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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문화X역사

‘페미니즘 없이 민주주의는 없다’

둠벙에 빠진 날 13탄 “동네언니들과의 느낌 있는 수다판”

by 월간옥이네

‘화장실에 휴지는 있는데 왜 생리대는 없지?’ 영화 <피의 연대기>에서 한 사람이 내뱉은 말이다. 어쩌면 인류 절반이 생리를 하고 있는데, 생리대에 대한 정책 논의는 왜 이리도 소극적인 걸까. 나아가 생리는 왜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돼버린 걸까. 생리는 왜 숨겨야 하는 것, 부끄러운 것이 돼버린 걸까. 그리고 영화는 끝내 이 질문을 던진다. 여성 그리고 여성의 몸을 바라보던 우리의 시선은 대체 어떠했는가.

6월 26일 토요일 오후 2시, 둠벙에서는 영화 <피의 연대기> 상영과 더불어 ‘동네 언니들과의 느낌 있는 수다판’이 열렸다. 수다판에 초청된 두 ‘동네언니’는 옥천읍에 거주하는 인권활동가 유해정 씨와 남원시 산내면에 거주하는 여성학자 박이은실 씨. 그리고 이번 행사를 공동주관한 지역 문화예술모임 ‘자연스럽게’ 우승인(루카) 씨가 사회자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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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판은 자연스럽게 각자의 생리 경험담에서 출발했다. 32년째 생리를 경험하는 유해정(옥천읍 가화리) 씨는 생리용품 중에서도 생리컵의 생생한 사용 후기를 들려준다. “생리컵을 사용하면 일단 좋은 게, 자신의 생리혈을 확인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생리 양, 생리분비물 등을 확인하면서 몸의 건강상태를 체크할 수 있고요. 자신의 몸 안에 손을 넣는다는 것을 터부시하는 인식 같은 걸 조금 내려놓으면, 삶의 질이 높아진 생리 주기를 맞이할 수 있다고나 할까요.”

이어 그는 생리컵과 함께 사용하고 있는 면생리대 경험담 또한 푼다. “2000년 즈음, 생리에 대해 남녀가 같이 이야기도 해보고 우리 몸에 맞는 친환경적인 생리대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많이 생겨났어요. ‘피자매연대’라는 이름으로 면생리대 바느질 모임도 열고요. 그 이후로 심심할 때 면생리대를 만들기도 하고, 지금도 바깥에서 활동할 땐 생리컵 말고 면생리대를 사용하고 있어요.”

지리산 자락 산내면에서 온 박이은실 씨는 책 <월경의 정치학>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월경 풍습에 대해 말문을 연다. “스리랑카, 인도 등에서는 여자가 월경할 때마다 집 밖 오두막에 따로 살게 하는 풍습이 있어요. 그 풍습은 월경을 하는 여자는 더럽고 위험하고, 액운을 불러온다는 믿음에서 기인해요. 여성들 또한 그 믿음을 체화하고요. 심지어 그렇게 혼자 있게 되는 여자가 목숨을 잃게 되는 사건사고도 생겨요.”

월경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문화. 비단 다른 나라만의 이야기일까. “월경을 숨겨야 하고 부끄럽게 생각해야 하는 경우를 많이 겪고 있죠. 그런데 월경이 그런 거라면, 월경을 안 하는 게 좋은 거 아닌가요? 근데 월경을 안 하게 되면 문제가 또 생겨요. 월경을 안 하니까 ‘넌 이제 여성성이 없어’, ‘젊지 않아’ 이런 말들이 나오는 거죠. 특히 ‘폐’가 주는 어감이 ‘쓸모없는 어떠한 상태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것보다는 몸 안에 난자를 한 달에 한 번씩 내보내는 시기를 ‘완료’했다고 볼 수도 있는 거예요.” 그래서 ‘폐경’ 대신 ‘완경’이라는 말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월경 경험과 그 경력에 대해 스스로를 치하하고 싶다는 뜻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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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고,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저마다 월경을 어떻게 겪어내고 있느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이날 청중은 저마다의 경험담 내지 이날 수다를 들으며 생겨난 궁금증을 꺼냈다.

청중에서 가장 먼저 목소리를 틔운 이는 이수진 씨. “저를 비롯한 장애여성에게 생리컵은 먼 꿈처럼 느껴져요. 생리컵을 혼자 사용하기 어려운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고, 생리컵을 남한테 넣어달라고 하기에는 조금 불편한 현실이니까요. 하지만 막상 일회용 생리대를 쓰다보면 예민한 날 피부가 짓눌리고, 일반적으로 저희는 욕창이 생기기 쉽거든요. 그러면 저와 같은 신체조건을 지닌 이들은 탐폰이 거의 유일한 선택지가 되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 역시, 야간에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이 있다 보니 6시간 내지 최대 10시간을 탐폰을 교체하지 못한 채 있어야 하는 상황도 있고요. 불안한 상황이기는 마찬가지에요. 저를 비롯한 장애여성 그리고 장애청소녀를 위한 방안을 혹시 제안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의 물음에 박이은실 씨는 ‘생리대 유해성’에 대해 먼저 문제제기한다. “일단 가장 좋은 생리용품이 있어야 한다기보다는, 각자 제 몸에 맞는 생리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선택의 폭이 넓어야 해요. 일회용 생리대를 써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것을 유해하지 않게 만들라고 목소리내야 하고요. 당장에 어떤 뾰족한 답을 드릴 수는 없지만, 일회용 생리대 유해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비롯해 청와대 청원, 여성환경연대 활동 참여 등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면서 대안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줄 의지가 있는 사람을 선거를 통해 선출해야 하고요.”

유해정 씨 또한 말을 잇는다. “누가 첫 목소리를 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그런데 방금 장애여성으로서 생리 경험담에 대해 첫 목소리를 내주신 거잖아요. 이야기를 꺼내는 그 순간은 굉장히 두려울 수 있지만,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에게는 몰랐던 걸 알게 해 주고, 어떤 새로운 세계를 열어줘요. 한 사람이 용기 내서 목소리를 냈을 때, 옆에 있는 단 한 사람이라도 박수 치고 호응한다는 것, ‘나도 여기 있다’고 얘기하는 것. 그게 바로 ‘운동’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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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개인의 고유한 경험담이 모아져 보편적인 이야기가 되는 순간. 물론 그 안에 갈등 또한 생길 수 있다. 청중에서는 페미니즘과 얽힌 갈등과 편견 이야기가 이어져 나왔다.

이에 대해 박이은실 씨는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란 책에서 벨 훅스가 말한 페미니즘의 정의를 소개한다. ‘성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에 입각한 폭력, 착취, 억압을 종식시키는 운동.’

“성차별주의는 성에 맞는 사회적 기준을 따라야 한다고 하는 것이죠. 그 기준에 따라 그동안 여성이 더 많은 폭력과 억압과 착취의 대상이 되어왔던 측면이 있었던 거고요. ‘페미니즘’이란 안경을 잘 장착하면, ‘표준’에 대해 질문할 수 있어요. ‘표준’은 굉장히 효율적이지만 폭력적인 말이기도 해요. 그동안은 남성의 몸, 월경하지 않는 몸이 표준이 되어왔어요. ‘무상생리대’를 이야기할 때에도 월경하지 않는 몸을 표준으로 하는 사회에서 그 말은 어떤 ‘차별’이라고 지적당하는 거죠. ‘난 안 쓰는데 왜 너만 써.’ 이렇게요. 우리가 어떤 눈을 갖느냐에 따라 세상은 달라져요. 저는 ‘표준/표준에 맞지 않는 것’, ‘정상/비정상’이 아니라, 서로를 ‘차이’로 바라본 채 생각을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아요.”

모든 말은 아마 이 한 마디로 수렴되지 않을까 싶다. ‘페미니즘 없이 민주주의는 없다.’


글 사진 임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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