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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Mar 03. 2021

새는 그렇게 둥지를 떠난다 | 영화 '레이디버드'

 


  모든 딸은 엄마와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 견딜 수 없이 사랑하고 아끼다가도 가끔은 한없이 서로를 갉아먹는 관계 말이다.


  엄마는 많은 경우 딸의 후원자이자 절친한 친구이다. 그러나 동시에 엄숙한 심판관이자 앙숙이기도 하다. 둘 사이의 애증은 보통 딸이 독립하기 전까지 지속되고, 많은 경우 점점 날카로워진다.


  그러나 둥지를 떠날 시기가 찾아오면, 홀로 서기 시작한 딸들은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집 밖의 세상’에서는 자신과 늘 함께하며 더없이 사랑해 줄 사람도, 맹렬하게 공격할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딸들은 지금까지의 삶을 이루던 ‘가장 큰 조각’의 부재를 경험한다. 잠시간 만끽하던 해방감은 곧 두려움으로 바뀌고, 해묵은 섭섭함은 그리움으로 변한다.


  이렇듯 엄마에게서 갓 독립한 딸들에게 바치고 싶은 영화가 있다. 그레타 거윅의 <레이디 버드>(2018)이다.


 



엄마와 딸 사이, 특별하고 평범한



유튜브 채널 ‘Movieclips’ 中 ‘Lady Bird(2017)’



  영화는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상황으로 시작한다. 서로 맞지 않는 엄마와 딸의 말다툼, 갑작스럽게 높아지는 언성 말이다. 자존심 강한 딸은 엄마와 계속 한 공간에 있을 바에 차라리 달리는 차에서 도로로 뛰어들기를 택한다.


 

유튜브 채널 ‘A24’ 中 Lady Bird Official Trailer




  결국 팔에 깁스를 하고 등장한 ‘크리스틴 맥피어슨’, 우리와 함께 할 <레이디 버드>의 주인공이다. 여느 사춘기 고등학생들이 그렇듯 그녀는 ‘특별함’을 찬미한다. 그녀는 스스로 ‘레이디 버드’라는 예명을 붙이고, 미래에 뉴욕에 가서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 하는 꿈 많은 소녀이다. 크리스틴은 고향인 새크라멘토를 지긋지긋한 감옥으로 여긴다.



 

유튜브 채널 ‘A24’ 中 Lady Bird Official Trailer




  크리스틴을 적극적으로 제지하는 이는 바로 그녀의 엄마, ‘매리언’이다. 매리언은 크리스틴에게 등록금이 모자란다며 주립대학이나 시립대학에 진학하기를 강요한다. 그녀는 크리스틴의 예명을 무시하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데다가 틈만 나면 크리스틴이 이기적이라고 비난한다. “주제를 모른다"라며 크리스틴의 꿈과 야망을 비웃고 깎아내리기도 한다. 어느 날 “엄마의 엄마가 화내서 속상한 적 없었어?” 라는 크리스틴의 질문에는, “우리 엄만 폭력적인 알코올 중독자였어”라고 차갑게 대답했을 뿐이다. 너무나도 엄격한 매리언의 행동에, 크리스틴은 아빠에게 자신이 비밀리에 동부 쪽 대학에 지원할 계획임을 밝힌다.



 

유튜브 채널 ‘A24’ 中 Lady Bird Official Trailer




  얼핏 매리언이 시종일관 크리스틴을 못마땅해하며 나무라기만 하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자의식이 강한 크리스틴은 순탄치 않은 고등학교 시기를 보낸다.


  그녀는 단짝 친구와 함께 지원해 합격한 연극부에서 주인공 대신 ‘있으나 마나 한 배역’을 받는다. 그래도 열심히 해보려는 가운데 연극부에서 만난 남자아이 ‘대니’와 풋풋한 사랑을 경험하지만, 얼마 후 사실은 그가 동성애자임을 깨닫는다. 다음 남자친구인 ‘카일’과의 관계 역시 어설프고 서투른 사춘기의 일탈에 지나지 않았다.


  여러 실패를 경험하는 가운데 크리스틴을 끝까지 지켜봐 준 사람, 크리스틴이 상처받고 울먹일 때 말없이 안아준 사람은 바로 매리언이었다. 크리스틴도 결국 한 명의 딸이고, 매리언도 결국 한 명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모든 딸들은 이 관계를 이해할 것이다.


 



날갯짓을 시작한 어린 새



  크리스틴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시기가 찾아오고, 매리언은 크리스틴이 뉴욕 대학의 입학 대기자 명단에 올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크게 충격받은 그녀는 전처럼 화를 내거나 잔소리를 늘어놓는 대신 입을 닫아버린다.


  크리스틴을 두렵게 한 것은 바로 그 침묵이었다. 그녀는 제발 대답 좀 해보라며 매리언에게 애원한다. 그럼에도 매리언이 무시로 일관하자, 크리스틴은 마음이 다급해져 눈물과 함께 사과를 쏟아낸다. 매리언이 자신에게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해주려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더한 것을 요구했다는 점, 감사한 줄도 모르고 불평을 늘어놓았다는 점…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외면해왔던 자신의 잘못들을 내뱉으며 크리스틴은 괴로워한다. 크리스틴이 수없이 많은 후회를 쏟아내는 가운데, 매리언은 말없이 접시만 닦고 있을 뿐이었다.


 




새는 그렇게 둥지를 떠난다



  크리스틴은 결국 뉴욕 대학에 합격한다. 그녀가 뉴욕으로 떠나는 날, 매리언은 공항 주차비 핑계를 대며 딸을 배웅하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단호함도 잠시, 이내 마음을 바꿔 공항에 돌아가지만 크리스틴은 이미 검색대를 통과한 후였다. 매리언은 남편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린다.  




유튜브 채널 ‘Movieclips’ 中 ‘Lady Bird(2017)’




  뉴욕에 도착한 직후 가방을 정리하던 크리스틴은 그 속에서 편지 꾸러미를 발견한다. 매리언이 예전부터 자신에게 써 왔던 편지들로, 짐을 전부 싸기 전 아빠가 몰래 넣어 둔 선물이었다. 크리스틴은 고요히 편지를 읽는다. 이윽고 몇 주 후의 시점을 배경으로 크리스틴이 보낸 음성 메시지가 흘러나온다.


 


“엄마, 엄마도 새크라멘토 거리를 처음 운전할 때 감상에 젖었었어?

난 그랬어. 그 얘길 하고 싶었지만 그땐 우리 사이가 안 좋았었지.

평생 지나다니던 그 길들, 가게들, 건물들… 모두 너무 정겹더라.

엄마한테 이 말을 하고 싶었어.

사랑해, 고마워, 고마워요.”


 

유튜브 채널 ‘Movie Moments’

 



 <레이디 버드>의 마지막에는 차를 운전하며 새크라멘토를 ‘떠나던’ 크리스틴의 모습과, 새크라멘토로 ‘돌아가던’ 매리언의 모습이 번갈아 나오며 겹쳐진다.


  영화 내에서 매리언과 새크라멘토는 사실상 같은 의미를 가진다. 크리스틴에게는 매리언이 곧 새크라멘토, 새크라멘토가 곧 매리언이다. 둘은 동일하게 애증의 대상, 떠남의 대상, 뒤늦은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틴은 뉴욕에 가고 나서야 사실은 자신이 새크라멘토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점을 깨달았고, 매리언을 떠나고 나서야 진정으로 그녀를 이해하게 되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매리언과의 언쟁은, 영원한 몰이해의 영역이 아닌 ‘소중한 과거의 한 조각’으로 언제나 크리스틴의 가슴 속 한 귀퉁이를 차지할 것이다. 지긋지긋하던 새크라멘토와의 인연 역시 그렇다.


  또한, 영화의 초반부에 크리스틴은 매리언의 차 조수석에 앉아 말다툼을 했다. 이때 핸들을 잡은 사람은 매리언이었으며, 크리스틴이 매리언과의 충돌을 피할 방법은 ‘도로에 몸을 던지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도, 크리스틴은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잡을 것이다. 그 곳이 어디든, 자신이 원하는 장소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새는 그렇게 둥지를 떠나 날아간다.


 




모든 ‘레이디 버드’들에게



유튜브 채널 ‘Movie Moments’




  종종 나이 많은 여성들에게 “엄마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라는 말을 듣는다. 이유를 물으면 보통 “너무나도 고맙고 미안해서”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렇듯 성장한 딸들은 결국 엄마를 이해하고, 존경하며, 또 사랑하게 된다.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떠나고 나서야 감사를 느끼고, 견딜 수 없이 미워하던 대상을 그리워하곤 한다. 아마도 그게 바로 모녀 관계이고, 곧 삶이기 때문이리라.


  영화 <레이디 버드>는 흔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춘기 딸과 엄마의 관계를 비춘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사랑스럽고 애틋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수없이 많은 딸들이 그 ‘평범한’ 과정을 겪으며 자랐기 때문이다.


  막 둥지를 떠난 ‘레이디 버드’들에게 말한다. 독립하여 홀로 책임을 감내하는 ‘첫 도약’을 겪는 와중, 문득 엄마의 목소리가 그리워지는 마음을 안다. 엄마와 함께 살던 순간을 회상하며 느끼는 감정을 이해한다.


  그러나 한 걸음을 내딛는다는 건, 한 뭉치의 과거를 뒤에 남겨놓음과 같다. 어떤 장소를 향한다는 건, 어딘가를 떠나감을 뜻한다. 그렇기에 모든 도약은 찬란하고 외로우며 쓰라리다.


  이 잔인한 필연 속 눈부시게 뛰어오르는 그대들을, 비슷한 또 한 명의 ‘딸’로서 응원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유튜브 채널 ‘The Sound’





글 | 강운지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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