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TV 만화 ‘네모바지 스폰지밥’의 깐깐한 문어 캐릭터 ‘징징이’가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원통형의 목관악기인 클라리넷은, 이렇게 TV 만화는 물론 대중매체를 통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악기 중 하나. 하지만 실제로 이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을 찾아보는 건, 동네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김연주(36, 옥천읍 죽향리) 씨는 5년 전 옥천으로 이주해 가정을 꾸리고 정착했다. 어릴 적 장래 희망 칸에 늘 ‘피아노학원 선생님’이라고 썼던 그는 옥천으로 와 꿈을 이뤘다. 독일어로 ‘가치 있는’이라는 뜻의 ‘에델(edel)’에서 ‘E’를, ‘삶’이라는 뜻의 ‘레벤(Leben)’에서 ‘L’을 따와 ‘엘(EL)’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음악이 곧 생활이 되는 ‘엘의 음악생활공간’이라는 음악 교습소를 열었다. 이곳에서는 피아노 뿐 아니라 클라리넷 등 다른 악기도 만나볼 수 있다. 이곳에서의 3년, 탈바꿈하고 있는 이 공간의 마중객, 김연주 씨를 만나보았다.
골목을 따라가 문을 열면 작은 공연장
그가 처음 클라리넷을 손에 쥐게 된 건 중학생 때다. 악기라고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플루트 밖에 몰랐던 소녀가 중학교 관현악단에서 처음 접하게 된 이 악기는 이후의 인생을 계속 함께하게 됐다. 대학에서 클라리넷을 전공했고, 석사까지 하게 됐다. 서울에서 석사 과정을 밟던 중엔 자신만의 연습 공간에 대한 열망도 커졌다. 그러던 차에 옥천에서 선배가 운영하던 학원을 인수했고, 그로부터 2년 후 지금의 ‘엘의 음악생활공간’을 열었다.
이 공간으로 들어서면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놓인 널찍한 홀을 마주하게 된다. 약 20평 정도, 좌석 수로 치면 약 50석 정도를 설치할 수 있는 규모의, 작지 않은 공간이다. 피아노 뒤로는 커튼을 두르고 조명을 설치해 공연장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옥천군 청소년수련관 등에 150석 규모의 홀이 있지만, 민간 대여가 가능한 연주 홀이 옥천엔 없기 때문에 작게나마 직접 만든 것이다. 교습소 학생들뿐만 아니라 외부 초청 공연도 여러 차례 진행한 바 있다.
“교습소 수강생들의 향상 음악회(실력향상을 목적으로 개최하는 음악회)를 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여기 의자를 깔고 1년에 한두 차례 정도 발표회를 했어요. 성인 수강생도 꽤 있어서 성인발표회도 하고요. 대전·세종 선생님들이 모인 솔챔버앙상블 초청 음악회도 두 번 했는데, 처음에는 학원에서 하는 연주회이다 보니 선뜻 들어오기 망설이는 분이 많았지만, 두 번째 공연은 일찍 매진될 정도로 인기 있었어요.”
이곳에서 원생들과 텐트를 쳐놓고 파자마 파티를 하기도 했던 그는 지난 8월을 마지막으로 교습소를 폐원한다. 공간의 ‘원래 의미’를 찾아가기 위해서다.
“코로나 영향도 있고, 클라리넷 전공이다 보니 피아노를 가르치는 것보다 클라리넷을 향한 목마름이 있어요. 연습실이나 동아리 공연을 위한 대여도 하면서 문화예술 공간으로 사용하고, 저는 클라리넷에 집중하기 위해서요.”
누구나 즐겁게 배울 수 있어요
클라리넷을 배우고 싶은데 수강료가 부담된다면? 그가 운영하는 옥천 유일의 클라리넷 동호회의 문을 두드려보자. 현재 네 명의 회원이 함께하고 있는 엘클라리넷앙상블은 월 회비 5만 원을 내면 연습실 사용은 물론 클라리넷도 배울 수 있다. 악기를 구입하기가 부담된다면? ‘두드림 지원 프로그램(이하 두드림)’을 노려보는 것이 좋겠다. ‘두드림’은 옥천군평생학습원 지원으로 연습용 악기를 대여할 수 있고 레슨도 무료로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두드림’으로 클라리넷 동호회에 참여한 학생들은 2016년 열린 제5회 옥천군 평생학습어울림한마당에서 연주를 하기도 했다. “연주회를 준비하면서 향수공원 등 야외에서 연습하고 치킨도 시켜 먹곤 했다”고 회상하는 김연주 씨의 목소리에서 마음껏 합주할 수 있던 그때를 향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그는 악기를 배우는 것이 가족 간, 세대 간 화합을 이끄는 것은 물론 건강한 본보기상이 되어주는 데 제격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이곳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악기를 배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딸은 피아노를 배우는데, 엄마가 여기서 클라리넷을 배워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그 후로 딸이 피아노를 더 열심히 배우더래요. 부모가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주는 게 얼마나 좋은 교육이 되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했죠.”
아빠와 딸이 함께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영상을 보여준 그는 “음악으로 자녀와 부모가 소통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라며 웃었다.
엘클라리넷앙상블은 입으로 부는 악기의 특성 때문에 현재는 합주 모임을 하지 않고 개인 연습만 하고 있다. 합주가 주는 즐거움과 만나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자 위기를 기회로 만들 재미있는 프로젝트도 생각해보았다. 바로 ‘비대면(언택트, untact) 합주’. 아직 실행해보진 않았지만 언젠가 색다른 형태의 연주를 시도해볼 날을 기다리고 있다.
“어차피 각 방에서 개인 연습은 하니까요. 방마다 마이크를 설치해 스피커를 홀에 둔 후 문을 닫고 연주하면 합주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만 해봤어요. 계속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정말 해봄직한 형태의 공연이 아닐까요?”
클라리넷을 배운지 이제 막 3개월 쯤 됐다는 임헌식(56, 옥천읍 죽향리)씨는 노래 한 곡을 멋들어지게 완주한다. 클라리넷으로 연주된 영화 ‘올드보이’ OST인 ‘The last waltz’(더 라스트 왈츠)를 듣고 그 중후한 소리에 매료됐다는 그는 “클라리넷 소리가 너무 좋아 배우길 잘했다고 생각한다”며 “여기에 나이 많은 사람도 많이 와서 같이 연주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학생들의 즐거움, 그의 꿈과 소망
장애인의 문화·체육·예술 접근성은 비장애인보다 낮다. 하지만 종종 특정 분야에 천재성을 보이는 장애, ‘서번트증후군’의 사례를 매체를 통해 볼 수 있는데 이런 재능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먼저 배움의 기회가 있어야 한다.
김연주 씨는 국내 최초 장애아동 청소년 오케스트라인 ‘헬로! 셈(Hello! SEM) 오케스트라’ 창단 때인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이곳에서 클라리넷을 가르쳤다.
“그때 가르쳤던 장애아동 중 아직도 가끔 연락 오는 학생이 있어요. 그 아이가 예전에 ‘다음 주에 봬요’라고 하길래 ‘다음 주에 수업 없다’고 하니 ‘그럼 건강하세요’라고 얘기한 적 있는데 그게 아직도 생생해요.”
그때의 경험을 계기로 장애아동 청소년을 가르치는 것에 관심을 가진 그는 이후로 세종시 등 타지 장애인 악기 강사 모집에도 지원했었다. 그리고 올해 옥천군노인장애인복지관에서 장애인 클라리넷 수업을 맡게 됐다고.
“감사하게도 올해 옥천에서 수업을 하게 됐어요. 이전에도 이런 일을 했었으니까 옥천에서도 하고 싶다고 항상 생각했는데, 현실적으로 후원이 없으면 어렵더라고요. 수업에서 더 나아가 장애아동 청소년 오케스트라도 만들고 싶어요.”
지원을 받아 장애인 학생들을 가르치게 됐지만, ‘지원(후원)을 받는다’는 것이 독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재정적 지원을 받으면 ‘결과’를 보고해야 하므로 어떤 ‘성과’가 요구되는 것이 학습이 느린 장애인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 이런 부분에서 “후원받는다는 게 좋으면서도 절대 좋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뜨거운 열정은 언젠가 피어나리
코로나 때문에 지쳤을 원생들을 위해 직접 마스크를 만들어 선물하기도 했다는 그의 따뜻한 마음은 불타는 열정에서 뿜어져 나온 온기일까? 그는 앞으로 체계적인 지휘 공부도 하고 싶다고 한다.
이곳에서 앙상블을 이끌며 음악을 만들어나가는 그에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색소폰을 취미로 연주하면서 자신만의 힐링 포인트도 찾았다. 또 하나의 팀을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다. 벌써 생각해놓은 팀 이름은 ‘실버’. 노년층을 이르는 말인 ‘실버 세대’에서 딴 이름으로, 말 그대로 어르신들로 이루어진 악기 팀이다. 어르신들과 했던 수업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그는 클라리넷 실버 앙상블을 만들고 싶다. “옥천사람들은 흥이 많다”고 느꼈다는 그는 ‘1인 1악기 옥천’을 꿈꾸기도 한다.
“농사짓다 새참 때 악기연주도 하고 그러면 더 힘이 날 것 같아요(웃음).”
엘의 음악생활공간이 ‘학원’이라는 이름표는 떼고 음악과 관련한 연습실, 동아리 공연, 연주회 등으로 자유롭게 사용되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는 김연주 씨. 제2의 인생을 맞을 그와 함께 그의 공간도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글 사진 소혜미
월간옥이네 2020년 10월호(VOL.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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