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의 죽음이 두렵지 않을 정도로 어떤 일에 매진해 본 기억이 있는가? 혹은 죽음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알아도 기꺼이 시간을 쏟아부을 수 있는 일이 있는가? 죽음 앞에 놓여 지나온 삶을 회상할 때, 오늘의 우리는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여기 지팡이를 짚고 작업하는 아흔 살의 예술가가 있다. 작업이 고되지 않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그는 무덤에서 후회하지 않고 싶다고 말한다. 한국 현대 미술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박서보,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정신으로 수행의 삶을 살아왔다.
그의 작품은 수행의 산물이다. 가장 유명한 초기 묘법 시리즈는 선을 긋는 행위를 무한히 반복해야 완성된다. 아이의 낙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캔버스에 유화 물감을 칠하고 그 위에 연필로 선을 그어 작품을 완성했다. 물감이 채 마르기 전에 작업하여 그의 선 긋기에 따라 물감이 밀려나기도, 움직이기도 한다. 박서보의 캔버스는 그의 수행을 고스란히 받아 내면서, 선 긋기를 위해 필요했던 움직임, 역동성 그리고 그의 집념을 겹겹이 담고 있다. 캔버스에 선을 쏟아내면서 그는 자신을 비워냈다.
언뜻 그의 작품은 단조로운 선의 반복으로 보이지만, 그 속에는 그가 겪어온 전쟁 시기의 아픔과 회복, 한국 미술의 격변기, 자신의 삶과 작품 세계에 대한 고민이 숨어있다. 그 고민을 이야기처럼 형상화하여 캔버스에 그려내는 것 대신 박서보는 예술을 생각을 비워내는 과정이라고 여기며 정진했다. 그렇기에 그는 때때로 구도하는 종교인처럼, 티끌 없는 완벽을 추구하는 장인처럼 수행하며 작업한다.
한지를 활용한 후기 묘법은 그가 가진 한국적인 면모를 가장 잘 드러낸다. 그는 이전에 개발한 ‘반복적인 선 긋기’ 방식을 고수하면서도 이를 새로운 매체인 ‘한지’에 접목하였다. 한지는 물감을 머금고 흡수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박서보에게 서양의 종이 또는 캔버스와는 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이전의 작품이 박서보의 수행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리드미컬함을 담아내고 보여줄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다면, 한지를 활용한 뒤부터 그는 작품과 합일하는 경지에 이른다.
한지는 그가 사용하는 안료를 모두 빨아들였고, 그가 그리는 선과 가하는 힘을 흡수했다. 더 이상 그와 캔버스는 분리된 매체가 아니었다. 한지는 모든 소리와 빛을 투과하는 매체였고, 언제나 자연과 합일을 추구했던 한국, 그리고 넓게는 동양의 미감을 담고 있었다. 작업하는 매체를 확장하면서 박서보의 정신적 그리고 예술적 수행의 과정도 더욱 밀도를 얻어갔다.
박서보에게 작품을 생산해가는 전 과정은 수행이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그는 이에 놀랍도록 매진했고, 그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고민을 해결하고 끝없이 변하는 자신을 정립해갔을 것이다. 박서보는 예술은 마르지 않은 잉크를 흡입해 주는 흡인지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마치 그의 작품 속 캔버스와 한지가 그의 수행을 흡입해 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예술과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예술의 특징은 작가가 감정을 캔버스에 토해놓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21세기죠. 이 디지털 시대는 어느 곳에나 스트레스가 가득 차 있어요. 그림에서 무언가 쏟아져 나오면 자칫 ‘이미지의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술은 관람자의 고뇌와 스트레스를 받아들여 주는 흡인력이 있어야 해요. 마치 마르지 않은 잉크를 흡입해주는 흡인지처럼요. 그게 예술과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예술은 그 시대의 산물이니까요.”
이러한 그의 생각을 대변하듯 그의 작품은 곳곳에서 현대인들의 흡인지가 되어주고 있다. 작품 앞에 서서 그가 이 선을 그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 고민하고, 무한히 반복되는 선의 움직임에 경외를 느낀다. 단조롭고 반복적인 박서보의 작품은 스스로 ‘무언가를 쏟거나 토해내지’ 않지만 가장 정제된 형태로 우리가 토해내는 것들을 포용한다. 관람자의 번뇌를 흡입하며 그의 작품은 마침내 시대의 산물이 되고, 해가 지날 때마다 그 작품이 포용하는 시대는 겹겹이 쌓여간다.
그는 이제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무한히 그를 포용해 준 캔버스와 한지에 그의 집념을 모두 토해내서 그런 것일까? 묘비명은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변해도 추락한다.”라고. 역설적인 짧은 문장 안에 그의 삶이 모두 담겨있다. 변화하지 않는 한국 미술에 개탄하고 저항하던 그의 모습과 지치지 않는 수행자의 모습이 말이다. 가지고 있는 연료를 모두 태운 자는 그 무엇 앞에서도 의연할 수 있다.
글 | 이서연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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