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디자인> 2017년 3월호
출간일 2010일 3월 16일(영문판)
출판사 에디션 악셀 멘지스(Edition Axel Menges)
지은이 베른 폴스터(Bernd Polster)
판형 177×198mm
페이지 504쪽
가격 69.60달러(약 8만 원)
브라운이 곧 독일 디자인의 대명사였던 시기는 1950~1975년쯤 된다. “최소한의 디자인(As little design as possible)”, “적지만 더 나은 디자인(Less but better)”을 주창한 디터 람스의 활약이 돋보인 시기다.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밴 오디오 SK4부터 포켓 계산기 ET44, 울름 조형대학과 첫 산학 협력 결과인 포터블 라디오, 바우하우스 정신을 계승한 검정·은색·빨강의 활자 주조가 돋보였던 씨네 필름 카메라 등은 전후 시대 어수선했던 독일 사회를 다독이고 정화하듯 ‘고매한 물질주의’*를 확산시켰다. 1960년대에 들어서는 그간 브라운의 전통적인 사업군이었던 라디오, 레코드플레이어, 하이파이 유닛을 제치고 전기면도기가 핵심 사업군으로 부상했다. 주서나 핸드 블렌더 등 주방 가전 라인도 확장되었다. 1968년 브라운은 미국의 질레트에 인수되며 세계 면도기 시장 1위 브랜드로 입지를 굳혔고 헤어드라이어 등 스타일링 기기로 끊임없이 뻗어갔다.
(좌) 1960년 디터 람스가 디자인한 포터블 라디오 T22.
(우) 1961년 디터 람스가 디자인한 포터블 라디오 T52.
(좌) 1957년 디터 람스가 디자인한 아틀리에와 SK4와 호환되는 스피커.
(우) 1963년 한스 구겔로트와 디터 람스가 디자인한 레코드 플레이어 SK55.
1977년 디터 람스와 디트리치 럽스(Dietrich Lubs), 루드비히 리트만(Ludwig Littmann)이 디자인한 포켓용 계산기 T33.
1990년대 들어서 브라운은 칫솔 등 오럴 케어와 여성용 제모기에도 로고를 붙이며 사업군을 확장한 끝에 2005년 P&G에 합병됐다. 그 이후는 우리가 접하고 인식하는 그대로의 무난함이다. 정확한 독일어 문법을 구사하던 브라운의 디자인이 세계화와 디지털 시대에 너무 많은 시장과 기술을 품으며 제 언어를 서서히 잃어간 것에 대해, 디터 람스로 대변되는 초기 브라운의 위상이 서서히 조각난 것에 많은 디자이너들이 먹먹해할 시점에 브라운은 책을 하나 출간했다.
2011년 피터 하트베인(Peter Hartwein)이 디자인한 전동 칫솔.
2005년 독일어판으로 출간하고 2010년 영문 번역판이 나온 <브라운-50년의 디자인과 혁신>은 2005년 P&G에 합병된 시점에 낸 책이다. 2009년까지 브라운 디자인 부서 수장이던 피터 슈나이더(Peter Schneider)의 지휘 아래 출간했다. 브라운은 1921년 기계공학자 막스 브라운이 작은 라디오 회사로 창업한 이래 1951년 아들 세대에 경영권이 넘어가며 전성기의 막이 올랐다. 1950년 이후 생활수준이 급격하게 향상되면서 대중은 동시대 라이프스타일에 걸맞은 새로운 주거 환경을 원했고, 현대적 가구가 놓인 공간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인도해줄 새로운 가전제품을 기다렸다. 미국에서는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출신 이민자들이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을 퍼뜨리면서 소위 ‘인터내셔널 디자인’이라는 혼재된 모던함이 부상했다.
1985년 디트리치 럽스(Dietrich Lubs)가 디자인한 알람 시계 AB 312 vsl.
브라운이 1956년 서둘러 조직한 디자인팀의 첫 정규 직원 중 한 명이 20대의 디터 람스였고, 울림 조형대학 교수였던 한스 구겔로트와 디터 람스가 함께 디자인한 SK4가 그해 확고한 주목을 받으며 브라운은 제 목소리를 갖기 시작했다. 1957년 밀라노 디자인 트리엔날레에서 ‘독일의 산업 디자인’ 국가관에 놓였던 페일 그린과 미색 테이블탑 라디오 SK1, 모던 스테레오 시스템의 씨앗이 된 스튜디오2, 원형 안에 수많은 스피커 구멍이 난 연회색 포터블 라디오 T41, 라디오 기능과 방 온도 측정 기능이 더해진 전자 알람 시계 DB10SL, 1세대 아이폰의 계산기 인터페이스의 모티브가 된 계산기 ET44, 견고한 스탠드 위에 매트한 흰색 레코드플레이어 4개를 쌓아둔 하이파이 시스템 ‘아틀리에(Atelier)’, 네 발을 단 뭉툭한 스크린의 TV HF1, 그리고 그 이후의 모든 포트폴리오를 이 책에서 다소 투박하게 제품군별 연대기순으로 그저 나열했다.
1982년 로랑드 울만(Roland llmann)이 디자인한 전기 면도기.
브라운이 질레트에 합병된 1968년은 공교롭게도 68혁명의 해였다. 컬트 문화가 다시금 일어났고 젊은이들은 브라운 스피커로 비틀스의 노래를 틀어댔다. 소수가 알고 좋아하던 브라운이 사상 최대로 무수한 다양성의 소비자를 맞딱뜨리게 된 계기였다. 이를 기점으로 브라운은 그동안 특정 소수나 특정 공간을 염두에 둔 디자인에서 더욱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에 어울리는 방대한 생활 가전으로 방향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품질은 좋지만 저렴한 플라스틱인 열가소성 수지를 쓰기 시작했고, 알파벳과 숫자로만 표현하던 건조한 제품명 대신 ‘도미노 라이터’ 등 닉네임을 단 스타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1980년대 브라운에서 가장 잘 팔리던 것은 커피 메이커였고, 1981년 브라운은 필름과 영상 기기 부문을 매각했다. 그리고 1990년, 디터 람스가 브라운 입사 초기에 디자인한 아틀리에 스테레오 시스템의 생산이 중단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도 브라운을 떠났다. 그러니까 이 책은 아방가르드 시대에 자수성가한 발명가의 벤처 프로젝트로 시작한 회사가 모더니즘의 니치 마켓을 건드리고는 끝내 대량 판매 시장의 강자로 살아남았지만 속사정은 예전 같지 않은 이야기. 바우하우스 강의실에 놓인 물건 같았던 시절의 브라운, 조너선 아이브와 나오토 후카사와와 재스퍼 모리슨이 동경하며 꿈을 키우던 시절의 브라운을 처음부터 최근까지 무덤덤하게 기록한 이야기다. 아날로그 시대를 풍미한 브랜드를 아날로그 책으로 기록한 노스탤지어 가득한 아련한 역사다.
글: 김은아 기자 ⓒ월간 <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