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터뷰

‘별 것’ 아닌 듯한 일상을, ‘별 것’으로 만드는 일

소연필름 유소연 씨

by 월간옥이네


IMG_8117.JPG

ㅇㅇ식당, ㅇㅇ슈퍼 등등. 동네 가게에 눈길을 두다 보면 사람의 이름을 붙인 간판들을 흔히 본다. 보통은 자녀의 이름을 간판에 건 채, 부모님이 가게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어쩌면 지역에서 청년이 살아가는 현실의 단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개인으로 청년이 서 있다기보다는, ‘누구의 자녀’로 인식되는 분위기가 강한 현실과 겹쳐 보이는 건 지나친 착시인 걸까.

‘소연필름.’ 이곳은 소연 씨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운영하는 곳은 아니다. 아직은 어리다고 보일지 모를 나이지만, 유소연(29, 옥천읍 서대리) 씨는 제 이름을 걸고 당당히 프리랜서 사진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Part1. 원래 사진작가를 하려던 건 아니었다

소연 씨의 꿈이 처음부터 사진작가는 아니었다. 그녀의 10대 시절 꿈은 ‘음악하는 사람’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동네 친구들이랑 같이 밴드를 만들어서 학교 축제나 지역 축제에 노래를 부르러 다녔어요. 노래 부르는 게 너무 즐거우니까, 한번 제대로 음악을 배워보자 준비했던 게 고등학교 2학년 때였고요.” 남들보다 조금은 늦은 음대 입시 준비였지만, 백제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 입학시험에 붙어 스무 살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보낸 그녀.

좋아하는 노래를 전공하고, 실용음악과 동기들과 재즈밴드도 결성해 홍대, 이태원 등 라이브 클럽에서 노래 부르고 다녔던 20대 초반의 생활이었다. 하지만 마냥 즐겁진 않았다고. 오히려 점점 더 지쳐갔다. “서울에서 타지 생활한다는 게, 만만치는 않았던 것 같아요. 특히 경제적인 부분이요. 보컬 강사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는데, 월세하며 식비, 교통비 등등 월급의 절반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게다가 보컬 강사는 수입이 조금 불안정하기도 하거든요. 수강생이 얼마나 들어오는지에 따라 수입이 매번 다르다보니, 그것에서 오는 불안감도 조금 있었던 것 같아요.”

그녀 주변 친구들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오전에 알바하고, 개인 레슨 몇 탕을 뛰고. 그렇게 지내다보면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공연은 조금밖에 못하게 돼요. 그 공연들도 수당을 1~2만원 정도 받는 현실이고.” 그런 현실에서 3년 정도를 지내다 보니, ‘내가 정말 음악을 좋아하는 게 맞나’ 하는 회의감까지도 밀려왔다고. 여러 고민으로 지쳤던 마음을 안고 고향에 내려왔다. 그때가 26살이었다.


Part2. 귀향, 다시 꿈을 꾸다

26살. 고향에 내려와 경찰공무원 준비를 시작했다. “당시 경찰을 많이 뽑던 시기이기도 하고, 오래 경찰 일을 하던 아버지의 권유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역시 하고 싶은 일이 아니다보니, 공무원 준비에 몰입한다는 건 어려웠다. 그보다 그녀가 오히려 마음이 끌렸던 건 ‘사진’이었다.

“대학생 때부터 사진 찍는 걸 좋아했거든요. 고향 와서도 같이 사진 찍을 친구들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충청권 사진동호회’를 네이버에 무작정 검색했고, 그때 발견한 곳이 ‘세종사진동호회’였다. 동호회 사람들을 처음 만났던 건, 홍차카페 소정에서 ‘옥천 번개’를 연다는 공지가 떴을 당시. 그녀의 바람을 충족시켜줄만한, 같이 사진 찍으러 다닐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금의 남자친구도 만나게 됐다. “지금 사진작가를 시작한 건, 남자친구의 도움과 영향이 컸어요. 남자친구는 대학에서 영상을 전공했다보니 카메라를 잘 다루어서 저에게 많이 알려주기도 했고. 사진작가를 해보라고 제안한 것도 남자친구였어요. 제가 원체 사람 만나는 것, 이곳저곳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그런 적성을 가진 저에게 스냅사진 작가가 ‘딱’이라면서요.”

IMG_7965.JPG

동호회 활동과 공무원 준비를 병행하던 3년간의 생활을 접었다. 올해 그녀는 ‘소연필름’이란 이름을 걸고 스냅사진 작가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예전에는 어떤 기념사진을 찍을 때, 스튜디오에서 많이들 촬영했다면 요새는 야외에서 스냅사진촬영을 많이 하는 추세에요. 스냅사진은 스튜디오보다 좀 더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아직 지역에서는 다소 생소한 ‘스냅사진’. “지금은 지역 분들보다는 타지에서 의뢰가 많이 들어오는 편이에요. 인스타나 블로그로 주로 홍보를 하다보니, 충청권은 물론 서울 쪽에서도 의뢰가 오는 편이고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활동, 아직은 지인들 위주이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도 슬며시 들었다. “지인은 손에 꼽고, 거의 모르는 사람 위주에요. 그리고 요새는 점차 셀프웨딩을 많이 하는 추세이다 보니까, 셀프웨딩 쪽으로 의뢰가 많이 들어와요.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가 워낙 비싸니까. 셀프웨딩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거든요.” 얼마 전에는 셀프웨딩 촬영을 하러 올림픽 공원에 갔는데,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손에는 풍선을 든 신랑신부가 이곳저곳 촬영을 하고 있었다고.

“올림픽공원을 주말에 가면 ‘웨딩천국’이란 말이 떠오를 정도로, 셀프웨딩하는 예비신랑신부가 정말 많이 보여요. 하지만 옥천에서 셀프웨딩에 대한 수요를 기대하기에는 젊은 사람들 자체가 조금 적은 편인 것 같아요. 그리고 스냅사진을 돈 주고 찍는 문화도 낯선 것 같고요. 지역에서 스냅사진 문화가 자리 잡으려면 최소 3년은 걸리지 않을까….”

스냅사진 문화가 생소한 지역 현실에 대한 아쉬움이 아예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그래도 어차피 계속 이어나갈 일이니까” 괜찮다는 말을 덧붙이는 그녀다. “그리고 옥천에 은근히 예쁜 장소들이 많아요. 타지에서 스냅사진 문의가 오면, 옥천의 장소들도 추천하곤 해요.”


<소연필름’s pick - 스냅사진 장소로 추천하는 곳 best 3>

1. 옥천 양품점

옥천양품점.jpg

2. 장계관광지

장계꽌광지.jpg

3. 뿌리깊은 나무

뿌리깊은나무.jpg


Part3. 그녀에게 옥천이란?

옥천에 애정을 보이는 그녀지만, 내년 4월 결혼을 앞둔 그녀는 곧 옥천을 떠나 충북 음성에서 지낸다. 삶터를 옮기는 일이 그녀의 사진작가 활동에도 변화를 주게 될까, 기자의 질문에 “크게 지장 없을 거라”며 그녀는 쿨한 답변을 내놓는다. “이 일 자체가 워낙 많이 돌아다니는 일이라, 어디 거주하는 건 크게 상관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친정이 옥천에 있어 매 주말마다는 옥천에 오려고 해요.”

옥천에 자주 오려는 계획은 단순히 고향집에서 가족을 보러오고자 하는 이유만은 아니다. 그녀는 지금 ‘청춘사진관’이란 이름으로 지역 내 정신지체아동을 대상으로 사진교육을 진행하기도 하고, 청소년어울림마당 ‘와락’에서 사진을 무료로 찍어주는 부스에도 참여한다.

IMG_7946.JPG

처음 ‘청춘사진관’을 시작한 건 친척이자 안내면에서 ‘토닥’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이종효 씨의 영향이 컸다. “좋은 일이니까, 한번 해보라고 슬쩍 권유를 하더라고요. 사실 얼떨결에 시작한 일인 것 같기도 한데, 지금은 사진 가지고 사람들 만나는 게 되게 즐거워서 계속 ‘청춘사진관’ 일을 하고 싶어요.” 특히 얼마 전 시작한 사진교육에 대해 상기된 말투로 이야길 꺼낸다. “처음엔 내가 아이들을 잘 지도할 수 있을까, 엄청 긴장했었거든요. 근데 아이들이 집중을 너무 잘 해주고, 엄청 열심히 참여하더라고요. 내용은 사실 일반 사람들이 볼 땐 엄청 기초적인 거예요. 사진 구도를 어떻게 잡는지, 그 사진을 블로그에 어떻게 올리는지 등이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냥 하면 되는 거지만, 아이들은 하나씩 할 때마다 되게 뿌듯해하고 자랑도 해요 저한테. 그런 모습 보면 제가 다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이런 일상에서의 경험들이 그녀에게 지역에 대한 애정을 조금씩 싹트게 했다면, 얼마 전 지방선거는 그녀가 지역에 대한 눈을 더 넓히게 됐던 계기였다. “이번 선거 때, 군 의원 후보 선거운동원으로 일했어요. 주로 사진 촬영하고, 자료 조사하는 일을 했었죠. 이것도 여성취업센터에서 일자리를 소개해줘서, 경험 삼아 해볼까 하면서 시작했었는데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사실 이전에는 군의원이 뭐하는지 자세히 알지 않았고, 알려 하지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이번에 군의원이 정말 중요한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좋은 군의원이 뽑혀야 우리의 삶이 바뀌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또 하나, 그녀는 “선거운동문화도 이제는 조금씩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쩔 수 없이 지금은 선거운동원을 많이 쓰는 사람이 유리한 현실이라고 해야 하나. 손 흔들고, 노래 틀고, 사람들에게 인사드리고 그런 게 선거운동의 중심이 되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보다는 군의원 후보와 군민이 서로 정책적인 부분을 소통하는 자리가 훨씬 많아져야 될 것 같아요. 그렇게 선거운동문화가 개선이 되어야, 투표에 임하는 사람들의 인식도 더 좋아질 것 같아요.”


Part 4. The ‘And’

옥천에서 가수의 꿈을 키우던 10대 시절을 지나, 지금은 사진작가 그리고 지역 사람들의 삶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으로 어엿하게 서 있는 듯한 소연 씨. 거주지는 옮길지라도, 옥천에서 계속 사진을 매개로 한 활동을 계속 이어나갈 거라고.

“저는 사진의 가장 큰 매력은 그거인 것 같아요. 별 것 아닌 듯한 일상을 별 것으로 만들어 주는 거. 앞으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일상을 계속해서 찍어나가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조그맣게 사진집 출판 계획도 하고 있고요.”

사실, 그녀는 지금도 한 가지 사진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1년 셀프웨딩’이 바로 그것. “녹음 우거진 서산 용비지란 곳에서 첫 웨딩 촬영을 마쳤고, 두 번째로는 남자친구와 저와 처음 만난 곳인 장계관광지에서 웨딩 촬영을 했어요. 아마 이번엔 바다로 가지 않을까 싶어요. 여름의 느낌을 줄 수 있는 곳으로. 이렇게 열 두번의 촬영을 하면, 사계절의 변화를 다 담을 수 있잖아요. 결혼준비 이것저것 할 게 많지만, 이렇게 ‘사진’만큼은 재밌게 해보려고요.”

그리고 또 하나, 조만간 혹은 언젠가의 계획이 있다. ‘음악’. “제 삶의 모토가 그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살자. 지금은 제가 가장 좋아하고 즐거운 게 사진일 뿐이에요. 앞으로는 좋아하는 게 그 어떤 것이 될지 모르는 일이고요. 지금 저는 피아노를 조금씩 다시 연습하고 있어요. 십대 시절, 음악이론을 처음 가르쳐주었던 분이 스타학원 원장님이거든요. 지금 스타학원에서 다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아주 조금씩. 지금 당장 음악을 다시 하겠다고 확신은 못하겠지만, 언젠가. 내가 또 음악에 가장 큰 즐거움을 느끼는 때에, 다시 음악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IMG_8051.JPG


글 사진 임유진 기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가을동화를 써 내려간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