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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기록 Oct 04. 2019

쭈빗거리고 있는 친구에게 손을

딸아, 너에게 나는 배우며 자라고 있구나

며칠 전, Walk to School day라서 학교 근처 아파트에 차를 주차하고 10여분 가량 걸어서 등교하는 행사가 있었다. 매일 아침, 스쿨버스를 타고 가다가 오늘은 차를 타고 학교 근처로 가족 모두 출동했다. 궁금했다. 우리 쪽 분야에선 꽤 알려진 행사였기 때문에 행사가 어떻게 진행되는 건지 직접 보고 싶었다.


8시 반이 시작시간이었는데, 아직 시작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얘들은 신나게 뛰어놀고 있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스쿨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스쿨버스들은 모두 이 곳으로 와서 아이들을 내려주고 행사를 시작하나 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굳이 스쿨버스를 안 태워 보낼 이유가 없었겠지만, 가족 함께 한다는 데 의미를 두고 행사 시작을 기다려본다. 

Walk to School 행사가 거의 시작되는 시점. 제법 많은 아이들이 나무 아래에서 모여서 걷기 시작한다.

날씨가 참 좋다. 가을 아침,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와 적당한 낙엽이 깔려있는 산책길이 포근하게 아름답다. 경찰관이 선두로 나서고, 학년별로 뒤따라 나선다. 딸아이의 부담임 선생님이 동행했다. 킨더 친구들을 이끌고 대열에 합류한다. 두 명씩 손을 잡고 줄을 서고 출발한다. 아까부터 주변을 쭈빗거리고 있던 친구가 맘에 걸렸다. 딸아이가 그 친구에게 다가가 인사를 한다. 여전히 쭈빗거리고 있는 친구는 무리에서 조금은 떨어져 있다. 행사가 시작되고, 친구들이 줄지어 걸어가기 시작했다. 남편은 뒤에서 따라가면서 사진도 찍고 딸아이를 관찰하며 여유롭게 걷기 시작한다. 나중에 찍은 사진들을 보니, 쭈빗거리고 있던 친구의 손을 딸아이가 집고 걷고 있는 걸 보고 마음이 뭉클해지면서 따뜻해졌다. 원래 짝꿍과 그리고 다른 친구의 손을 잡고 세 명이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이 내내 마음에 머물렀다.

친구들과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는 길. 예쁘고 신나는 순간.


이웃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이 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던가.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 하나 살기도 벅차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너무 큰 욕심 같아서 언감생심 기도제목으로도 많이 못 드렸던 내용이었는데. 딸아이가 뻘쭘해하고 있던 친구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함께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따뜻하게 잘 커준 딸아이에게 감사했다. 


작은 학교라서, 시골사람들이라서, 순박하고 착한 친구들을 만나게 되어서. 참 감사하다. 이 곳에서 적응해나가면서 가장 감사한 것 중 하나이다. 딸아이가 지금처럼 다른 친구들을 생각하며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을 내밀어 함께 나아가 주길. 지금처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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