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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디자인 Aug 05. 2019

2019 부산디자인스폿
#2 부산의 레트로 공간

월간 <디자인> 2019년 8월호

부산항에 돌아온 힙한 과거

부산의 레트로 공간


지난 수십 년간 대규모 재개발이 이어지며 도시의 기억을 거의 상실한 수도권과 달리 부산은 켜켜이 쌓인 시간의 지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은 적산 가옥, 한국전쟁 때 몰려든 피란민들로 인해 자생적으로 생겨난 산복 도로, 국제시장을 통해 형성된 빈티지 문화 등은 오늘날 부산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했다. 오래된 공장을 재생해 만든 복합 문화 시설, 부두의 창고를 활용한 문화·예술 공간, 빈티지 마니아들의 취향을 저격하며 니치 마켓을 꿰뚫은 컬렉터의 매장 등이 인위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시간을 돌이킨 우유 카페

초량 1941

초량 1941은 말차 우유, 홍차 우유 등 시즌별 음료를 판매하는 우유 카페다. ‘풀 초草’, ‘들 량梁’ 자를 쓰는 지역명에서 영감을 얻은 구나겸 대표는 풀이 많은 들판에 뛰노는 동물들을 상상해 이를 토대로 우유 카페라는 콘셉트를 도출했다. 독특한 공간과 분위기는 이곳에 매력을 더해준다. 이 건물은 1941년 일본인 사업가가 별장으로 사용하고자 지은 것으로 일본식 주거 공간과 서양식 사무 공간이 공존하는 구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해방 후에는 여러 차례 다른 용도로 쓰이거나 방치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알루미늄으로 창호가 대체되고 다다미방이 시멘트로 덮이는 등 무분별하게 훼손되었다. 초량 1941은 카페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전통적 요소를 살리고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대대적으로 손을 봤다. 여기에 일본 벼룩시장에서 구한 가구를 배치해 적산 가옥의 고즈넉한 정취를 복원했다. 가게 한편에서는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직접 만든 공예품과 빈티지 소품을 판매한다. 그중 디퓨저 ‘초량의 향기’는 숲을 연상시키는 향이 인상적으로, 구봉산을 등지고 있는 초량 1941의 정서가 반영된 고유한 아이템이다. 정성껏 복원한 초량 1941에서는 산복 도로의 매력을 공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공간 기획 및 운영, 브랜드 디자인 초량 1941(대표 구나겸)

오픈 시기 2016년 2월

운영 시간 11:00~19:00(월요일 휴무)

주소 부산시 동구 망양로 533-5 

인스타그램 @_choryang


©정승룡




부산 크리에이티비티의 최전방

끄티

‘서울 가야 성공한다’는 말이 상식처럼 통하던 때가 있었다. 지역 인재들이 속속 고향을 떠나 서울로 향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낀 김철우 대표는 뜻 맞는 동료들과 지역 문화 중심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RTBP 얼라이언스를 설립했다. RTBP는 ‘돌아와요 부산항에Return To the Busan Port’의 준말. RTBP 얼라이언스가 2018년 선보인 끄티는 비어 있는 조선·항만 물류 센터를 활용한 복합 문화 공간으로, ‘끝’을 뜻하는 부산 사투리에서 이름을 따왔다. 고스란히 되살린 산업 설비의 흔적과 12m에 이르는 높은 층고, 바닥과 벽에 남아 있는 긁힌 흔적이 인상적인 이곳에 자체 론칭한 브랜드 리:본이 조선 폐자재를 업사이클링해 만든 가구와 오브제로 정체성을 부각시켰다. 이곳에서는 다양성을 주제로 보트 학교 프로그램, 부산의 역사를 키워드로 한 미디어 아트 및 테크노 파티 등 40여 회의 공연, 전시, 워크숍을 진행했다.


공간 기획 및 운영 RTBP 얼라이언스(대표 김철우), RTBPalliance.com

가구 디자인 리:본

오픈 시기 2018년 5월 

운영 시간 RTBP 얼라이언스 (인스타그램 계정 참고)

주소 부산시 영도구 해양로 111번길 32  rtbp.alliance





햄버거 파는 문구점

버거샵

부산의 젊은 소상공인들이 원도심에 주목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전포동의 수제 버거 브랜드 버거샵도 마찬가지. 1호점인 서면점은 본래 오래된 문구점이 있던 공간인데 버거샵은 ‘Double A’ 로고가 새겨진 차양과 철제 여닫이문 등을 그대로 살려 공간의 기억을 보존한다. 내부는 벽면을 가득 채운 포스터들로 눈길을 끈다. 모두 브랜드의 디렉터를 맡은 전수민이 개인적으로 모은 것인데 이것 하나만으로 디자인 전공 학생들이 ‘성지순례’를 오는 디자인 스폿이 될 정도다. 김동욱 대표와 이상민 부대표가 직접 뉴욕에서 공수한 빈티지 가구와 소품에서 전해지는 브루클린의 감성과 부산 구도심의 감성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공간 기획 및 운영 버거샵(대표 김동욱)

공간 리뉴얼 이상용

브랜드 디자인 전수민, service-center.kr

오픈 시기 2017년 11월 

운영 시간 11:30~21:00(월요일 휴무)

주소 부산시 부산진구 동천로 108번길 11 

인스타그램 @burgershopbusan





문화·예술 생산 공장

F1963

F1963은 철강 산업의 역사가 깃든 고려제강 와이어로프 생산 공장을 개조한 복합 문화 공간이다. 50여 년 동안 필요에 따라 몸집을 부풀린 공장 건물이 부산 시민들의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은 2016년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으로 활용되면서부터다. 전면의 벽을 허문 뒤 유리와 익스펜디드 메탈을 설치하고 대나무 숲과 생태 정원으로 자연 친화적 분위기를 조성해 새로 문을 열었다. 로스터리 카페 테라로사, 전통 발효주 브랜드 복순도가, 수제 맥주 브랜드 프라하, 중고 서점 예스2, 국제갤러리를 입점시켜 방문객의 취향에 따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기획했다. 또한 지난 3월에는 미술, 건축, 사진, 디자인, 음악 등 예술 전문 도서관 ‘F1963 도서관’이 개관했다. 도서관 한편에는 전위적인 예술적 실험이 일어났던 1960년대를 짚어볼 수 있는 책 전시도 함께 구성해 다양한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했다. 공장 건물 중앙에 지붕을 걷어내 만든 중정에서는 다양한 야외 이벤트가 벌어지고, 기존의 벽과 기둥, 트러스를 그대로 보존한 석천홀에서는 피카소, 줄리언 오피, 크리스 조던 등 세계 예술 사조에서 중요하게 거론되는 아티스트의 전시도 활발하게 열린다.


공간 기획 및 운영 고려제강

브랜드 디자인 맹그로브아트웍스(대표 강재영) 

건축 디자인 조병수건축연구소(대표 조병수), bchoarchitectects.com

오픈 시기 2016년 9월

운영 시간 각 공간마다 상이

주소 부산시 수영구 구락로 123번길 20

웹사이트 f1963.org





빈티지 워치 마니아들의 성지

빈티지아이콜렉터스클럽

빈티지아이콜렉터스클럽은 부산뿐 아니라 전국 빈티지 워치 마니아들의 성지 같은 곳이다. 16년간 빈티지 시계를 다루며 잔뼈가 굵은 송인준 대표가 운영하는 곳으로 전 세계에서 구매한 빈티지 워치를 전문 엔지니어가 복원하고 일련번호와 함께 보증서를 발급해준다. 빈티지 시계에 대한 지식만큼은 톱클래스라 해도 좋을 만큼 방대한 정보를 보유한 데다 글로벌 컬렉터들과 네트워크도 탄탄하게 구축하고 있어 국제적으로도 선례를 찾기 힘든 빈티지 워치의 성지라 할 수 있다. 고객의 80%가 서울에서 내려온다는 사실은 이 시장에서 빈티지아이콜렉터스클럽이 지닌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본래 빈티지아이로 시작한 이곳은 지난해 여름 프라이빗한 감성을 담아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면서 중앙동으로 터를 옮겼다. 구도심의 감성이 빈티지라는 소재와 맞물려 이루는 조화가 인상적이다. 모던한 스타일의 외관과 달리 매장 내부는 모던한 북유럽 가구와 투박한 인더스트리얼 조명, 하드우드 바닥 등 다양한 양식과 타임라인이 한데 어우러져 눈길을 끈다. 송인준 대표가 공간을 연출했는데 시간을 복원해 현재성을 부여하는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그대로 녹아든 느낌이다. ‘이 매장이 곧 나’라는 송인준 대표의 말에 수긍하게 되는 대목. 빈티지아이콜렉터스클럽은 앞으로 브랜드의 철학과 감성을 공유할 수 있는 미디어를 구축하고 온·오프라인상에서 자체 콘텐츠를 선보일 계획이다.


공간 기획 및 운영, 공간 디자인 빈티지아이콜렉터스클럽(대표 송인준)

브랜드 디자인 전수민

오픈 시기 2018년 7월

운영 시간 11:00~20:00

주소 부산시 중구 해관로 79

웹사이트 vintageye.co.kr





산복 도로의 진가를 알 수 있는 레스토랑

초량 845

굽이진 산복 도로 비탈에 위치한 초량 845는 창호 공장을 개조한 레스토랑이다. 공장 건물이었던 만큼 높은 층고가 특징인데 한쪽 벽을 과감하게 뚫어 시원한 개방감과 탁 트인 전망까지 확보했다. 산업 재료로 만든 가구와 일본에서 공수한 빈티지 가구가 눈에 띈다. 부산의 정수인 항구와 산을 바라보며 F&B 브랜드 ‘소반 봄’의 가정식을 맛볼 수 있는 것이 이곳의 매력 포인트. 아래층에는 60년 전통의 부산 대표 전병 브랜드 이대명과, 덕화명란 등 부산을 대표하는 브랜드들의 쇼룸이 마련되어 있다. ‘알고 먹는 맛’이 남다른 경험을 주는 만큼 오랜 시간 지속해온 브랜드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제품을 접할 수 있도록 구성한 공간이다. 또한 845 팝업 스토어에서는 부산 로컬 브랜드나 아티스트의 전시가 열리는데 지역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초량 845의 아이덴티티를 잘 보여준다. 다양한 로컬 콘텐츠의 참맛을 확인하다 보면 가파른 언덕을 오르던 노고는 금세 잊게 된다. 


공간 기획 및 운영, 브랜드 디자인 초량 845(대표 황보찬)

오픈 시기 2017년 9월

운영 시간 11:00~21:00(수요일 휴무)

주소 부산시 동구 망양로533번길 8

인스타그램 choryang845


©정승룡




빈티지로 기억하는 공간

김소일 컬렉티브

김소일 도자기의 도예가 김우진과 디자이너 김영록 남매가 운영하는 공방이자 카페다. ‘김소일’은 사람 이름이 아닌 흙soil을 다루는 공간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낸 것. 매장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쇼룸에는 김소일 도자기의 제품과 직접 수집한 빈티지 그릇, 로컬 창작자들의 작품이 옹기종기 진열되어 있다. 또한 카페에는 100년이 넘은 앤티크 가구와 50년 전 서울 종로의 한 호텔에서 사용했던 플로어 스탠드가 곳곳에 배치되어 운치를 더한다. 지하에 자리한 작업실과 공방에서는 도자기 워크숍을 진행하는데 아이들도 공방에서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거나 모빌을 만들 수 있어  자녀를 동반한 손님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공간 기획 및 운영, 브랜드 디자인 김소일 컬렉티브(대표 김영록), 김소일 도자기(대표 김우진)

공간 디자인 더안디자인(대표 강경진), theandesign.com

오픈 시기 2018년 11월

운영 시간 12:00~20:00

주소 부산시 부산진구 동성로 35 

인스타그램 @kimsoil_collective, @kimsoilceramic





덕화명란의 영양가 있는 쇼룸

데어더하우스

덕화명란은 기름을 제조하는 승인식품, 삼진어묵과 더불어 부산의 3대 F&B 로컬 브랜드로 꼽힌다. 국내 최초의 수산 분야 명장 장석준이 1993년 설립했는데 현재는 장종수 대표가 대를 이어 운영한다. 지난해 문을 연 데어더하우스는 덕화명란의 브랜드 쇼룸으로 가정집을 레노베이션해 만들었다. 거창한 아우라가 느껴지는 것은 아니지만 오래된 천장 몰딩과 벽체, 창문과 문지방 등이 모던한 감각과 어우러지며 개성 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구제 시장에서 구한 천장 조명과 벽시계 등은 가정집 특유의 따뜻한 감성을 한층 부각시킨다. 공간은 크게 두 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층에서는 식문화의 중요성을 알리고, 식재료와 생산자의 마인드가 일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소개하는 전시가 열린다. 지금까지 연남방앗간의 <명란미식회>전, 프로젝트 R의 <토종벼 이야기>전 등이 열렸고 현재는 대를 이어 운영 중인 부산의 로컬 푸드 브랜드들과 협업한 다이닝 프로젝트도 기획 중이다. 덕화명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2층은 셀프 쿠킹 스튜디오로 운영한다. 명란을 활용한 음식을 소개하고 방문객이 직접 요리해 먹을 수 있는 식재료와 레시피를 갖췄다. “10~30대에게 명란이 단순한 ‘아빠 밥반찬’이 아니라 다양한 요리에 어울리는 식재료라는 사실을 전해주고 싶었다”라는 장종수 대표의 설명. 한층 젊어진 명란을 만나고 싶다면 이곳을 찾길 바란다.


공간 기획 및 운영 덕화명란(대표 장종수), thedndshop.co.kr

브랜드 디자인 오한나(덕화명란 이사)

공간 레노베이션 더퍼스트펭귄(대표 최재영), t-fp.kr

오픈 시기 2018년 2월

운영 시간 11:00~19:00(월·일요일 휴무)

주소 부산시 동구 망양로 533번길 20-3  therethehouse




글: 최명환, 유다미

©월간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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