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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Dec 28. 2021

위대한 이름에게 보내는 마지막 커튼 콜



마침내 2021년의 끝에 섰다한 해가 시리게 저문다.

시간은 순식간에 야속하게 흘러가기에,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에게조차 끝은 찾아온다.



1925년 스탈린 정권 아래의 소련한 아이가 태어났다.

아버지는 스파이로 몰려 총살당했다어머니와 동생은 수용소에 끌려갔다가 타국으로 추방당했다열다섯도 채 되지 않은 아이는 모스크바에 남아 무용을 배우기를 택했다.

아이가 그렇게 무용에 열성적이었던 이유는 그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오직 그의 몸움직임뿐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한 개인은 너무나도 쉽게 휩쓸려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용수 마야 플리세츠카야는 탄생했다.


 



뻔한 예술가 이야기



russkiymir.ru



1943년 볼쇼이 발레단에 입단한 플리세츠카야는 2년 만에 프리마(수석무용수) 자리에 올라선다그간 날카롭게 벼려진 재능이 빛나기 시작한 것이다. <백조의 호수>를 필두로 <돈키호테>, <스파르타쿠스>, <빈사의 백조등 수많은 작품이 그를 거쳤다.


하지만 그에게 허락된 무대는 오직 러시아의 국경 안쪽이었다대중의 관심을 받는 무용수에게가족이 과거에 반동분자로 몰려 처형당했다는 사실은 하나의 족쇄였다플리세츠카야는 늘 당의 철저한 감시를 받았다그가 나오는 모든 공연은 엄격한 검열을 거쳤다출연 예정이었던 <카르멘>은 내용이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상영 금지가 되기도 했다.



Youtube_Maya Plisetskaya in Don Quixote(Lenfilm 1959)



마침내 1959그는 미국 순회공연에 나선다전례 없는 대성공이었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에너지와 무대 전체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는 서방의 관객을 완전히 매료시켰다.

가장 큰 환호를 받은 그의 필살기는 바로 그랑 시손’, 발레 <돈키호테>에 나오는 동작이다다리를 앞뒤로 찢으며 뛰어오르는 동시에 허리를 젖혀 발끝을 머리 위에 닿을 듯 올린다이 기술은 후에 그의 이름을 따 플리세츠카야 점프라고도 불린다.

첫 해외 공연의 성공 이후 그는 세계 곳곳을 누비게 되고당대의 인기 무용수이자 공산당의 지지를 받던 갈리나 울라노바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이야기는 이어지고



여기까지가 우리에게 익숙한 전형적인 천재 예술가의 이야기이다젊고 재기 발랄한 신예가 대스타가 되기까지의 일대기 말이다.

하지만 뿌리 깊은 장인의 진면목이 노년에 드러나듯플리세츠카야의 특별함은 여기서부터였다.



 


노화, 그리고 무대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 그도 나이가 들어갔다. 나날이 진행되는 노화는 무용수의 몸에게 특이나 잔인했다유연성이 줄어들고아픈 곳이 늘어나며날렵한 동작이 힘겨워졌으리라.


BAM blog



하지만 그를 잊지 못하는 관객에게플리세츠카야는 언제나 화답했다.

커튼 콜커튼 콜그리고 또 커튼 콜.

그는 계속해서 무대에 올랐다. 50대가 되어도, 60대가 되어도 마찬가지였다무대 밖에서는 점점 나이 들어가는 한 인간이었지만한번 무대에 오르면 언제나 관객을 넋 놓게 만들던 그 플리세츠카야였다.

중년의 플리세츠카야는 무용수인 동시에 로마 오페라 발레단마드리드 스페인 국립 발레단의 예술감독으로 재직했다본인의 이름을 딴 무용 대회의 심사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Youtube_La Muerte del Cisne 1992



러시아의 심장인 붉은 광장’, 67세에 춘 빈사의 백조가 끝난 후 관객들은 오래도록 기립박수와 환호를 보냈다예술에 한평생을 바친 거장에게 보내는 찬사와 경의였다.



The New York Times



70세에는 그를 위해 만들어진 무용 <아베 마야>의 초연을 했으며, 80세 생일을 기념하는 공연에도 무대 위에 섰다눈부시게 아름답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마지막 커튼 콜


인간은 스러지지만 예술은 영원하다그래서 예술에 삶을 오록이 바치려면 굳은 용기가 필요하다시대의 풍파 속냉소하며 포기하긴 쉽지만 온몸으로 껴안아 사랑하려면 얼마나 큰 강인함이 요구되던가.

무용수 마야 플리세츠카야는 무용 그 자체가 되었다그의 이름을 빼면 20세기 발레의 줄기는 손에 잡히지조차 않으리라.

그 위대한 이름에게 또 한 번의 커튼 콜을,

이제는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을 커튼 콜을 보낸다.




 


“우리 시대 최고의 댄서 중 하나이자, 이브 생로랑과 피에르 가르뎅의 뮤즈가 별세했다.”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영화 ‘백야’의 무용수)



 


마야 플리세츠카야, 2015년 당시 89세,

90세 기념 갈라쇼를 준비하던 중 심장마비로 타계.



International Maya Plisetskaya and Rodion Shchedrin Foundation





글 | 강운지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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