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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문화X역사

아리카와 제방에 묻힌 6천명
조선인들의 한

둠벙에 빠진 날 11탄 <일본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기록영화 상영회>

by 월간옥이네
30582198_1096071837199564_2015288063063580244_n.jpg 상영회 포스터

눈물 흘릴 틈 없었다. 죽창이 내리 꽂혔고, 사람 머리가 석류처럼 벌어졌다. 하나같이 두 손 밧줄 묶여 강제로 무릎 꿀려진 자들이었다. 축 늘어진 시신들은 쓰레기 버리듯 강에 내던지고, 제방엔 피가 넘쳤다. 뾰족한 무언가에 닥치는 대로 찔린 육신의 흔적이었다. 소설의 한 단락이 아니다. 재일동포 조인승씨가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간토)대지진 이후 아리카와 제방 일대에서 목격한 희생된 조선인들의 모습이다.


4월 27일 오후 7시 지역문화 창작 공간 ‘둠벙’에서 일본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기록영화인 ‘감춰진 손톱자국(1983년 작)’ 상영회가 열렸다. 이번 자리는 일본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을 최초로 다룬 오충공 감독의 첫 영화와 함께 ‘FIND ID(역사정체성 찾기)’ 슬로건으로 전국에 상영하고 있는 미디어세림 신채원 대표(36)가 관객과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서다. 기록의 힘을 믿는 관객들이 지인들의 손을 잡고 둠벙을 기꺼이 찾았다.


영화의 분침은 1923년 9월 1일 11시 58분을 가리켰다. 일본 가나가와 현을 흔든 7.9의 강진에 9만여 명이 숨지고, 큰 불길이 사방에 솟았다. 때마침 임금삭감과 더불어 실업자가 는 불경기였다. 혼란을 틈타 간토계엄군사령부는 ‘불온한’ 조선인이 방화를 저질렀단 유언비어를 퍼트렸다.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소문도 빠르게 퍼졌다. 절망은 광기로 변했고, 일본인들은 ‘재앙을 가져온 조선인은 살 이유 없다’며 조선인을 향한 살기가 팽배했다. 오시아게 판자촌을 떠나 아리카와 제방에 온 당시 22살의 조인승씨도 그 살기를 똑똑히 목격했다.


“다리에 선혈이 가득했어요. 사촌형 얼굴 닮은 시신을 보고 뛰어갔는데, 일본인들이 제가 도망치는 줄 알고 낫으로 다리를 찍었어요. 데라지마 경찰서로 연행됐는데 유치장 옆엔 순사들이 사람들을 열심히 죽였어요. 거적을 덮은 시체가 늘어져 있었고, 들춰보니 머리가 석류처럼 벌어져있었습니다” 영화가 끝나자, 당분간 적막함이 돌았다. 한숨이 뜨문뜨문 들렸다. 사람들은 진지했고, 이유 있는 분노를 꾹꾹 누른 표정이 역력했다. 말을 잠시 잇지 못한 신채원 대표는 말문을 열어 그날의 참상을 복기했다.


“조선인을 구별하는 자료가 있었어요. ‘주고엔 고주고센(15엔 50전)’ 같은 조선인이 잘 발음 못하는 탁음을 시키거나 세수할 때 ‘어푸어푸’, 놀랐을 때 ‘아이고’란 감탄사를 내뱉거나 심지어 여자들이 앉은 자세 등 굉장히 자세히 적혀있었어요. 더 놀라운 건 당시 일본신문이 보도한 희생자 수와 재일동포위문반이 조사한 통계를 바탕으로 독립신문이 보도한 것과 차이가 컸습니다. 일본은 가나가와 현에서 2명이 숨졌다고 했지만 독립신문은 3천999명이라 알렸어요. 재일동포위문반이 계엄당국의 눈을 피해 은밀히 희생자를 조사했다는 걸 접했을 때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습니다.”


신채원 대표가 2016년 10월 청주를 시작으로 부산 등 전국 방방곳곳을 돌아다니며 이 영화를 알리는 이유는 명확했다. 아직 찾지 못한 유족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는 “오 감독과 함께 찾은 유족 7명 중 벌써 3명이 세상을 떴고, 일부 손자들은 칠십을 바라보고 있다”며 “6천661명이 학살됐다는 사실 자체도 유념해야 하지만 그분들이 누구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더 기억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학살과 반성의 주체인 일본인들의 시선은 여전히 극명하다. 그가 직접 느낀 것만 봐도 그렇다. 학살 피해자의 유골이 유일하게 묻힌 치바현 관음사를 찾았을 땐 “대한민국 전 국민이 이 사건의 유족”이라고 말한 그를 향해 어느 한 일본인은 자신의 일인 듯 속죄했다. 한편으론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이하 재특회)와 같은 극우단체들은 최근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이하 조총련) 건물에 총을 쏘거나 한국인을 향해 김치냄새 난다며 혐오를 드러내고 있다. 민족차별에 대한 뿌리 깊은 처절한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는 신 대표의 말과도 맞아 떨어진다.


IMG_2152.JPG 영화의 배경인 관동대지진 조선인대학살을 설명하는 신채원 대표


기탄없이 혐오가 이뤄지는 세상을 살고 있는, 남겨진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영화를 감상한 관객들 사이에서도 그 고민이 전해졌다. 헬로파머 이상윤(31, 대전)대표는 “오래 전 일이지만 엄연히 일어난 현실을 영화로나마 대면해 충격으로 다가왔다”며 “역사책에 건조한 정보로 몇 줄 접했던 터라 영화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기록이 부단히 이뤄져야 가해자의 행동이 변할 수 있단 목소리도 이어졌다. 한국전래놀이협회 고갑준 대표(54)는 “가해자는 대부분 숨졌지만 그 후손들은 과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우리가 먼저 진실을 바로 알도록 기억하는 힘을 기르고, 정체성을 부단히 확립하는 게 중요하다”고 일갈했다.


기록의 힘은 강인하다. 일본인들이 희생자의 억울함을 깨우치도록 독려하기 위해 남겨진 이들의 행보는 그래서 소중하다. 오 감독은 유족의 증언을 담은 세 번째 영화인 ‘1923 제노사이드 93년간의 침묵’을 준비 중이다. 예고편만 보아도 스물일곱, 젊은 날부터 30년 넘게 부단히 흩어진 증언들을 모았던 그의 기록이 가져다 준 울림은 크다.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신 대표 역시 단 한 사람에게라도 선조의 아픔을 전하기 위한 절박함으로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든 찾아간다. 이들의 여정에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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