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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옥이네 Jul 26. 2021

이토록 다양한 포도의 계절!

품종별 포도 농가를 만나다

  탱글탱글. 엄지와 검지, 중지 세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면 과즙을 내뿜으며 톡 튀어나오는 말랑한 알갱이. 포도는 수분 보충이 절실한 여름철 빼놓을 수 없는 제철과일 가운데 하나다. 각양각색의 매력을 뽐내며 하나둘 출하되는 다양한 품종의 포도는 매년 7월이면 열리는 ‘향수옥천 포도·복숭아 축제’를 떠올리게 한다. 올해로 14회를 맞이한 축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농산물은 7월 10일부터 9월 30일까지 우체국 쇼핑몰을 통해 판매될 예정이다.

  옥천의 포도 농사는 동이면 용운마을에서 1943년 처음 시작됐다. 과일을 상품화한다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때라, 1970년대 초나 되어서야 처음으로 포도를 출하했다. 당시에 한 상자에 5만 원이라는 값비싼 몸값을 자랑하며 옥천 내 다른 지역에서도 재배를 시작했고, 노지에서 재래식 세멘(시멘트) 기둥 철사 하우스 그리고 파이프 하우스로 기술도 빠르게 변화했다. (옥천 포도의 역사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월간 옥이네 2017년 9월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올해는 옥천 포도의 역사에도 중요한 시기가 될 전망이다. 옥천 포도의 대표주자였던 ‘캠벨’ 재배 면적이 크게 줄어 축제에 낼 물량조차 확보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대신 그 자리를 포도계의 신예, ‘샤인머스캣’이 차지했다. 맛도 좋을뿐더러 동일면적 출하량과 소득이 비교적 높아 캠벨뿐만 아니라 많은 포도 농가가 샤인머스캣으로 품종을 전환하고 있는 것. 그래도, “포도는 ‘이 품종’이지!”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자옥’, ‘세기무핵’, ‘블랙비트’ 그리고 ‘캠벨’ 재배 농민에게 각 품종의 매력을 들어보았다.


그래도 자옥이 더 좋아왜인지는 모르겠어

이용윤(동이면 세산리농민

  포도 농사를 지은 지도 벌써 27년째, 이용윤 씨도 캠벨을 재배했었다. 캠벨 대신 거봉 종류인 자옥으로 품종을 변경한 건 약 7년 전. 몇 년이나 되었는지는 나무를 보면 알 수 있다. 마디가 나눠진 것처럼 보이는 이것은 일부러 칼집을 낸 ‘박피’ 작업의 흔적. 거봉 품종은 이 작업을 통해야 상품 가치가 있는 검정 빛의 열매가 맺힌다고 한다.

  “박피를 안 하면 당도는 똑같이 나와도 색이 안 나와서 상품성이 없어요. 열매에 색이 조금씩 들 때 칼집을 내고 한 두 달 정도가 지나면 수확할 수 있을 만큼 익어요. 안 그러면 멀겋게 해서 미쳐버리지.”

5월17일, 아직 물이 들이 않은 자옥

그러니까, 박피한 흔적이 몇 개나 있는지에 따라 나무의 년생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거봉 종류 가운데 하나인 ‘흑보석’도 마찬가지다. 이용윤 씨의 또 다른 밭에는 흑보석이 자라고 있는데, 이것은 “신기하게도 한여름에 아무리 뜨거워도 잘 익는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당도가 덜하다는 것. 자옥과 비교하면 3~4브릭스(brix) 정도가 낮다는 흑보석은 숙기도 늦다. 그 덕분에 순차적으로 수확을 할 수 있어 일도, 출하도 한결 수월하다.

  “캠벨만 지을 때 2천 평에서 한꺼번에 다 익어서 물량을 감당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해에는 포도즙을 엄청 내렸어요. 값비싼 시기에 포도즙을 내려니까 엄청 속상하더라고요. 지금은 순차적으로 익어 한결 나아요.”

  포도 재배 과정 가운데 ‘2차 지베렐린(생장조정제) 처리’와 ‘순 지르기’ 작업을 하는 시기가 가장 힘이 들 때다. 순 지르기는 4~5월 진행하는 작업으로, 포도가 열리는 데서 7~8잎 정도 위로 자라는 가지를 잘라버리는 것을 말한다. 거봉 품종의 경우에는 다음 순 자체가 나오지 않게 “먹통”을 시켜야 포도로 가는 영양분이 많아진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거봉 품종을 재배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일까? 바로 알 솎기와 곰팡이 관리다. 알이 큰 거봉의 특성상 성장을 대비해 알을 충분히 솎는 것이 중요하며, 소독 작업을 통해 관리하는 곰팡이는 포도나무의 수정을 방해해 포도를 맺히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샤인머스캣을 심어보자는 남편의 권유에도 대부분 재배 면적에 자옥을 고수하고 있는 이용윤 씨는 자옥이 샤인머스캣과 비교해 빨리 익는다는 점에 자옥을 선호하는 것 같다면서도, “나는 자옥이 더 좋아. 왜인지는 모르겠어. 샤인이 맛은 있는데 어쨌거나 난 자옥이 좋더라고” 이야기한다.


새콤달콤한 것이 세기 무핵의 매력이여

곽동덕(옥천읍 삼청리농민

  ‘세기 무핵’이라니, 낯선 이름이다. 본래 이름은 ‘센테니얼 시드리스(Centennial seedless)’로 미국이 원산지다. 포도주를 만드는 데에 많이 이용되는 것으로 유명한 이 포도가 중국에 들어오며 ‘세기 무핵’이라는 중국식 이름으로 바뀐 것. 읍 삼청리에서 세기 무핵을 재배하고 있는 곽동덕 농민은 이외에도 사십여 가지 품종을 직접 기르고 있다. 또한, 그는 군내 유일의 ‘포도 마이스터’로, 2013년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총괄하는 ‘농업 마이스터’ 제1회 시험에 합격하기도 했다. 포도 재배뿐만 아니라 교육과 품종개발 등 포도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물어보라는 ‘포도 덕후’인 셈.

  세기 무핵은 알이 길쭉한 모양의 청포도다. 아직 다 익지도 않은 포도알을 베어 물었는데, 과즙이 달고 상큼하다. 씨가 없고 알이 작지도 않지만 친환경 재배가 가능한 품종이다. 보통은 씨가 없거나 알이 큰 포도는 지베렐린 처리로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이것은 다르다. 태생부터 씨가 없고 친환경으로 재배할 시 한 알에 5.5~6g 정도를 자랑할 정도다. 곽동덕 씨의 친환경 세기 무핵은 아이쿱생협 매장인 자연드림에서 만날 수 있다.

 “포도 농사를 지은 지는 한 35년 정도 됐는데, 세기 무핵은 한 6~7년 됐지. 원래 친환경으로 재배할 수 있는 씨 없는 포도로 경조종이라는 품종이 있었는데 그건 알이 작았어. 그래도 소비자들은 나오기만 하면 냉장고에 쟁여놨던 품종이여. 근데 세기 무핵이 같은 조건으로 알이 더 크니까 이거로 바꿨는데, 이제는 그거로 모자라서 엄청 큰 걸 원하잖어, 다들.”

농업미이스터 포도부문 인증 현판마이

  샤인머스캣의 대유행에 관한 이야기다. “아무리 물건이 좋아도 생산이 소비보다 많으면 가격은 내려가게 되어있다. 지금 샤인머스캣은 38선에서 제주도까지 쫙 깔렸다”며 유행을 따라 품종을 변경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설명하는 그. 진짜 좋은 포도와 상품성 좋은 포도는 다르다며 “재배 방법을 배우고 그대로 실행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상황에 따라 응용·적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전한다.

사과로 농사일을 시작해 배, 복숭아 그리고 포도에 이르기까지 경험으로 일궈온 그의 밭. “진짜 포도를 배울 마음만 있다면 기술도 전수해주고 싶다”는 그는 미래 포도 농사를 함께 이끌어갈 후배를 기다린다.


어릴 적 먹던 포도 맛 그대로인 블랙비트

이규창(옥천읍 소정리농민

  “이 밭이 올해 59년째 되는 포도밭이에요. 어릴 때부터 포도 농사를 보면서 자라 지금은 직접 포도 농사를 지으니... 그때는 캠벨이었지만 지금은 블랙비트라는 사실 외에 변한 건 없죠.”

포도 재배 총면적은 2천여 평(약 6천611㎡), 그 가운데 블랙비트만 1천600평(약 5천289㎡) 정도다. 처음엔 캠벨로 포도 농사를 시작했지만, 캠벨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자 대체 품종을 찾다가 블랙비트를 알게 됐다. 거봉 계열에 속해 캠벨보다 알이 크고 일본에서 선호도가 높다며 추천을 받아 작게 시작했는데, 4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나 규모가 커졌다.

  6월 15일에 만난 블랙비트는 군데군데 물이 들기 시작했다. 지대가 살짝 높은 쪽은 벌써 거의 다 익은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지만, 완전히 검은색을 띠어야 수확할 수 있다. 날씨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지만, 7월 중순에서 하순 즈음 출하될 예정이라고. 블랙비트의 가장 큰 매력은 씨가 없다는 것과 시원하고 깔끔한 맛. 일본에서 인기가 많은 두 종류의 검은 포도, 후지미노리와 피오네를 교배해 색이 더 진하고 튼튼한 품종이 된 것이다.

  사실 이규창 씨도 샤인머스캣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내와 둘이서 밭을 가꾸다 보니 특히 손이 많이 가는 샤인머스캣을 주요 품종으로 전환하기에는 노동력이 부족한 현실. 블랙비트도 만만치 않게 손이 많이 가는 품종이라 샤인머스캣을 감당하기 어려울 거라는 예상이다.

  “한 번은 유기로 재배해볼까, 생각도 했는데, 풀이 자라나는 속도를 어떻게 못 하겠더라고요. 그런 이유와 더불어 여러 고민 끝에 블랙비트로 품종을 전환하기로 했죠. 캠벨은 알을 적당히 솎아도 자라다 보면 잘 떨어지는데, 블랙비트는 단단해서 잘 안 떨어지기 때문에 다 맞춰서 솎아줘야 해요. 아무래도 이런 알 솎기나 지베렐린 처리 같이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을 해내는 게 가장 힘든 점이죠.”

  더 건강하고 좋은 작물을 기르고자 하지만, 소득을 무시할 수 없기에 농민의 시름은 깊어간다. 생산자가 마음 편히 원하는 품종을 기를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꿈꿔본다.


우리 동네 캠벨 역사는 알아주죠

박노경(동이면 세산리농민

  옥천에서 가장 포도 역사가 깊은 동네를 꼽자면, 이곳 동이면 세산리를 꼽겠다. 이곳 작목반의 이름은 ‘용운포도회’. 옥천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곳을 ‘세산리’가 아닌 ‘용운리’라고 부르기도 하는 ‘용운’은 세산리의 자연마을 가운데 ‘용암말’과 ‘탁운’을 합한 명칭이다. 전국에서 두 번째(첫 번째는 대전)로 철근과 시멘트 시설을 이용해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한 곳이라, ‘용운 포도’의 명성은 예로부터 자자하다. 마을 입구 용운포도회 작업장 맞은편에 세워진 ‘용운 자랑비’에서도 이 마을의 포도 역사에 관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박노경 씨는 4년째 용운포도회장을 맡고 있다. 용운 포도 1세대인 아버지의 포도 농사를 이어받은 그는 40여 년 동안 캠벨 농사를 지어왔다. 총 2천여 평 포도밭 가운데 절반 이상을 캠벨로 유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품종이 다양하지만, 캠벨만의 맛이 있잖아요. 약간 신맛도 나면서 달콤하고 시원한 맛이 캠벨의 매력이에요. 특히 뒷맛이 깔끔한 게 장점인데, 한 번 먹으면 한 송이 다 먹어도 입이 개운하죠. 또, 품종 변경의 위험성도 캠벨을 유지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예요. 새로운 품종이 생기고 공급이 적을 때는 가격이 좋으니 생산자가 늘어나죠. 그런데 생산자가 늘어 공급이 많아지면 가격은 다시 떨어져요. 그렇게 되면 원래 있던 품종의 공급량은 적어져서 가격은 다시 올라가죠.”

  현재 시장가격도 이를 증명한다. 2년 전에 비해 캠벨 가격이 지난해부터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는 것. 공급량이 적기 때문에 유통업자들의 물량 확보 경쟁도 치열하다. 그래서 많은 농민이 밭 전체에 해당하는 물량을 일정 가격에 미리 계약하기도 한다고. 용운포도작목반의 포도는 대부분 서울 가락동 도매시장으로 출하된다. 옥천읍 ‘유림 과일 백화점’에서도 용운 캠벨을 만날 수 있다.

  같은 품종을 재배하지만, 그 재배방식은 세월이 흐르며 달라지기도 했다. 현재 포도밭에는 빠져나갈 구멍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이 그물망이 쳐져 있는데, 작은 구멍이라도 있으면 새가 들어온다. “예전에는 막아놓지 않아도 새의 해를 입지 않았다”는 그의 말에서 새의 생존법도 진화한 것일까 싶기도 하다. 또 하나의 달라진 점은 ‘가온 시설’이다. 현재 시설 재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온풍기다. 그러나 예전에는 온풍기 없이도 질 좋은 캠벨을 생산할 수 있었다. “환경이 변했다는 거지”라는 그의 말에서 기후 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일이 농사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캠벨은 7월 중순부터 수확을 시작한다. 그때쯤이면 색이 다 들어 출하할 수 있는 상태로, 약간의 신맛을 느낄 수 있다. 나무에서 따지 않고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더 익히면 신맛이 없는, 가장 인기 있는 단맛의 캠벨이 만들어진다. 그 시기가 마침 휴가철이라,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작업장에 들러 사 가기도 한다고. 올여름은 제철 과일 포도와 함께 더위도 식혀보는 것이 어떨까?


월간옥이네 통권 49호(2021년 7월호)

글·사진 소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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