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 린필드 지음, 나현영 옮김 | <무정한 빛, 사진과 정치폭력>
ㅡ 바다출판사가 말하는 <무정한 빛, 사진과 정치폭력>
어찌할 수 없는 세계의 비참 앞에 ‘외면해!’라고 말하는 회의주의자들에게, 저자는 그럼에도 보지 않으면 바꿀 수 없다고 대답한다. 고통스런 사진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사진이 전하는 무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희생자가 처한 프레임 밖의 현실을 이해하고 행동할 것을 요청한다. 혁명의 낙관주의가 사라지고 냉전 이후 인간의 잔인성이 폭발한 이 허무주의 시대에도, 저자는 카메라가 이끌어내는 ‘공감의 도약’을 믿으며, 사진이 ‘연대’의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한다.
ㅡ 번역가 나현영이 말하는 <무정한 빛, 사진과 정치폭력>
사진에 대한 담론이 많이 정체되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흔히 떠올리는 다큐멘터리 사진 이미지는 (권위 있는) 백인 사진가들이 제3세계의 (비참한) 피사체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모습인데요, 이런 시대엔 수전 손택이나 존 버거 같은 비평가들의 비판적 사진 담론이 유의미했다고 생각합니다.
파르누드, 아흐마디네자르 재선에 대한 항의시위. 이란 테헤란, 2009.
이란은 2009년 여름,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재선 조작 이후 일련의 대규모 시위로 몸살을 앓았다. 이 사진에서는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한 시위자가 카메라를 높이 쳐들고 있다.
하지만 이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 21세기의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사진 이미지는 스스로 역사를 기념하고 증명하기 위해 휴대폰 카메라로 직접 찍어 곧바로 전 세계에 전송하는 수천수만의 이미지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주의적인 사진인 것이죠. 이 책은 급변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가능성과 한계를 이해하고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
P.S. 나현영 씨의 번역 뒷이야기
Q. 번역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A. 책에서 묘사하는 사진들을 구글 이미지로 일일이 찾아보고 확인하며 작업을 했는데, 새벽마다 그 사진들을 들여다보고 있기가 무척 괴로웠습니다. 특히 캄보디아 투올슬렝에서 학살당한 수감자들의 사진은 찾아보기가 무서울 정도였어요.
책에 실린 이 사진은 원서 표지 사진이기도 한데, 번역하는 내내 이 소녀의 눈동자가 저를 따라다니는 기분이었습니다.
작가 미상, 크메르루주의 어린이 수감자. 캄보디아 투올슬렝, 날짜 미상
1975년부터 1979년까지 크메르루주의 가장 악명 높은 고문 센터 투올슬렝에 1만 4000명이 수감되었다. 살아남은 수는 단 7명이었다. 이들의 범죄 혐의는 CIA 간첩 행위에서부터 “‘자유’를 사랑한” 혐의까지 다양했다. 위 사진의 이름 없는 어린아이마저 반혁명분자 혐의로 사형당했다.
Q. 맘에 드는 번역 문장 하나만 소개해주세요.
A. '남자는 왼쪽 어깨에 바이올린을 걸치고 오른손에 활을 들고 꼿꼿이 앉아 의자 등받이에서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이고 있다.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은 외스트, 그리고 지금은 우리를 바라보는 이 연주자의 표정이다. 그는 살짝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자신이 바닥까지 몰락했다는 사실은 알지만 어떻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문명세계와의 마지막 끈인 음악이 그를 구원해주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인간다운 인간을 알아볼 수 있는 순간이 오기를 갈망하지만 그런 순간은 오지 않을 것임을 거의 확신하는 것처럼 말이다.'
시각 이미지인 사진을 언어로 묘사하는 건 어려운 일이고, 그걸 또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죠. 사진 묘사는 특히, 어떻게 하면 눈앞에 그려지는 것처럼 감각적으로 생생한 문장을 만들 수 있을까 고심하며 옮겼습니다.
글 임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