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선’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기준이라고도 부르는 이 선을, 올곧게 만들고자 하는 과정 속에 살아간다. 누구나 쭈욱 뻗은 올곧은 선을 내세울 수 있다면 좋으련만. 마음만큼 쉽지가 않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이것은 ‘집념’이 되어 모습을 드러낸다. 악에 복받쳐 억지로 선을 피려 애를 쓰는 이들에게 하나의 특별한 선을 소개해 주고자 한다.
바로 휘영청 밝은 보름달 같은 ‘달항아리’의 선.
달항아리는 이미 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우리 유산으로, 한국미의 상징으로도 불린다. 무늬 없이 크고 둥글게 빚은 조선백자. 눈처럼 새하얀 순백의 빛깔과 둥근 형태가 달항아리의 큰 특징이다.
위 달항아리의 형태를 찬찬히 살펴보라.
하단의 좁은 굽으로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듯하면서도 확고히 앉아있고, 둥글게 몸집을 만들어 놓은 듯 보이지만 무심하게 정형을 비끼며 서 있다. 대칭에서 벗어난 굴곡이 제멋대로 표면에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작은 무늬 하나 없이 순백의 면을 훤히 보이고 있다.
사실 달항아리는 대개 큰 몸집과 40cm를 넘는 높이로 한 번에 물레로 만들기 어렵다. 따라서 위아래의 몸통을 각각 따로 만들어 붙여야 한다.
어쩌면 이 접합 과정이 부정형의 둥근 형태를 만들어낸다고도 볼 수 있겠다.
상하 몸통을 합치면서 도공들은 형태가 틀어지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인다. 상하 접합 부분이 최대한 맞아떨어지도록 이어준 후에는 엄지손가락 끝부분으로 꼼꼼히 펴 주며 마무리한다.
몸체 성형이 끝났다면 다음은 일정 기간의 건조, 850°C의 가마에서 10~12시간 정도의 초벌구이, 그리고 유약을 바르는 과정으로 넘어간다. 앞의 과정이 요구하는 시간도 만만치 않은데, 이 모든 수순이 마무리되었다면, 마지막은 재벌구이 과정이다. 재벌구이는 더욱 오랜 기다림을 요한다. 1250°C가 넘는 가마에서 24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달항아리가 최종의 온전한 형태를 드러내기까지, 도공은 가마 곁을 지키며 항아리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살펴야 한다. 온갖 기대를 안고 달항아리를 만들어가지만, 제작의 매 순간마다 우려와 걱정 또한 피할 수 없다. 한쪽이 너무 처지거나 상하의 접합부가 틀어지지는 않을지. 유백색이 잘 나올지. 또는 재가 많이 붙어서 앉지는 않을지.
하지만 항아리의 구조상 본래 비대칭일 수밖에 없다. 표면 위는 굴곡이 장식해버리고, 수직이었던 중심부는 미세하게 틀어져 버리는 게 현실이다.
잘해야 한다는 욕심과 대칭을 향한 과한 집념. 오히려 이것을 버리는 일 자체가 달항아리 본연의 멋은 아닐까.
“이것마저도 마음 쓰지 않으려 한다. (...) 할 수 있는 것만 최선을 다하려 한다.”
한국경제, 달항아리 도예가 강민수 인터뷰 中
사실 강한 집념은 좋다. 많은 일들을 가치 높은 결과물로 효과적으로 만들어주기에.
그러나 ‘무엇을 위해?’라는 말을 되물어볼 필요가 있다. 만약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라면 완벽해지려 강한 집념을 보여도 좋다. 성장하는 기회로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반면 그러한 집념의 원인이 다른 외적인 이유에서라면, 사실 조금은 허물어져도 좋다. 대칭을 맞출 필요는 없다. 오히려 허물어진 틈에서 발현되는 새로운 빛이 존재한다.
스스로를 해치는 집념으로 그 빛을 꺼버리지는 말자.
달항아리의 둥근 형태가 언제나 완벽하지 않듯, 본래 세상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했거나 있는 힘껏 열심히 내달렸음에도. 더욱 틀어지거나 제자리인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러나 흔히들 아는 완벽함만이 아름다움은 아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무언가를 일궈내고자 했다면, 그것도 마찬가지로 또 다른 아름다움 아닐까. 결과가 완벽하던 아니던 말이다.
휘영청 밝은 찌그러진 보름달을 닮은 달항아리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일궈낸, 또 다른 아름다움의 빛을 보길 바란다.
둥글다 해서 다 같지가 않다.
모두가 흰 빛깔이다. 그 흰 빛깔이 모두가 다르다.
단순한 원형이, 단순한 순백이, 그렇게 복잡하고, 그렇게 미묘하고, 그렇게 불가사의한 미를 발산할 수가 없다.
고요하기만 한 우리 항아리엔 움직임이 있고 속력이 있다.
싸늘한 사기지만 그 살결에는 다사로운 온도가 있다.
-김환기 화백
글 | 김은강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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