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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옥이네 Aug 13. 2020

지속가능한 미래, 농민기본소득에 있다

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 차흥도 위원장 강연

달리기 시합을 한 토끼와 거북이, 너무나 친숙한 이솝 우화다. 그저 묵묵히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교훈과 함께. 하지만 이 교훈이 현재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데 있어 ‘기울어진 운동장’은 빠질 수 없는 표현 중 하나가 됐다. 출발선상은 물론 기울기도 다른 트랙을 달려야 하는 이들에게 ‘노력한 만큼의 보상’은 이미 허상이 된지 오래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연대와 협동 역시 운동장 저 아래로 밀려나버렸는지 모른다.


우리 사회 곳곳에 산재한 기울어진 운동장, 그곳에 농업과 농촌이 있다. 산업화 이후 희생을 강요받아야 했던 농업·농촌·농민의 삶. 이 경사의 크기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하는 노력 중 하나가 최근 2~3년 사이 전국적 의제로 떠오른 ‘농민기본소득’이다. 강진과 해남 등 전남 지역에서 시작된 농민기본소득 바람은 해를 거듭하며 충남, 경남과 경북, 경기도, 강원도, 제주까지 이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옥천에서 농민기본소득과 관련한 의미 있는 강연이 열렸다. 농민기본소득 충북운동본부 준비위원회가 7월 6일 옥천읍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에서 ‘왜 농민기본소득인가?’를 주제로 강연을 개최한 것. 강연자로 나선 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 차흥도 운영위원장은 농민기본소득이 농촌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기회가 될 것이라 강조했다. 약 두 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이날 강연을 정리해 지면에 담는다. 재정부담을 이유로 논의가 주춤한 충북에서, 이 강연이 새로운 물꼬를 틔울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부유한 국가가난한 농촌

“우리나라도 5030클럽1)에 들었어요.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는 거죠. 그런데 그런 부와 풍요가 국민 개개인에게 돌아왔나요? 1대99의 사회에서,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상황에서 우리 농업과 농촌은 어떻습니까?”


마이크를 잡은 차흥도 위원장은 먼저 이런 질문을 던졌다. 도농 간 소득 격차가 극심한 상황에서 우리 농업과 농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물음이었다. 불균형한 국토 발전과 수출 산업을 위한 희생을 강요받으며 지역과 농촌은 계속 지워져왔다.


“1993년 도시 노동자 소득의 90% 수준이었던 농가 소득이 지금은 64%대로 떨어졌습니다.2) 올해 기준으로 하면 이보다 더 떨어졌을지 모르죠. 20년 전에 비하면 모든 물가가 올랐는데 쌀값만 그대로예요. 이래서야 농촌이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도시와 농촌의 격차도 문제지만 농촌 안의 격차도 심각하다. 우리 농민 평균 경작 면적은 약 1.5ha으로, 3ha(약 1만평) 이상의 대농은 전체 농민의 8% 수준. 사실상 대부분의 농가가 중소농에 해당하지만3), 우리 농정의 방향 자체가 대농 중심이다 보니 같은 농민 간에도 소득 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는 것.


“전체 농민의 70%가 소농인데 이들이 1년에 농업만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450만원 수준입니다. 농민이 농사 말고 다른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상황인 거예요. 여기에 직불제도 문제입니다. 2ha 정도의 중농이 받는 직불금은 350만원 정도인데, 소농에 비해 열몇배 이상입니다. 그런데 3ha 이상 대농은 평균 1,400~1,500만원 수준이에요. 이렇게 되면 소농과 대농의 격차는 40배를 넘어가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 쓰레기소각장이나 매립장 등 각종 혐오시설도 도시를 피해 농촌에 세워지면서 사회문화적 소외와 차별이 계속되고 있다고 차 위원장은 지적했다. ‘국토균형발전’이 오래된 사회적 과제임에도 여전히 농촌은 지속가능한 발전의 기회에서 밀려나있는 것이다.


1) 인구 5천만명 이상, 1인당 소득 3만달러 이상 국가. 우리나라는 2018년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에 이어 일곱 번째로 5030클럽에 들었다.
2) 1993년 우르과이라운드 이후 계속 벌어지던 도농 소득차는 2012년 57%까지 떨어졌다. 여기서 말하는 64%대는 2019년 기준. 그나마도 공적·사적보조금인 ‘이전소득’ 증가가 2012년 대비 도농 격차를 줄인 것이라 실제 영농 활동을 통한 소득 창출은 여전히 어려운 상황임을 보여준다.
3) 옥천의 경우 0.5ha(1천500평) 미만 소농이 51%에 달한다.



보이지 않는 손은 농촌의 가치를 담지 못한다

경쟁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협동과 배려의 가치는 쉽게 잊힌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농촌의 가치를 쉽게 잊는 것도 같은 맥락일지 모른다. 하지만 종 다양성과 생태적 순환을 비롯해 우리 사회가 농촌과 상호의존적 관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계속 기억하고 지켜야 한다고 차 위원장은 말한다.


“논 하나만 해도 홍수조절능력, 생물 다양성 보존 등 얼마나 많은 기능을 합니까. 자연 경관이나 전통문화 보존, 식량 주권 수호 면에서도 우리 농촌과 농민, 농업이 가진 공익적 가치는 몇 마디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렵죠. 하지만 이것이 시장에 반영되나요?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 가격에 이런 가치가 포함됩니까?”


이야기는 자연스레 농민수당의 필요성으로 이어졌다. 위기에 처한 농업·농촌·농민에 대한 지원책이자 시장 경제가 채 담아내지 못하는 공익적 가치 보장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 독일이나 프랑스, 스위스 등 다양한 직불금 형태로 이 같은 공익적 가치를 지원하는 유럽을 비롯해 현재 전국 광역 단위 지자체가 앞다투어 농민수당 도입을 추진하는 이유다.


다만, 현재 논의되는 농민수당의 경우 농가당 지급되는 데다 월 5~10만원 수준으로 지급액이 낮아 개선의 필요성도 함께 이야기 된다. 차 위원장은 농민수당이 농민기본소득과 농촌기본소득으로, 나아가 전국민기본소득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것이 마냥 요원한 일만은 아닐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을 통해 전국민이 이 같은 재난기본소득 지급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 옥천군의 경우 주민 1인당 10만원의 재난지원금을 별도로 지급하는 등 지역 차원의 실행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현재 농민수당은 사실 ‘농가수당’이죠.4) 그나마 이 수준을 넘어 가려는 지자체가 나오고 있다는 게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경기도가 농민당 지급하는 농민기본소득과 한 마을을 정해 지급하는 농촌기본소득 실험을 하겠다고 선언했고요. 올해부터 도입된 공익형 직불제5)도 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위한 정부 정책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 기대해요. 공익형 직불제가 양극화된 농민 간 격차를 어느 정도는 줄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우리 농정이 여전히 대농 중심이고, 그런 맥락에서 공익형 직불제 역시 미흡한 부분은 있습니다. 이는 농민기본소득 논의와 함께 계속 보완해나가야겠죠.”


4) 농가당 지급하다 보니 농업경영체로 등록되지 않은 여성농민, 청년농민이 배제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5) 기존 직불금 제도를 통합·개편한 것으로 올해 처음 도입됐다. 농지면적 0.5ha 이하 농가에는 면적과 관계없이 연 120만원의 소농직불금을 지급하고, 그 외에는 면적별로 책정하는 면적직불금을 지급한다.



농민기본소득전국민기본소득으로 이어져야

농민수당 혹은 농민기본소득으로 용어가 혼재되는 만큼 그 유형에 대한 논의도 다양하다. 지급액 기준을 현재의 5~10만원이 아닌 30~50만원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는 게 이 논의 안에서도 공통된 흐름이지만, 지급 대상에 대해서는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다만, 이런 논의가 지역과 농촌의 삶을 개선하고 국토균형발전을 이끌며 우리 사회에 필요한 공익적 가치 실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은 모두 동일하다. 차 위원장이 활동하는 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의 경우 △개별 농민에게 △월 30만원씩 지급하자는 것을 주요 골자로 농민기본소득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개별 농민 당 지급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게 저희 생각입니다. 그게 기본소득의 원칙이기도 하고요. 더불어 나이가 들어 농사를 짓기 어려운 어르신들까지 포함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늙어 죽을 때까지 호미를 잡고 밭에 나가야 살 수 있는데, 이러면 다음 세대가 농촌에 들어와 살기도 어려워져요. 당장 농사지을 땅을 구하기 어렵거든요. 이런 방향으로 농민기본소득이 실현되면 농촌 안의 선순환을 불러올 수 있어요.”


농가당 평균 가구원 수는 2.3인. 월 30만원의 농민기본소득이 지급된다면 농가당 1년에 약 750~800만원의 소득원을 갖게 된다. 차 위원장은 이 금액이 3ha 미만의 중농이 연간 벌어들이는 평균 소득(750만원) 수준으로, 이만큼의 추가 소득을 보장해 우리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되면 농민 스스로 보다 주체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고 이것이 우리 농업의 다양성, 친환경 농업 확대의 바탕이 된다는 것. 나아가 농촌의 인구 유입을 유도해 지역 간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게 차 위원장의 말이다.


“농민기본소득은 일종의 정착지원금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농민기본소득이 지역균형발전을 이루는 근간이 될 수 있다는 거죠. 사실 농촌 개발사업이다 뭐다 해서 약 5조원의 예산이 농촌에 뿌려졌는데요. 이게 농민에게 돌아왔나요? 개발업자, 컨설팅업체 같은 데가 이득을 봤지, 농민에게 남은 것은 빚뿐이에요. 자꾸 이것저것 개발하지 말고 농민에게 직접 지원을 하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자생력을 갖게 될 겁니다.”


농민기본소득을 시작으로 농촌기본소득, 나아가 장애인·청년·여성 등 소외된 지역과 계층으로 이어져야 하며 이것이 곧 전국민기본소득 실현의 기초가 된다는 것도 차 위원장의 생각. 이를 위해 현재 농민기본소득 운동을 펼치는 농민단체 뿐 아니라 시민사회의 공감과 연대를 모아내야 한다는 말로 차 위원장은 강연을 끝맺었다.


“로컬푸드 운동의 하나로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시하자고 했을 때 찬반으로 논란이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반대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로컬푸드 운동 같은 것이 정부가 만든 게 아니예요. 농민들이 나서서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고 이것이 시민사회 전체로 넓혀지며 우리 사회의 기본 인식으로 자리 잡은 거거든요. 우리가 계속 이런 이야기를 하고 공감대를 만들어 갈 이유인 거죠. 옥천과 같은 지역은 그런 점에서도 다른 지역의 좋은 참고 사례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모두가 함께 목소리를 내며 보다 살기 좋은 지역사회를 만드는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편 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는 ‘농민기본소득 법제화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으로도 참여 가능하다. 



글 사진 박누리

월간옥이네 2020년 8월호(VOL.38)


월간 옥이네 2020년 2월호 '농민기본소득' 특집 인터뷰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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