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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옥이네 Sep 18. 2019

수상한 복숭아 농장

옥천읍 양수리 체험 농장 ‘내 안의 복숭아 농원’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이곳이 ‘내 안의 복숭아 농원’ 체험농장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다. 복숭아 향이 물씬 나는 밭 입구에서 분홍빛 현수막이 손님을 맞는다. 복숭아나무가 드리운 그늘을 뒤로하고 바람개비를 따라 걸어 올라간다. 복숭아나무 아래 펼쳐진 인디언 텐트, 복숭아 인형이 궁금해도 일단 참아보자. 바람개비가 끝나는 곳, 둥근 테이블 위에 준비된 장갑과 토시를 끼고 빈 바구니를 안아 들면 모든 준비가 끝난다. 직접 복숭아를 수확해 먹어보고, 구매하고, SNS 업로드용 사진까지 찍을 수 있는 원스톱(!) 복숭아 따기 체험을 시작할 준비 말이다.     



 ‘내 안의 복숭아 농원’에는 열군데 이상 예사롭지 않은 포토존이 있다. 농장 구석구석 복숭아랜드에 온 것 같은 귀여운 소품도 눈을 즐겁게 한다. 15년 전부터 복숭아 농사를 지어온 박준용(57) 씨가 체험농장을 준비하기 시작한 건 올해 1월. 어린이 안전을 위한 난간을 설치하고, 포토존을 만들기 위한 소품을 구입하고, 잡초를 깔끔하게 정리했다. 7월 5일 체험을 시작해 올해 향수옥천 포도 · 복숭아 축제 때는 아예 축제 체험 행사 중 하나로 참여했다. 축제 기간만 해도 300여 명이 복숭아를 따갔다. 체험 농장으로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복숭아 ‘따기’에만 집중하지 않고 사진으로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박준용 씨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이 오면 꼭 ‘사진 제일 잘 나오는 데가 어디예요?’ 물어요. 기념사진을 중요하게 생각하죠. 체험 농장 포토존은 다 딸이 아이디어를 냈어요. 네이버 · 카카오톡 · 인스타그램 관리나 디자인도 딸이 하고요. 어린이집 교사로 일해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체험하려면 뭐가 필요한지도 잘 알아요.”     

 향수옥천 포도 · 복숭아 축제에 포도 따기 체험은 있어도 복숭아 따기 체험은 올해가 처음이었다. 복숭아는 표면이 껄끄럽고, 비닐하우스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체험을 진행 할 수 없어서다. 그래서 딸 박여은(28) 씨는 더 많이 고민했다.     



 “어린이들과 체험 활동을 자주 다니다 보니 즐길 거리가 더 있으면 좋겠다 싶어졌어요. 사진을 많이 찍는데, 이왕이면 예쁘게 해놓고 찍었으면 했고요. 아빠가 많이 믿고 같이 해주셔서 올해 초부터 준비했죠. 아이들 안전에 제일 신경 썼고, 나무에 키가 닿는지도 확인하고요. 복숭아털은 팔토시를 끼면 해결되겠더라고요.”     

 물론 체험의 핵심은 맛있는 복숭아다. 박준용 씨는 “체험을 위해서는 10가지 이상 품종을 3~4천 평 이상 농사지어야 6월 말부터 9월 초까지 복숭아를 딸 수 있다”고 설명한다. 1만1천570m 2 (3천500평) 밭에 14가지 품종을 재배하는 박준용 씨는 자신 있게 농사지은 복숭아를 맛보인다. “어때요, 정말 맛있죠?”     


 

이 맛있는 복숭아를 공판장에 들고 가면 늘 제값을 받지 못했다.     

 “처음에는 잘 모르고 공판장에 복숭아를 팔았는데, 가격이 너무 안 나왔어요. 힘들게 농사지었는데 왜 일한 만큼 대가를 못 받나 싶어서 5년 전부터는 아예 직거래만 해요. 인터넷 판매 20%, 지인 판매 80%로요. 판로를 고민하다 체험 농장을 하면 내 고객을 늘릴 수 있겠다 싶었죠.”     

 무료로 복숭아 체험을 즐긴 손님들은 시식한 복숭아 맛에 반해 복숭아를 사 간다고. 하지만 이 정도 동기로 체험농장을 열었다고 할 수는 없다. “제일 해보고 싶었던 농사가 복숭아라서”, “복숭아가 맛있다는 말에 모든 피로가 풀려서”, “마흔두 살에 복숭아나무를 처음 봤다는 사람에게 우리나라에 복숭아 품종이 220가지 이상이라는 걸 설명할 때의 뿌듯함”이 겹겹이 쌓인 결과다. 막내아들 박인범(26) 씨와 아내 최숙경(57) 씨도 바쁜 시기 복숭아 체험농장일을 돕는다. 가족들의 정성이 담긴 체험농장이기도 한 셈이다.     



 최숙경 씨도 ‘내 안의 복숭아 농원’에서 한 조각 꿈을 꾼다.     

 “늘 커피를 배우고 싶었어요. 지금 금강휴게소 탐앤탐스에서 일하고 있는데, 5년 후에는 여기에 정원을 가꿔 쉴 공간을 조성하는 게 제 꿈이에요. 흠집이 나서 판매할 수 없는 복숭아로 잼이나 아이스크림, 음료를 만들어 판매하고요. 사실 저에게 판매는 뒷전이에요. 좋은 사람이 이곳에 많이 오면 좋겠고, 찾아와주면 반갑고요.”     

 700평으로 시작한 복숭아 농사는 어느새 꽤 큰 규모로, 그것도 농사만 짓지 않는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하얀 복사꽃이 흩날리는 내년 4월 10일에는 복사꽃 축제를 열 계획이다. 복숭아밭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고, 온 가족이 붙어 손님을 맞이하는 동력은 어디서 나올까 찾다 보니 농막 뒤쪽 둥구나무 앞에 다다른다. 커다란 그늘에서 뜨거운 얼굴을 식힌다. 아, 그렇지. 뜨겁게 일하고 행복하게 쉬려고 그렇게 열심히 했지. “농사짓기가 힘들지만, 즐기면서 하고 싶다. 다른 사람에게도 이곳이 편안한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최숙경 씨 말대로 ‘내 안의 복숭아 농원’은 점점 밭 주인을 닮아간다.     


내 안의 복숭아 농원 | 옥천읍 양수로 6길 58-8

@peach_in_my

*올해 체험은 8월 15일 종료.          


월간 옥이네 VOL.27 

2019년 9월 호 

글 사진 김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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