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in 둠벙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은 전시‧공연 등을 진행하는 지역문화창작공간입니다. 5월 19일부터 6월 10일까지 이선일 작가의 <반란의 고향> 전시가, 6월 17일부터 7월 16일까지 김하연 작가의 <구사일생> 전시가 진행됐습니다. 둠벙에서 전시를 연 두 작가와 나눈 이야기를 지면에 담습니다.
다른 작가, 다른 주제였지만 두 작가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작품으로 삶을 담고 세상과 호흡하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이선일, <반란의 고향>
빨갛다. 붉고 따뜻한 기운 속에 나무가 우뚝 서 있다.
‘거대한 뿌리’엔 집집들이 탄탄히 자리 잡아 있고, ‘반란의 고향’속 나무는 촛불처럼 활활 타오른다. 두 그림 모두 옥천이 배경이다.
이선일 작가는 청산면 한곡리 문바위, 안남면 등주봉을 배경으로 ‘거대한 뿌리’, ‘반란의 고향’을 그렸다. “한곡리 느티나무 아래 있는데, 기분이 묘했어요. 동학군이 과거 토론하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었고, 그때 그 나무를 꼭 그려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어요.” 그날 옥천에서 느꼈던 그 마음을 시작으로, 동학의 거대한 뿌리와 지금의 촛불혁명을 그림으로 빚었다.
“제 그림 중 유일하게 동학과 관련된 작품들이에요. 작년 겨울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옛날 동학군들이었겠구나 싶어요. 동학농민운동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누군가 마음속에 계속 살아남은 그 정신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결국 대통령도 탄핵하게 만든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옥천 말고도 다른 마을을 배경으로 한 그림들을 그려왔다. 거창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시작은 어릴 적 고향 충남 온양에서 친구들과 놀던 기억, 지금 서울시 성북구 삼선동에 살고 있는 시간들에서부터였다.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사람들과 인사 나누고 마을 벽화도 그리면서 마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어렸을 때 살던 고향에서의 기억과 지금 사는 마을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그가 마을을 담은 그림에는 나무가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마을을 걷고 그리다보니 그 길이 꼭 나뭇가지 같았다고. 그에게 나뭇가지는 만남과 어울림의 뜻이다. “제가 사는 마을에서 길을 지나가면 저한테 ‘술 한잔 하고 가~’라고 말 걸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 마을에선 길이 단순히 집으로 가기 위한 통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공간인 거에요.”
제주해군기지 반대투쟁현장인 강정마을 구럼비를 그린 그림에도 길이자 나뭇가지가 뻗어있다. 시선을 달리하면 뿌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강정마을에 갔을 때 구럼비를 파괴하는데 찬성하는 집과 반대하는 집이 깃발을 두고 서로 인사도 안 하더라고요. 밀양도 마찬가지이고요. 마을이 큰 나무의 뿌리처럼 단단한 공동체성이 있다면 외부의 억압에도 흩어지지 않을텐데 하는 마음으로 그리게 됐어요.” 그에게 그림이란, 마을이야기 뿐은 아니다.
“세월호 참사를 겪고 나서나 사드 문제가 터지고 나서나 그림으로 그것들을 담았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그 어떤 것이든 담고 싶어요. 특히 우리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들을요.”
김하연, <구사일생>
구사일생. 김하연 작가는 ‘아홉 번 죽을 뻔하다 한번 살아난다’는 뜻의 사자성어를 전시 제목으로 띄웠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는다. “길고양이들은 과연 아홉 번 죽고 열 번을 살아나면 정말 살 수 있을까요?”
김하연 작가는 ‘바람 불지 않아도 흔들리는 길고양이’들을 11년 동안 만나고 있다. 만나는 아이가 많아질수록 그리운 아이는 늘어난다. 먼로, 우뚱, 만피, 랑자, 타미, 삐끼, 꼬치, 나비, 해리, 민식, 호식, 일호, 쁘니, 찰리, 순뚱, 연탄, 이호, 캐니, 보미, 뭉치, 수라, 길동…. “아이들마다 다 이야기가 있어요. 길고양이 얘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고 슬프고 어쩔 때는 기쁘기도 한 얘기가 있어요.”
그는 무릎을 굽히고 고양이의 시선과 같은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가 바라본 ‘사람들 무릎아래 세상’은 전쟁터고, 지옥이었다. “길고양이 사체수습이 1년에 8천 건이에요. 공식적으로 처리되는 게 그 정도고, 몇 배로 많은 길고양이들이 일상적으로 그렇게 죽어나가고 있는 거에요.” 로드킬당한 고양이들을 그의 손으로 땅에 묻은 일도 수차례. “로드킬당하면 보통은 바로 죽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어요. 도로 한가운데 쓰러져 바라본 기울어진 세상이 어땠을까 생각하면 미안하단 생각 말곤 아무것도 안 들어요.”
로드킬 뿐 아니라 고양이를 학대하는 사람들은 수도 없다. “고양이가 사람보고 도망가는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에요.” ‘사람한테 해꼬지한다’는 고양이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에서부터 더럽다고 여기는 분위기 또한 팽배하다. “한 아파트입주자대표회장 후보는 고양이는 살인진드기, 조류독감을 옮기기 때문에 고양이를 퇴치하겠다는 공약을 내놓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제가 길고양이한테 밥을 주는 그릇에다가 똥까지 놓더라고요.”
김하연 작가는 ‘참 정성이 갸륵하신 분들’이라고 표현하면서도, 현행 동물보호법 상 고양이를 학대하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단 사실 또한 인지시킨다. 그러나 답답한 현실은 이 법으로 단 한명도 처벌받은 적이 없다는 것. “TV에서 간혹 고양이를 학대하는 사람들 얘기가 나오잖아요. 근데 아무도 처벌 안 받았어요. 왜냐고요? 초범이라는 이유로요.”
이 답답하고 불편한 현실이 그가 전시를 하고 관객과 얘기 나누는 이유다. “불편한 현실을 외면하면 현실은 그대로일 수밖에 없어요. 저는 세월호 참사 때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너무 아팠어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걸 잘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때 이후부터 강연을 하기 시작했다고. “동물권이란 거, 인권의 다른 말 같기도 해요. 다 같은 생명인 거잖아요. 생명들이 억울하게 죽어나가는 이 현실이 너무 불편하고, 싫어요. 그래서 이렇게 계속 사람들에게 사진 통해서 이야기 전하면서 이 현실을 조금이나마 바꾸고 싶어요.”
글 임유진 기자
사진 김예림 장재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