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어린이 책 읽기 운동 펼친 이가을 동화작가
독자는 월간옥이네 4호~8호에 연재된 ‘가을동화’를 기억할까? 독자는 약하고 보잘것없는 이의 간절한 마음을 들여다보는 눈, 그 마음을 외면하지 않는 손, 정겨운 말과 이름이 있는 가을동화를 읽으며 누구를 생각했을까? 나는 동화를 읽을 때마다 새하얀 백발을 질끈 묶은 할머니를 떠올린다. 할머니는 낭랑한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거나 삶을 이야기한다. 결론은 항상 같다. 각자의 자리에서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 성장할수록 더 큰 시련이 닥치는 것은 당연하고, 그 시련을 슬기롭게 이겨내면 더 단단한 사람이 된다는 것. 할머니의 따뜻하고 생생한 눈빛과 꼿꼿한 허리 역시 수많은 고난을 이겨낸 것임을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된다. ‘가을동화’를 연재한 이가을(79) 동화작가다.
이가을 작가, 옥천에 살다
이가을 동화작가는 2014년 7월 옥천 동이면 목사리에 자리 잡는다. 고향인 대전은 너무 큰 도시로 변해 주변 농촌 지역을 살 곳을 찾고 있던 참이었다. 이가을 작가는 공주, 금산, 옥천 사방으로 다니던 중 대전 계룡문고 이동선 사장의 제안으로 옥천에 있는 집을 알아보게 된다. 그러나 우연인지, 인연인지 옥천과 만남은 더 일찍부터 시작됐다.
“창비 작가들끼리 1년에 두 번 문화 소외지역을 찾아가는 활동을 해왔어요. 그때 안남면 배바우도서관에 갔었죠. 20년 전부터 시골에 정착해 살고 싶었는데 마땅한 곳을 못 찾다 배바우도서관에서 만난 옥천신문 황민호 국장님과 계룡문고 이동선 사장의 도움으로 옥천에 집을 얻게 된 거예요.”
경기도 성남시 분당, 과천, 제주도, 중국 상해, 용인까지 여러 지역을 거쳐 살았던 탓이다. 한 곳에 정착하고 싶고, 이웃이 없는 도시보다 나누고 거드는 시골에서 어우러져 살고 싶었다. 동이면 목사리에서 이가을 작가는 농사일을 배우고, 바느질과 뜨개질을 하고, 책을 읽었다.
“내가 책이 많으니까 5톤 트럭 두 대를 빌려 이사했어요. 그러니까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서 누가 오나 살펴봐. 처음에는 왜 이 시골에 왔소, 어디서 왔소, 하고 묻더니 금방 친해져서 만날 밤, 호박 먹을 것 갖다 주더라고요. 또 그 사람들은 어떤 계절에 무엇을 심고 어떻게 기르는 줄 아니까 나한테 농사일을 가르쳐줬죠. 나도 시골에 없는 샌드위치 만들어 나눠줬는데, 그럼 ‘무신 빵이 이렇게 맛나냐’고 해요.”
도시가 싫어 시골에 정착해도 잘 녹아들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인데, ‘함께 어우러지는 삶’을 살고자 했던 이가을 작가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가을 작가는 한발 더 나아가 청소년과 책 읽는 ‘목요글방’을 진행한다.
“옥천에서 했던 일 중 가장 좋았던 건 목요글방이에요. 아이들과 함께 깊이 있는 책의 세계로 들어갔던 거잖아요. 글방에서 책 읽기에 맛 들인 아이에게는 변화가 생기고, 그 변화로 주변을 밝히게 되죠.”
이가을 작가가 책으로 세상을 밝혀온 역사는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책 읽어주는 것의 이름
“1977년, 40대 때 일반 서점을 차렸어요. 토요일 오후 3시마다 책 읽어준다고 아이들을 불렀죠. 그런데 아이들이 너무 많으니까 서점이 꽉 차서 안 되겠는 거예요. 그래서 아파트 잔디밭에서 읽다가, 어떤 엄마가 자기 집 거실이 넓으니 오라고 해서 가고, 그렇게 계속 책을 읽어줬어요. 하루는 책 속에 퐁당 빠진 아이들에게 ‘이거 쓴 작가 만나볼까?’ 했죠. 아이들은 어떻게 만나느냐고 했지만, 출판사와 작가가 다니는 신문사에 연락해 정말 작가를 만나게 된 거예요. 당시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말도 없을 때였죠.”
이가을 작가는 1983년에는 일반 책을 다 반품시키고 어린이 전문 서점과 어린이 도서관 ‘가을글방’을 열었다. 어린이 책이라고는 전집뿐이던 시절, 이가을 작가는 눈에 띄는 출판사에 일일이 전화해 책을 주문하는 식으로 가을글방을 채운다. 그러던 어느 날, 이가을 작가는 초등학교 2학년 큰딸이 학교에서 가져온 ‘소년조선일보’를 보게 된다.
“학생 신문인데 너무 재미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왜 이렇게 재미없게 만드느냐고 편지를 보냈죠. 그랬더니 어떻게 하면 재밌게 만들 수 있겠냐고 답장이 오더라고요. 동화도 한 편 싣고, 책 이야기도 실어라, 했더니 그럼 글을 좀 써줄 수 있겠냐고 답이 왔어요. 그렇게 글쓰기 시작했죠.”
이가을 작가는 50살이 가까운 나이가 돼서야 글쓰기 시작했다. 등단한 것도 아니고 ‘소년조선일보’와 ‘소년한국일보’에 꾸준히 글을 쓰며 작가가 됐다. 사실 20대부터 글을 쓰고자 했던 이가을 작가의 붓을 꺾은 건 남편이었다. 이가을 작가는 이후 25년간 아무것도 쓰지 않았지만,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아이들을 재운 새벽에도 졸린 눈을 비벼가며 책 읽은 세월은 그녀의 몸 깊숙이 차곡차곡 쌓였다. 지식과 철학이 꾹꾹 담긴 그녀의 동화는 책으로 출간되고, 사람들에게 읽히기 시작했다.
또한, 이가을 작가는 다른 사람에게 책 읽어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요즘 가정이나 학교에서는 기본적인 도덕 교육이 없고 출세 위주 이야기만 해요. 몸이 클 때는 정신도 함께 커야 하잖아요. 청소년에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 용기 있는 사람, 세상에 도움 되는 사람이 되라는 말을 책으로 전하고 싶었어요.”
세상은 이것을 ‘청소년 책 읽기 운동’이라고 부른다.
동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처럼
지난 4월, 옥천을 떠나 충주에 완전히 정착한 이가을 작가는 여태껏 해왔던 일을 계속하고자 한다.
“충주 노은면에 집을 구했어요. 제가 산과 나무를 좋아하는데, 집 앞 개울 앞에 바로 산이 있고, 집이 감나무, 대추나무, 등나무, 오가피나무로 둘러싸인 곳이에요. 여기 살면서 죽을 때까지 좋은 책 찾아 아이들에게 읽히고, 마을회관에서 책 읽어주고, 집에 20평짜리 서재를 만들어 개방하려고 해요. 여유로운 삶을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요.”
작가라면 누구나 안고 있는 작품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나누는 삶을 살 것이라는 이가을 작가. 부자가 아니어도 삶의 방식에 따라 여유롭고 행복할 수 있다는 이가을 작가. 그녀가 썼던 동화 속으로 들어가는 이가을 작가. 그녀는 우리의 삶 역시 따스한 동화 한 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