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디자인> 2018년 2월호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나면 마치 대단한 비밀을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전설의 디자인 그룹이 진행한 거의 모든 작업의 기획 의도와 프로세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듣고 평소 궁금했던것들에 대한 답도 얻었다고 할까. <바이닐. 앨범. 커버. 아트>는영국의 디자인 그룹 힙노시스Hipgnosis가 1967년부터 1984년까지 작업한 373장의 음반 디자인 커버와 그에 관한 다채로운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힙노시스의 창립 멤버 오브리 파월AubreyPowell이 저자로, 작품 탄생에 얽힌 비화와 실제로 음반 커버를 디자인한 모든 과정을자세히 풀어냈다. 예를 들면 핑크 플로이드의 <AtomHeart Mother>(1970) 앨범 커버에는 왜 하필 젖소가 등장하며, 어디서 어떻게 촬영했는지, 또 이를 위해 몇 통의 필름을 사용했는지까지 상세히 밝히는 식이다.
벌거벗은 아이들이 팔각형 모양의 바위에 오르는 장면으로 세기말적 분위기를 연출한 레드 제플린의 <Houses of the Holy>(1973) 앨범 커버도 마찬가지다. 어디에서 영감받았으며 어떻게 구현했는지, 포토샵이 없던 시절에 완성할수 있었던 비밀은 무엇인지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스톰 소거슨StormThorgerson과 오브리 파월, 피터 크리스토퍼슨PeterChristopherson으로 구성된 힙노시스는 핑크 플로이드, 폴 매카트니, 10cc, AC/DC 등 유명 록 그룹의 앨범 커버를 디자인하며 자신들만의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이들은 음악만큼이나 매혹적인 시각적 해석으로 단순히 뮤지션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새롭고 특이한이미지를 내놓았다. 오브리 파월은 “그것이 노랫말이나 밴드이미지 또는 음악 자체와 어떤 상관이 있든 없든 좋은 디자인은 항상 흥미를 불러일으킨다는 게 우리의 모토였다”고말한다.
실제로 핑크 플로이드의 <The Dark Side ofthe Moon>(1973) 앨범에는 프리즘, 빛,심장 박동, 피라미드, 삼각형이 등장하는데 도대체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알 수 없으나 매우 독창적인 디자인이며 완전히 적절하고대단히 효과적이라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 외에도 토펫의 <ToeFat>(1970) 커버에 등장하는 발가락 사람 같은 기이한 이미지는 만 레이와 빌 브랜트의 초현실주의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이러한 유희와 실험은 힙노시스가 작업한 앨범 곳곳에서(밴드나 음악과 관계없이) 발견된다. 특히 피터 가브리엘의<Peter Gabriel(3)>(1980) 앨범 커버에는 얼굴이 녹아내린 파격적인 이미지가 등장하는데 이는 폴라로이드사진을 현상 과정에서 마구 망가뜨린 것으로, 스톰의 꿈에서 영감받았을 뿐 음악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
한편 거친 콜라주가 인상적인 시드 배럿의 <The MadcapLaughs>(1970)나 세 종류의 이미지를 합성한 10cc의 <Deceptive Bends>(1977) 등은 포토샵은커녕 컴퓨터도 없던 시절, 이들이 가위와 접착제로 만들어낸 앨범 커버로 파격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힙노시스의일원이었던 마커스 브래드버리의 말대로 “힙노시스는 아트워크 인쇄에 새로운 편집 기법을 시도한 어도비포토샵의 선구자”였으며 “새롭고 특이한 이미지를 창조하기위해 사진을 자르고 일그러뜨리고 구부리고 태우고 가리고 이중 노출을 하고 오븐에서 굽고 그 위에 낙서를 하거나 함께 콜라주를 하기도 했다.” 모든 것은 실험이었다.
1960~1970년대에 음악 산업의 호황과 더불어 앨범 디자인은 음악을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유일한 매체라는 점에서 각광받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오브리 파월의 말에 따르면당시 앨범 커버는 그것을 소유한 사람을 정의해주는 역할을 했다. 즉 어떤 음반을 구매해 집 안에 두는것은 곧 그의 취향을 전시하는 것으로, 얼마나 유행에 밝고 세련되었는지를 짐작하게 했으며, 앨범 커버는 이를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역할을 한 셈이다. 그 결과어떤 음악은 12인치 정사각형 또는 12×24인치 게이트폴드gatefold 형태의 이미지로 기억되기도 한다. 힙노시스의 디자인은기꺼이 따르고 싶은, 매혹적인 취향임이 분명했다.
글: 김민정 기자 ⓒ월간 <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