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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미래 바꿀 ‘읍면자치권’ 확보 운동 본격화

‘읍면자치권 확보를 위한 풀뿌리 공동행동’ 집담회 현장

by 월간옥이네

선거철이 되면 어김없이 ‘행정구역 통합’ 논의가 튀어나온다. 옥천처럼 대도시를 주변에 끼고 있는 지역은 이런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 한때 ‘지방자치 말살’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행정구역 통합 주장은, 이제 지역소멸론과 맞물려 메가시티니 중핵도시니 하는 탈을 쓰고 다시 등장하고 있다. 최근의 대구경북특별시 추진이나 충청광역연합 출범도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이다. 광역자치단체 통합(혹은 연합)으로 “수도권 일극 체제에 대항하겠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지역발전’이란 명분 뒤엔 ‘도시의 선택과 집중’을 가속화하려는 의도가 숨어있음을. 이는 곧 지금보다 더한 ‘농촌 배제’를 뜻하며, ‘수도권 일극 체제에 대항’은커녕 지역소멸론을 부추길 가능성만 높아진다는 것을.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오래전부터 ‘읍면자치’를 중심으로 한 풀뿌리자치, 주민자치의 중요성을 역설해온 이들이 있다. 시·군 단위 자치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읍면자치라니,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자치(自治)란 본래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실현되는 법. 유럽이나 일본의 기초지방자치가 우리의 읍면과 유사한 단위에서 운영된다는 점을 떠올려본다면 ‘읍면자치’는 결코 낯선 개념이 아니다. 더구나 이는 군사 독재 이전까지 우리 역사에 실재했던 제도로,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읍면자치 실현을 위한, 농촌 주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이 닻을 올렸다. 2월 9일 충남 홍성군 홍동면 마을활력소에서 ‘농촌 읍면자치권 확보 운동’을 위한 집담회가 열렸다. 마을연구소 일소공도(소장 구자인)와 공익법률센터 농본(대표 하승수), 동양대 황종규 교수 등이 중심이 돼 개최한 이번 집담회에는 전남 해남·영광, 전북 김제, 충남 당진·부여·보령, 경북 경주와 대구, 충북 괴산 등 전국 각지에서 60여 명이 참석해 ‘농촌 읍면자치권 확보’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여줬다.


월간 옥이네 이번 호에서는 2월 9일 집담회 현장에서 진행된 두 가지 발제(△동양대 황종규 교수의 ‘농촌 읍면자치권 확보 운동의 필요성과 방안 검토’ △마을연구소 일소공도 구자인 소장 ‘읍면 자치운동, 향후 5년의 실천 경로와 토론과제 제안’)를 정리해 담는다. 월간 옥이네는 향후 진행될 관련 현장을 지면을 통해 꾸준히 소개할 예정이다.


한편 이날 현장에서 참가자들은 ‘읍면자치권 확보를 위한 풀뿌리 공동행동(읍면자치공동행동)’을 결성하기로 합의했다. 공동사무국은 △공익법률센터 농본 △마을연구소 일소공도 협동조합 △마을학회 일소공도 △주민자치법제화네트워크 △지역재단 △한국마을연합 등 6개 단체가 맡는다.


250209_31.jpg <사진제공: 농본>


농촌 읍면자치,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행정 구조에서 읍면은 기초지방자치단체 하부 조직으로서 자치권이 없는 상태다. 읍면장은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이 임명하는 공무원으로, 실질적인 자치 행정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전통적으로 마을에서 직접 선출해온 이장도 법적으로는 읍면장의 ‘임명’이 필수다. 읍면 주민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적 장치 역시 마련돼 있지 않다. 반면 유럽, 일본 등에서는 우리의 읍면 규모와 유사한 단위가 기초지방자치단체로 기능한다. 자연히 직접민주주의, 주민자치가 가능하다. 이는 우리의 읍면자치권 확보 논의에 중요한 참고 사례이기도 하다.


법 개정을 통한 읍면자치권 확보 방안도 함께 거론된다. 지방자치법 또는 지방분권균형발전법 등의 개정을 통해 읍면 단위 자치 거버넌스를 법제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읍면장 주민추천제 △읍면 자율예산제 △주민자치회 권한 강화 등이 포함된 시범사업 시행 역시 이번 간담회에서 나온 제안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했던 읍면장 주민추천제 활성화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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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 한계 극복할 읍면자치”

황종규 교수

동양대 황종규 교수는 읍면자치권 확보 논의에 앞서 “한국의 발전 과정은 곧 면을 없애는 과정”이었음을 분명히 한다. 수도권 집중화 속 불균형한 국토 발전이 오늘날 지역소멸과 농촌 위기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그는 바로 이 ‘농촌 소멸’이라는 위기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읍면자치권 확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2023년 기준 전국 면 지역 평균 인구는 3천800명, 읍 인구는 2만1천 명 수준입니다. 여러 분석이 필요하지만, 농촌 안에서도 인구 이동이 면에서 읍으로 쏠리고 있음을 보여주죠. 물론 모든 농촌 지역 인구가 읍에 집중되는 것도 아닙니다. 인구 5만 이상의 읍이 대부분 수도권에 몰려있기 때문에 농촌 지역에는 인구 2만 명 이하의 읍도 꽤 될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향후 20년 내에 농촌 인구는 현재의 3분의 2 수준으로 줄어들리라 예상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중앙집권적 행정 구조만으로는 효과적인 대응이 어렵습니다. 읍면 단위에서 주민들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해져야 하고 그래야 지역별 맞춤형 정책을 수립·실행하는 역량이 갖춰질 수 있습니다.”


작은 단위의 자치권 확립이 민주주의의 안정성을 높인다는 사실 역시 중요한 근거다. 지역의 자치권이 강해져야 지금과 같은 국가적 위기를 예방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 관료와 엘리트 중심 대의제 구조인 한국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생활 속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읍면자치권 확보가 필수라는 설명이다. 이는 우리 민주주의의 질적 향상에 있어서도 핵심 과제다.


“자치회가 없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주민 스스로 그 권리를 포기하게 만든 게 그간 한국 지방자치의 역사”였다고 지적한 황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는 소멸 위기를 극복할 자발적 힘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만들어진 정책이나 조례에 대한 주민 거부권은 물론 비준권, 발안권이 주민 투표로 보장돼야 한다”며 “이는 전세계 38개 국가에서 이미 시행 중이기도 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행정리 마을자치회의 법적 권한을 보장하기 위한 방법도 함께 고민해봐야 합니다. 조금 더 나아가면 주민의회를 만들 수도 있겠죠. 마을 이장이나 회장 등 주민 대표가 모인 평의회가 주민의회로도 역할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 평의회가 면 단위 예산을 심의해 지역에 정말 필요한 사업과 제도를 정착해갈 수 있을 겁니다. 현행 지방자치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과 함께 법률 개정 없이 조례로 가능한 부분도 분명 존재하는 만큼 다양한 고민과 시도가 있어야겠습니다. 현재 우리 지방자치에 대한 상상력은 너무나 편협한데, 국내 사례와 함께 일본이나 미국 방식 등 다른 나라 제도를 꼼꼼히 살펴보며 새로운 장을 만들어 갈 수 있길 바랍니다.”

IMG_0899.JPG 왼쪽부터 황종규 교수, 하승수 대표, 구자인 소장.


“중앙 정치에 휩쓸리지 않을 공동학습 제안”

구자인 소장

마을 공동체의 공동학습 실천 사례를 꾸준히 만들어온 마을연구소 일소공도의 구자인 소장은 ‘우리 안의 윤석열’을 찾아 바꾸기 위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운동”으로서 읍면자치권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제는 ‘뜨내기 시민’에서 생활세계 주민이 더 필요한 시대”라고 규정한 그는 “선진 사례를 만들고 있는 전국의 실천조직들이 그간 축적한 경험을 기반으로 한 걸음 더 진전된 전략 수립을 해야한다”고 했다. 이는 곧 “지역 차원의 부문 운동, 개별 실천의 한계를 극복하고 읍면 지역사회를 변화할 수 있는 통합적 실천전략”과도 연결된다.


이를 위해 체계적인 공동학습과 실천사례를 만들어가자는 게 구 소장의 제안이다. 읍면자치 운동이 중앙 정치 흐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선 이에 동의하는 주민과 조직이 공통의 이해를 형성하고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자 현장에 있다 보니 자주 모이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온라인 회의를 활성화하고 농한기 집중학습을 진행”하는 것이 구 소장이 제안한 공동학습 실행방법이다. 공동학습 결과는 향후 지역별 학습 자료로 활용하는 한편 국회 정책 토론회, 전국대회 개최 등으로 확산해갈 수 있다.


이런 공동학습을 통해 무엇을 핵심으로 제안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설명이 이어졌다. △읍면장 주민추천제 및 전문직위제 도입 △주민자치회 기능 확대 및 권한 강화 △자율예산제 △주민 주도 읍면 발전계획 수립 등이 그것.


“읍면장 주민추천제나 전문직위제 도입으로 읍면 행정의 정책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향을 고민해봐야 합니다. 읍면이 민원 창구만 되는 게 아니라 읍면의 정책을 만드는 기능을 가져야 하는데요. 현재 주민자치회 전환 역시 전국 상황을 살펴보면 굉장히 불균등합니다. 전북은 하나도 전환되지 않았다거나, 전환이된 다른 지역에서도 아무 권한이 없고 자원봉사를 하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다 보니 주민자치회 무용론까지 제기되기도 합니다. 사실 이건 주민자치회의 문제가 아니라 행정의 문제인데요. 이런 상황이 빨리 해소되지 않으면 주민자치회의 좌절감이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구 소장은 이러한 핵심 주제를 향후 “공동학습과 토론, 합의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구체적으로 정리”하는 방향으로 추진하자고도 덧붙였다. 더불어 “읍면자치라는 말이 지역사회와 주민들에게 좀 더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한 표현과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무엇보다 현장에 뿌리를 갖고 활동하는 주민 주체와 단체의 참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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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읍면자치공동행동은 3월 13일과 14일 충남 홍성군 장곡면 오누이다목적회관에서 1차 집중학습회를 개최한다. ‘일본 농촌 정촌자치의 역사적 경험과 시사점’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학습회에는 △동경다마자치체문제연구소 이케가미 히로미치 이사장 △시마네대학 호보 타케히코 명예교수가 초빙돼 일본 농촌 정촌 단위 활동을 소개할 예정이다. 읍면자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문의: 041-641-1505(마을연구소 일소공도)


월간 옥이네 93호(2025년 3월호) 글 사진 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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