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총선 아닌 ‘시민의 총선’ 실무단 김영진 씨
민주주의의 축제, 선거를 통해 우리는 일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정말 선거가, 정치가 우리 일상을 바꿀 수 있다면, 그동안 수없이 선거를 치른 우리는 왜 오늘도 비싼 월세에 치이며 위험한 일터에서 자녀들의 불안한 양육 환경을 걱정하고 있을까.
선거가, 정치가 바꾸지 못한 일상은 정치에 대한 조롱과 무관심을 낳았다. 대부분의 시민에게 정치는 저 멀리 국회의사당 안, 금배지를 단 이들의 전유물에 불과하다. 정치가 정말 우리 일상의 것이 되어야 한다면, 사실 이런 현실은 전혀 긍정적이지 않다.
한 가지 낙관할 수 있는 것은, 빼앗긴 정치를 시민에게 돌려주려는 풀뿌리 운동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4월 총선을 앞두고도 이런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인만의 총선이 아닌 유권자의, 유권자에 의한, 유권자를 위한 총선을 만드는 사람들, 그중에 ‘시민의 총선’이 있다.
‘시민의 총선’은 시민들의 대화모임을 기반으로 사회 문제를 공유하고 이를 선거 의제로 만드는 시민정치운동이다. 올해 1월 전국 오픈파티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대화 모임이 진행되고 있다. 대화 모임의 주제나 형식, 참가자 숫자나 대상 등은 모두 자유. ‘시민의 총선’은 이렇게 진행된 대화모임에서 발굴된 의제를 모아 21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자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시민이 제안한 의제가 실제 선거에서 공약과 정책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최종 목표라고 이들은 설명한다.
월간 옥이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시민의 총선’ 실무를 맡고 있는 사회적협동조합 혁신청의 김영진 이사장을 만나 ‘시민의 총선’ 조직 배경과 앞으로의 활동 계획 등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2월 11일 혁신청 사무실이 있는 대전 대흥노마드에서 진행됐다. 시민의 총선 대화 모임에서 발굴된 다양한 의제는 홈페이지(http://civicvote.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시민의 총선은 어떤 배경에서 만들어졌는지, 또 어떤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보통 정치가 사회 전반적인 문제, 이를 테면 불평등이나 불공정 같은 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하지만 실제 정치인들은 정권 창출, 자신들의 특권 유지에만 집중하는 것이 사실이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문제 역시 선거 기간에 이용만 하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특히 시민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불평등이 돼버린 주거나 노동, 성차별 문제를 비롯해 기후위기, 국회개혁 등 우리 삶을 어렵게 하는 근본 원인은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을 하던 차, 지난해 10~11월 즈음 전국의 시민활동가들이 모일 자리가 있었다. 마침 그 자리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선거가 다가오고 있으니 ‘정치인의 총선이 아닌 시민의 총선’을 만들어 보자는 데 뜻이 모아졌고 관심 있는 활동가와 시민들이 결합해 ‘시민의 총선’을 기획하게 됐다. 그렇게 해서 현재 서울, 충남, 충북, 전남, 대구 등 전국에서 30명 정도가 기획단에 참여하고 있다. 모두 자발적으로 모여 각자 시간을 내고 재능기부 등을 통해 꾸려지고 있다. ‘시민의 총선’은 어떤 단체라기보다 일종의 프로젝트라고 보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 계획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1월부터 2월까지 시민들이 직접 의제를 발굴하는 모임을 진행한다. 자유로운 대화 모임 형식으로 진행되고 시간이나 장소는 물론 주제나 형식, 규모에 상관없이 진행한다. 2명이 모일 수도 있고 20명이 모일 수도 있는 식이다. 이렇게 대화를 통해 의제를 발굴하고 그 의제를 정리해 3월부터 국회의원 후보들, 각 정당에 전달할 예정이다.
이밖에 ‘온라인 의제선거’, 후보들의 응답을 정리한 ‘온라인 공약박물관’ 같은 것도 진행하려고 한다. 시민들이 정치인의 약속을 계속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이 활동의 실무를 맡고 있는 혁신청에 대해서도 소개해 달라. 어떻게 혁신청이 실무를 맡게 됐는지도 궁금하다.
저희는 지역에서 다뤄야 하는, 혹은 시민들이 해결을 원하는 의제를 발굴하고 지자체나 공공기관과 함께 이를 해결하는 활동을 하는 곳이다. 일종의 민간 중간지원조직이라고 볼 수 있다. 대전의 사회혁신플랫폼 사업이나 리빙랩, 시민정치 운동 관련 활동을 하는 시민단체라고 보면 된다.
앞서 2018년 지방선거 때 ‘누구나 정상회담’*이라는 이름으로 ‘시민의 총선’과 비슷한 형태의 시민 의제 발굴 활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런 활동 경험이 있어 실무를 맡는 게 적합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시민의 총선 진행 상황은 어떤가.
1월 18일에 오픈파티를 했고 개별 대화 모임은 현재(2월 11일 기준)까지 50개 정도 신청이 들어왔다.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 한 200개까지는 모임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대전 외 다른 지역에서도 모임이 꾸려지고 있나.
대전, 대구, 세종에서 진행되고 있다. 전북 익산에서 생협 운동하시는 분들이 먹거리 관련 의제로 대화 모임을 신청하시기도 했다. 앞으로 다른 지역 모임은 계속 조금씩 늘어날 것 같다. 지역마다 이런 활동이 진행되는 속도가 다르다고 보기 때문에, 조급해하지 않고 각자 속도를 지키되 연계해서 가려고 한다. 아직까진 대전 모임이 많지만, 대전에서 발굴된다고 해서 꼭 대전만의 의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부나 지방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민관 거버넌스 형태로 이런 모임을 진행하는 건 꽤 많지 않나. 그런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이렇게 모인다는 건 흔하지 않은 사례인 것 같다. 막말로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웃음) 이렇게 모인다는 게 신기하다.
저도 신기하다(웃음). 시민들이 느끼기에 워낙 절실한 의제들이 많으니 그런 것 같다. 그동안 이런 의제를 이야기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어떤 갈증이 있었던 거 같다. 시청 등 공공기관에서 많이 하는 대화 모임 같은 것도, 막상 가보면 이야기를 하는 사람(시민)이 아닌 이야기를 듣는 사람(지자체장, 관공서 관계자 등)이 중심인 경우가 많다. 시장님 일정에 맞춰 진행이 되거나, 꼭 몇 명 이상이 모여야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 차원에서 ‘시민이 이야기하는’ 의제 발굴이 필요하겠다 생각하기도 했다. 가급적이면 편하게 이야기하고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관계기반의 모임이면 좋겠다 생각했다. 여기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시는 분들까지 더해져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 같다.
한편으로는 이런 시민 참여형 대화 모임이 여기저기서 많았던 터라 오히려 시민들의 피로도가 높지 않을까 우려했다. 지자체 중심으로 진행되던 기존 시민참여 형태는 이야기에 제약도 많았고, 우리는 그런 것과 다른 방향으로 피로도를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온라인 의제 선거 등을 통해 이번 총선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확산되는 계기가 만들어 질 수 있겠다.
그렇다. 온라인 의제 선거와 관련해서는 별도로 선거인단을 모집할 수도 있고, 그밖에 다양한 아이디어도 많이 나오고 있다. ‘국민투표로또’** 같은 이벤트를 차용해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일단 무조건 할 것은, 전국 253개 지역구 후보들에게 의제를 보내고 최대한 공약에 반영토록 하는 것이다. 그걸 가장 중요하게 보고 있다. 이런 활동은 4월 15일 전까지 최대한 하려고 한다.
■시민의 총선이 이번 뿐 아니라 다음 선거에서도 계속 확장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든다.
대전은 이런 정치적 시도를 지난 지방선거 때부터 해왔기 때문에, 그런 구력이 계속 축적되는 것 같다. 참여자나 실무자들 모두 활동의 경험이 계속 쌓이고 있다.
지난 지선 때는 10세 초등학생 어린이가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 꼭 가야 하나’ 대화 모임을 했는데, 그런 참여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시민들에게 큰 자극이 된다. 다른 사람의 참여가 또 다른 시민에게 영감을 주는 게, 이 작업 과정에서 엄청나게 드러나는 건 아니지만 분명 영향은 있다고 본다. 저희도 이런 것에 주목하고 있다. 시민의 총선이 다음에는 또 어떤 방식으로 변할지 모르겠지만, 여기 참여하면서 시민 중심의 정치를 꿈꾸는 분들은 계속 계신 거니까.
■지금까지 나온 의제 중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면.
대전 청소년들의 ‘기후독립선언’***이 가장 눈에 띈다. 청소년 스스로 ‘멸종위기종’이라고 칭하기도 하는데, 기후위기로 인한 심각한 변화의 기점이 될 해로 2050년을 거론하며 그 전에 무언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이야기도 많이 나오지 않나. 이런 가운데 대전 청소년들이 삼일절 기후독립선언을 하자고 나선 것이다. ‘지금까지의 100년이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100년은 탄소 중심 경제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의제 모임이 만들어졌고 현재 저희가 별도로 후원하면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지역 정치인들과 기후위기 관련 정책 협약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국회 개혁과 관련해 국회의원 월급을 최저임금과 연동해 주자는 제안, 플랫폼 노동과 주거 문제 등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지난해 말 언론보도를 보니 30명 정도가 우리나라 주택 1만 채를 소유하고 있다고 하더라. 여전히 주거지를 재산으로 바라보는 문제가 있는데, 1명이 최대 3채 이상 소유하지 못하게 하자는 내용을 제안하려 한다.
이런 다양한 제안 내용과 활동이 우리 사회의 정책 수용도를 높이는 작업이 되지 않을까.
■공약이나 정책 반영 여부를 떠나 시민의식을 높이고 정책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꾸는 활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역공동체 활성화 측면에서도 중요한 활동인 듯하다. 지금 ‘시민의 총선’도 그렇고 ‘누구나 정상회담’ 등을 꾸리며 어려운 점은 없었나.
시민력을 강화하고 사회문제 해결이 주요 목적인만큼 기존 시민운동의 흐름과 어떻게 상승효과를 낼 것인가 하는 고민이 있었다. 또 하나는 아무래도 ‘지속가능성’ 부분이다. 저희도 다른 사업을 하며 모은 돈을 이런 활동의 후원금으로 쓰는 것인데 이런 것 자체가 어떻게 계속 지속가능할지, 또 이렇게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이어질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
■일을 할 다음 세대가 없다는 것은 현재 지역운동이 처한 현실적 고민과 닿아있는 것 같다. 그래도 대전에서는 ‘누구나 정상회담’이나 ‘시민의 총선’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이끄는 움직임이 있지 않나.
이런 것도 옥천이나 금산, 공주 같은 곳의 자원을 흡수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보통 대도시를 규정할 때 수도권과 비수도권 정도로 나누어 보지만, 저는 대전은 물론 전주까지도 대도시로 본다. 대도시가 가진 특권 중 하나가 인적 자원이 상대적으로 풍부하다는 것 아니겠나. 다른 지역의 자원을 계속해서 빨아들이며 신세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전에서도 이런 청년 활동, 시민 활동이 가능한 것 아닌가 싶다.
얼마 전 옥천신문 황민호 제작실장이 쓴 지방소멸 관련 칼럼****을 봤는데, 무척 공감하며 읽었다. 균형발전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도시에서의 삶에만 한정지어 사고하는 건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정치하려고 하냐’ 이런 오해도 많이 받을 거 같다.
제가 하는 활동 자체가 이미 정치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늘 ‘정치인’이라고 말한다. 시민 정치를 실현하는 게 앞으로의 업일 테니, 오히려 그렇게 봐주시는 게 고맙다고 이야기한다.
정치가 실제로 우리 사회 대부분을 결정하는데, 그러면서도 정치를 터부시하거나 부정부패한 것으로만 몰아가지 않나. 대체로 정치 특권을 가진 이들이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청소년 참정권을 얘기할 때도, 사실 저는 교실이 정치판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정치적이어야 뛰어난 민주시민이 될 수 있다.
■시민의 총선에 대한 전망, 앞으로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선출될 300명의 국회의원 중 20명 정도만이라도 개혁적인 성향의 특위를 구성하면 좋겠다. 시민의 총선뿐 아니라 시민들의 다양한 의제, 절실한 문제를 개혁적으로 해결하려는 특위 구성을 목적으로 후보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다.
시민의 총선은 사실 대화 모임이나 의제 수가 중요하다고 보진 않는다.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모여서 이런 것을 시작했다, 시민의 총선이든 다른 형식이든 시민들이 대놓고 정치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 다음 선거 때 우리 지역에 맞게끔 다른 것을 상상해도 좋겠다는 인식으로 이어지면 좋겠다. 저희 활동이 무언가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보다 ‘진짜 누구나 정치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계속 전달할 수 있다면 좋겠다.
또, 대전이라는 지역 안에서 시민이 선거에 참여할 틈을 더 만드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지역 안에서나 밖에서나 그런 방향으로 활동이 이어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시민의 목소리나 이야기가 잘 기록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느끼고 있다. 시민의 총선을 통해 그동안 시민들이 문제로 여겼던 이야기들이 모이는 건데, 이런 우리의 이야기와 목소리가 잘 기록되고 여기 응답하는 정치인을 잘 기억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지역언론의 역할이기도 할 텐데, 우리가 공동으로 함께 기록하는 역할을 어떻게 해나갈지 고민하면 좋겠다. 이게 기록이 잘 되면 어떤 식으로든 확대재생산이 되더라.
또, 선거가 잘 끝나면 좋겠다. 위아래 불평등은 그대로 두고 좌우 이념전쟁으로만 포장해가는 건 아닌가 싶어 불안하기도 하다. 특히 대전은 후보들이 내놓는 공약 중에 ‘초대형 도서관 건립’ 같은 이상한 것이 많아서 그것도 걱정이다. 그래도 기대되는 건 좀 더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목소리가 나올 틈이 생겼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의제를 발굴하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움직임이 계속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가 중심이 돼 다른 총선 네트워크를 만들었는데, 이런 식으로 전체 판을 넓혀가는 활동이 계속돼야 한다. 시민의 총선이든 아니든 말이다.
* ‘시민의 총선’과 마찬가지로 대화형식이나 주제 등 자유롭게 진행. 시즌 2까지 진행됐으며 총 231개의 대화모임이 꾸려져 대전의 장애인, 교육, 문화예술, 에너지, 환경 등 다양한 방면의 의제가 논의됐다.
** 국민의 선거 참여를 높이기 위한 일종의 시민활동으로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 때 실시됐다. 투표소를 배경으로 한 인증샷 등을 보내면 추첨을 통해 상금을 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상금 모금 역시 시민들의 후원으로 진행됐다.
*** 올해 3월 1일 대전에서 ‘대전 청소년 기후독립선언’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연기됐다.
**** 한겨레 신문 2020년 2월 3일자 ‘[지역에서] 소멸되는 게 아니라 소멸시킨다’
월간 옥이네 2020년 3월호
글 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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