바지와 구명조끼.



제주에는 김동수 씨를 포함해 세월호 참사 생존자 24명이 있다. 이들 대부분 김동수 씨처럼 화물트럭을 운전하며 세월호를 타고 뭍으로 오갔던 이들이다. 참사에서 살아남았지만 당시의 기억은 이들을 여전히 참사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다. 김동수 씨와 또 다른 김동수들을 지지하고 돕기 위한 모임이 지난 2월 제주에서 결성됐다. 일명 ‘제생지’, 제주 세월호 생존자를 지지하는 모임이다. 제생지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린 이들만 140여명. 제주뿐 아니라 육지에서도 이들의 모임에 연대하고 있는데, 김홍모 작가 역시 이 모임에 함께하고 있다.



▮제생지는 어떻게 결성됐는지 궁금하다.

‘수상한 집’이라고 제주도에서 간첩 혐의를 뒤집어쓰고 옥살이를 하신 분이 나오셔서 만든 공간이 있다. 그 위에 세월호 기억공간을 만들었고 거기서 김동수 씨 관련 전시도 한다. 수상한 집을 중심으로 제주도 세월호 기억공간 관계자, 원래 있던 제주도 세월호 생존자 모임 등이 함께 모여 꾸리게 됐다.


제주도 생존자들 중엔 트럭 운전사가 많다. 다들 트럭 운전해서 세월호 타고 육지로 왔다 갔다 했던 분들인데, 그 트럭이 세월호와 함께 침몰했다. 지금은 운전도 못하시고 일부 보상을 받긴 했지만 생활이 많이 힘든 상황이다. 다들 트라우마도 심각하다. 기본적인 일상생활도 영위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제주에 전문 치료기관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사실상 방치된 경우도 많다. 생존자들의 트라우마 치료 및 실질적인 생존 대책을 국가 차원에서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분들 이야기도 알리고, 그렇게 모여서 뭐라도 하다 보면 힘도 나지 않겠나 싶기도 했다. 그런 차원에서 동의하는 분들이 함께 모인 거다.



*수상한 집: 간첩조작 사건으로 1986년 7년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했던 강광보 씨의 옛 집 위에 지어진 간첩조작 피해자를 기념하기 위한 공간. 강광보 씨가 받은 국가배상금과 모금을 통해 비용을 모으고, 비영리단체 ‘지금여기에’가 기획해 만들었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삶을 기록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든 곳으로 이곳의 2.5층에 ‘세월호 기억공간’이 마련돼있다.



▮‘제생지’ 활동이나 이번 ‘홀’ 뿐 아니라, 이전부터 계속 사회 문제를 담은 작품을 그려왔다.

제가 특별히 정의로운 사람이라서 그런 건 아니고, 그저 남 얘기 같지 않아서 그렇다. ‘내가 사는 용산’의 경우, 용산 참사 관련한 여러 기사나 이야기가 있었지만 유가족 목소리가 그대로 담긴 건 없었다. 그런 부분을 고민하던 차에 진행했던 작업이었는데 책이 나온 후 용산 유가족들이 정말 좋아해주시더라. 아무래도 그분들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담았기 때문에 더 그랬던 거 같다. 이번에 김동수 씨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이야기도 아직 더 많이 나와야 하지만, 그보다 더 관심이 없는 게 생존자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생존자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여전히 많은 이가 모르기도 하고.


▮‘홀’을 준비하는 데만 2년의 시간이 걸렸다. 김동수 씨와 그 가족 인터뷰를 수차례 진행했다고 들었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면.

세월호 침몰 당시 사람들을 구조했던 김동수 씨 기억 중 일부가 사라져있다. 김동수 씨도 ‘아저씨, 이것 좀 잡아주세요’ 하는 목소리가 들려 잡아서 끌어올렸다는 것부터 기억을 하는데, 그 전 몇 분 정도의 기억이 전혀 없다고 하더라. 당시 CCTV 영상에는, 기억이 사라진 그 시간대에 김동수 씨가 다시 세월호에 들어가는 장면이 있다. 정신과 의사 말로는 그때 아주 충격적인 걸 봤던 거 같고 그게 너무 고통스러워 자기 방어로서의 기억상실이 아닌가 하더라. 저희 추측으로는 아마 그 안에 갇혀있는 학생들을 본 게 아닐까 싶다. 김동수 씨 둘째 딸이 당시 단원고 학생들과 같은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그렇다보니 더 자식 같은 마음이 들었을 것 같다.


참사에서 살아남았지만 트라우마 때문에 지금도 정서가 안정적이지 못하다. 자해도 여러 번 했는데, 첫 번째 자해를 첫째 딸이 발견했다. 첫째 딸이 화장실에 쓰러져있는 아빠를 발견하고 바로 119에 신고를 했다는데, 구급대가 도착하기 직전까지의 기억이 또 없다. 트라우마가 가족에게 전파되고 있는 건데, 저는 이게 참 무섭다고 느껴진다.


그래도 이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최대한 밝게 하려는 모습도 인상 깊었다. 그러다 결국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지만, 그렇게 힘을 내려 애쓰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낼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딸들도 아빠의 고통에 함께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워하기도 한다. 몇몇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지만, 둘째 딸은 자기도 아빠처럼 사람을 구하고 싶다고 응급구조학과에 진학했고, 지금은 대구 코로나19 현장에 가있다.



'수상한 집' 세월호 기억공간의 하늘로 난 작은 창에는 세월호 희생자가 가족과 주고받은 메신저 창이 재현돼있다.


▮홀 웹툰을 통해 바라는 바가 있다면.

크게는 두 가지다. 하나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알리는 것. 아직 아무 것도 규명된 것이 없지 않나. 왜 당시 현장에서 해경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까. 세월호에서 발견된 노트북 안의 국정원 관련 흔적은 뭘까. 검찰은 이것저것 잘 털던데 왜 세월호에 있어서는 가만히 방관하고 있을까. 여러 모로 이해되지 않는 것이 너무 많다.


그런데 공소시효는 1년 밖에 남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묻혀버린 거 같다. 그래서 이 만화가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홀’을 통해 세월호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


두 번째는 세월호 생존자들에 대한 얘기다. 생존자들이 아직도 많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알아주시면 좋겠다. 그러면 이들이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홀’도 그렇지만 제주 4·3이나 제주 해녀 항일운동, 강정마을 이야기 등의 소재를 갖고 작업을 하고 있다. 단순히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만화로 표현하는 수준이 아닌, 마주하기 힘든 무거운 이야기들 아닌가. 이 쉽지 않은 작업을 계속 해나가는 이유는 뭔가.

평화활동이나 환경운동을 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렇다 보니 마음이 안 쓰일 수가 없고, 결국 남 일이 아닌 내 일이 돼버린 것 같다. 이래서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웃음). 사실 제주도에 처음 왔을 때부터 제주의 항쟁-해녀 항쟁, 4·3항쟁, 강정해군기지 투쟁과 제2공항 건립반대 운동-을 주제로 작업해보고 싶었다.


제주 4·3 평화공원에 있는 동백꽃 조형물. 동백꽃은 제주 4·3 희생자들을 상징한다.


그가 이번에 작업한 제주 4·3 항쟁을 담은 ‘빗창’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기획하고 창비가 출간한 ‘만화로 보는 민주화 운동’ 시리즈 중 하나다. 김홍모 작가의 ‘빗창’과 함께 윤태호 작가 ‘사일구(4·19)’, 마영신 작가 ‘아무리 얘기해도(5·18 민주화운동)’, 유승하 작가 ‘1987 그날(6·10 민주항쟁)’ 등 총 4권이 4월 3일 정식 출간됐다.



▮트라우마가 전이되는 것 같다고 했는데, 그래서 더 작업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또, 조만간 제주 4·3을 다룬 ‘빗창’도 출간되는데, 이 작업들을 끝낸 소회가 궁금하다.

사실 일정이 꼬여서 ‘홀’ 시나리오 작업과 4·3항쟁을 다룬 ‘빗창’ 작업을 함께 진행했는데 그때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그림 그릴 땐 재미있는 드라마나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작업했다. 평소에는 가능한 좀 진지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이거 마치고 나면 다음 작품은 무조건 개그 만화를 하리라’, 그렇게 다짐했다.


4·3도, 여전히 사람들이 잘 모르는 거 같다. 4·3이 일어난 배경을 역사적인 맥락에서 함께 설명하면서 그 안의 개개인에게도 주목하려고 했다. 그래서 더 어려웠던 거 같은데, 아쉬움도 남지만 일단은 만족하려고 한다(웃음). 많은 사람이 보면 좋겠다. 4·3을 알게 되면 그 이후 4·19, 5·18, 6·10 등 한국 현대사가 왜 그렇게 고통스러웠나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4·3에 대한 규정이 ‘좌우익 간의 마찰 속에서 생긴 민간인 피해’ 이런 식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본질은 그게 아니다. 제주도 좌우익 진영 모두 다 분단에 반대했던 건데 미군정에 빌붙은 친일파들, 이승만 세력이 남한 단독정부를 밀고 나가면서 그 과정에서 제주도민들이 잔인하게 학살된 것 아니냐. 그때 제주도민들이 주되게 외친 구호 역시 ‘조국의 완전한 자주독립과 통일’이었다.


'수상한 집' 세월호 기억공간 한켠의 거울에 붙어있는 '가만히 있으라'



1990년대 학생운동을 하다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됐던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좁은 방’에서는, 묵묵히 막내아들의 학생 운동과 옥살이를 뒷바라지 하는 아버지 이야기가 나온다. 까맣게 그을리고 주름진 아버지의 모습은 몇 컷 등장하진 않지만, 시위 현장에 나와 있다는 아들의 전화에 ‘맨 앞에 서지만 말아라’ 정도의 말을 전하는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아있다.




▮‘좁은 방’에서는 덤덤하게 그려내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걱정이 크셨을 거 같다. 한편으로는 어렵게 대학에 보내놨더니 학생운동 한다고 나서는 아들을 혼내지 않고 지켜보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원래 저희 집이 굉장히 부자였다고 하더라. 아버지 집안이 순천 3대 갑부 중 하나였다는데 저는 가세가 완전히 기운 다음에 태어나서 사실 잘 모른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형들도 중학교, 고등학교 정도만 나온 상태였는데 ‘막내라도 보내자’ 해서 어려운 형편에 대학 진학까지 할 수 있었다. 근데 가서 데모를 했으니(웃음). 그래도 아버지가 4·19 때 머리 깎고 시위도 했던 경험이 있으시고 실제로 정치에 대해서도 저보다 훨씬 해박하셨다. 그런 데다, 제가 집안이 완전히 망한 다음에 태어나 꼬질꼬질하게 자랐으니 그게 아버지 입장에서는 많이 안쓰러우셨던 거 같다.


그래도 그렇게 가난했던 시절이 제 삶의 많은 것을 만들어줬다고 생각한다.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제가 그런 어려운 경험을 해봤기 때문 아니겠나. 철거민들 이야기나 김동수 씨, 김경배 씨(제주 제2공항 반대운동가) 일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학생 운동 당시 경험도 마찬가지고. 화염병에 돌멩이에 백골단에 분신정국에……. 그땐 늘 삶과 죽음을 생각했던 거 같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많았고. 선배 열사들의 삶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그게 지금까지 계속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물론 저에게도 이런 저런 한계가 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무래도 다음에도 ‘개그 만화’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니다. 꼭 개그 만화를 할 거다(웃음). 사실 ‘홀’이 끝나면 뭘 할까 고민을 해봤는데, 요즘 기후위기 문제가 심각하지 않나. 이건 진짜 모두의 문제인 건데. 제 딸이 이제 중1이 되는데, 딸아이가 살아갈 세상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고, 현재 코로나19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라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이 문제를 많은 사람들이 재밌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페이크 다큐(fake documentary,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허구의 상황을 실제처럼 가공한 영화) 형식으로 코믹하게 그려보고 싶다.


▮암울한 이야기지만 우리 사회가 쉽게 좋아지지 않을 것 같아 앞으로 그릴 이야기가 많으실 거 같다. 끝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이든 한 번에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 조금씩 차근차근,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서서히 변화가 오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여러 우여곡절이나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하다 보며 나아지리라는 믿음을 갖고.


사실 한국 만화 현실이 좋지 못하다. 1990년대 일본 만화가 들어오면서 한국 만화가 암흑기에 접어들었고 2000년대 웹툰이 유행하면서 다시 부흥기를 맞나 했지만 지금은 다시 하향세다. 그렇다 보니 웹툰에서도 장르의 다양성을 찾기 어렵다. 최규석 작가의 ‘송곳’ 같은 웹툰이 네이버 같은 곳에서 연재되고 그런 다양한 실험적인 작품이 나오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지 않나. 그래서 저희 같은 작가는 독자들의 관심과 응원이 절실하다. ‘홀’ 많이 봐주시고 ‘빗창’도 많이 사주시면 좋겠다(웃음). 앞으로 더 많은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부탁드린다.


김홍모 작가





월간 옥이네 2020년 4월호(VOL.34)

글 사진 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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