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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Oct 31. 2020

보기 싫은 것을 그린 화가 | 프란시스코 데 고야

자화상, 1783, 아쟁 미술관, 프랑스



  프란시스코 데 고야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에 활동한 스페인의 화가이다. 그는 대외적으로는 수석 궁정화가로서 맡은 바 임무를 다했으며, 개인적으로는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악한 모습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계몽주의 사상이 막 시작되던 당시 프랑스와의 전쟁, 왕정복고, 종교전쟁을 겪으며 격정과 혼돈의 시대를 살았던 그가 바라본 세상은 인간의 선함보다는 악함이 도드라지는 시대였다. 그렇기에 고야가 인간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악함과 잔인성에 관심을 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 모른다.



기괴한 램프, 1797~1798, 런던, 내셔널 갤러리 / 즐거운 여행, 판화집, 1799, 판화집 <변덕> 64번째 그림



  

그는 그림에 악마, 유령, 환영 등을 등장시키며 그로테스크하고 광기 어린 작품들을 그려냈다. 어지러운 시대 속 복잡한 개인의 내면을 표현한 작품들이다.



1808년 5월 3일, 1814,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1808년 5월 4일, 1814,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스페인-프랑스 전쟁 즈음에는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기 위한 그림을 그렸다. 전쟁을 영웅적인 서사로 미화한 과거의 여느 화가들과는 달리 그는 전쟁은 공포와 죽음만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캔버스에 그려 넣었다. 전쟁의 목적이 아무리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 할지라도 전쟁이라는 수단은 그 목적을 덮어버린다. 어느 쪽 할 것 없이 똑같이 잔인하고 부조리하다고 고야는 과감히 밝히고 있다.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 1799, 판화집 <변덕> 43번째 그림



  고야는 전쟁 이전부터 인간 내면의 악함에 집중해왔다. 우리는 악몽을 꾸기도 하고,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나쁜 생각을 하기도, 혹은 몹쓸 짓을 하는 악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더 나아가, 상상 속 악함을 실제로 행한다.



여자를 살해하는 산적, 1800~1810, 마드리드, 로마나 후작 소장



이렇듯 고야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인간의 잔인성과 악함에 주목했다.






행복을 노래하기보다 인간의 악함에 주목한 고야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고야는 왜 희망과 행복보다는 어두움에 주목했을까? 그가 살았던 시대는 국가 간 전쟁과 이념의 충돌이 만연하는 어둠의 시기였다. 삶이 힘들면 누구나 도피처로서 마냥 예쁘고 기쁜 것을 찾기 마련이다. 고야보다 2세기 이후 활동한 앙리 마티스 또한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암울한 시대를 통과했다. 하지만 마티스의 작품 세계는 고야와 정반대이다. 그는 프랑스 니스에서 인간의 행복과 즐거움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현실과 상반되는 주제의 그림을 그림으로써 마티스는 현실로부터 일종의 도피를 꾀한 것으로 보인다.



마티스 <음악>, 1939, 올브라이트 녹스 아트갤러리. / 고야 <군영의 총격>, 1800~1810, 마드리드, 로마나 후작 소장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바쁘고 삭막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가볍게 볼 수 있는 내용의 영화나 드라마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고야는 어떠한가? 그는 그림을 통해 오히려 악함을 극대화했다. 행복을 노래하는 대신, 악이 판치는 현실을 그 누구보다도 정확히 직면하고 그것을 캔버스에 미화 없이 그렸다. 고야는 왜 인간의 악함에 주목했을까?







고야의 그림: 현실을 비추는 거울


  

  고야에게 그림은 현실 세계를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현실 세계란 망막에 맺히는 표면적인 세계가 아니라 그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실상을 말한다. 이러한 실상을 왜곡 없이 드러내는 것이 그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였다. 그는 그림을 통해 현실로부터 회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진실을 드러내는 쪽이다. 고야는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악한 것들과 그 악함이 밖으로 표출된 현실 세계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표현하였다. 그래야만 우리 내면에 존재한 악을 떨쳐내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고야는 마티스처럼 행복을 그리지 않고 혼돈의 시기 한복판에 서서 오히려 그 혼돈에 깊숙이 들어가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고야가 그의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앞서 언급했듯이, 고야는 인간 내면의 악한 진실을 가감 없이 표현하고자 했다. 깊이 성찰하지 않는 한 발견하기 어려운 내면의 악함을 말이다. 오늘날에도 세계 여러 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내전, 질병, 인종차별 등 그 강도와 종류는 다를지언정 본질은 똑같은 고통들이 있다. 고야는 그의 그림을 통해 미래의 우리에게 고통과 대면하라고 말한다. 직접 마주함으로써 악함을 기억해야만 그 악함을 경계하고 이겨낼 수 있다고 그는 전한다.








현시대에 고야의 그림이 갖는 의미



  고야가 그린 악함과 고통은 인간이 지구상에 있는 한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그의 시대로부터 3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지구 어딘가에는 내전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이 있으며, 얼마 전 미국에서는 백인 경찰이 과잉 진압으로 무고한 흑인 시민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멀리 가지 않아도 우리나라 또한 8세 여아를 끔찍하게 성폭행했던 범죄자가 곧 출소를 앞두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하고 차별 속에 고통받으며 내면에서 들려오는 악한 속삭임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우리가 이런 전 지구적, 사회적, 개인적 문제들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고 경계하고자 할 때 고야의 그림은 그 의미를 발한다. 그의 그림들이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싫겠지만, 고통의 순간을 상기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가지기도 한다. 심리학에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트라우마를 다시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고야의 작품을 보며 어떤 이는 과거의 상처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비슷한 아픔이 있는 사람이 주는 위로가 그렇지 않은 이들의 위로보다 훨씬 힘이 되듯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악한 모습에 지친 이들에게 고야의 그림이 위로가 될 것이다. 동시에 다른 이는 나도 모르게 품고 있던 악함을 깨닫고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좋은 것만 보지 않고 고통스럽고 암담한 것들에도 관심을 가진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보다 선해질 것이다. 몇 세기 전 고통을 직면하는 법을 탐구한 고야의 외침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글 | 김영은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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