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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Sep 17. 2020

영화 '본투비블루' | 마약과 사랑, 기로에 선 선택

I fall in love too easily / 난 너무 쉽게 사랑에 빠져버리지   
I fall in love too fast  / 난 너무 빠르게 사랑에 빠지지 
My heart should be well-schooled / 내 마음은 좀 더 성숙해져야 해 
Cause I've been fooled in the past / 왜냐면 과거에 늘 실패로 끝났거든 
I fall in love too fast / 난 너무 빠르게 사랑에 빠지지... 

〈 I fall in love too easily >  
 





1988년 5월의 밤, 그는 암스트레담 호텔방에서 추락했다. 투신자살인지 혹은 실족사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가 머물던 방에는 마약이 널브러져 있었다. 보컬 재즈 음악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곡 <I fall in love too easily>의 주인공인 쳇 베이커(Chet Baker, 1929~1988)의 이야기다. 

아름다운 음악과는 대조적으로 천재 예술가의 삶은 엉망으로 일그러져있었다. 영화 ‘본 투 비 블루’는 마약중독과 사랑의 실패로 몸부림치던 쳇 베이커의 격렬한 삶을 재해석한다. 음악에 대한 낭만과 그가 겪었던 실존적 고통을 오가며 사람들은 아이러니한 위로를 느끼게 된다.



Baker by Bob Willoughby, LOS ANGELES 1953



깔끔한 외모와 우수에 찬 눈빛, 섬세한 음색으로 주목받았던 뮤지션이자 트럼페터 쳇 베이커는 1950년대 쿨재즈의 아이콘이었다. 그의 중성적인 목소리와 몽환적인 연주를 담은 <My funny valentine>은 벨기에 작가 마크 단발이 “20세기가 낳은 가장 아름다운 흐느낌”이라고 평할 정도로 낭만적이다. 

예술가로서 성공적인 행보를 걷던 베이커는 30대에 들어서 마약에 빠지고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게 된다. 그가 마약에 빠진 이유는 '재미를 위해서'였다. 지극한 쾌락주의자였던 문제의 예술가를 구원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사랑’ 그리고 ‘음악’ 뿐이었다.






로버트 뷔드로 作 <본 투 비 블루> 2015 © http://propa-ganda.co.kr/



“난 연주가 하고 싶어요.” 



영화 속 장면들은 흑백과 컬러 이미지로 교차되며 두 가지 세계가 펼쳐진다. 1954년, 20대 초반의 쳇 베이커(에단 호크)는 뉴욕 재즈 클럽 버드랜드 무대에 서며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 잿빛으로 표현되었지만 그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던 시기였다. 



반면 현재 시점의 그는 밑바닥 인생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 과거의 성공으로부터 오는 괴리감과 첫 번째 사랑의 실패는 끝없이 일상적 삶에 편입하며 그를 지리멸렬한 고통 속으로 빠트린다. 



베이커의 전성기 시절. 쾌락을 위해 마약을 시작한 쳇 베이커는 중독자가 되었고 기존 재즈와는 다른 자신의 여성적인 음색에 대한 열등감을 안고 있었다. © 영화 '본 투 비 블루'



30대 초반, 음악적 성공과 더불어 마약에 중독된 쳇 베이커는 몸과 정신이 피폐해지게 되고 오랫동안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 수 없게 된다. 온전하지 못한 정신으로 연주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고 마약을 사느라 진 빚을 갚기위해서 허드렛일을 전전해야 했다. 

더 이상 삶을 망가트릴 수 없어서였을까. 오랜 공백기 끝에 그는 자신을 다룬 자전적 영화에 출연하면서 재기를 꿈꾼다. 하지만 영화를 준비하는 와중에 쳇은 마약상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하게 되고 트럼펫 연주자로서 심각한 부상을 입는다. 앞니가 모두 없어져 의치를 껴야했지만 그럼에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음악뿐이었다. 




마약에 빠진 채로 트럼펫 연습을 하다 부상을 당한 비운의 예술가. © 영화 '본 투 비 블루'



마약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서 새롭게 시작하려 발버둥 치는 그의 모습은 마치 피투성이의 전투를 보듯 불안하고 위태롭다. 예전처럼 무대에 오르기 위해 뼈아픈 연습의 과정을 겪는 쳇 베이커. 

하지만 그가 바라던 것은 과거에 누렸던 화려한 명성이나 부, 권위가 아니었다. 그저 한 명의 예술가로서 '연주'가 하고 싶었을 뿐. 음악이야말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행위였기 때문이다.




사랑을 향한 구슬픈 애원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



이기적인 집착과 낭만적 사랑을 꿈꿨던 쳇 베이커와 제인. 이 사랑의 결말은 어떻게 맺어질까 © 영화 '본 투 비 블루'


쳇 베이커를 마약에서 구원해 준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 자전 영화에 상대역으로 출연했다가 사랑을 시작하게 된 제인(카르멘 에조고)은 베이커의 곁을 지키며 그가 예전처럼 활동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혼돈으로 가득했던 예술가의 삶에 비로소 축복과 평화가 생겨나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사랑을 통해 안정감을 느끼게 된 베이커는 점점 과거의 아픔에서부터 회복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진심 어린 사랑이었으리라. 아무런 이유 없이 나약한 자신의 존재를 감싸 안아주는 따뜻함이 그리웠을 것이다. 그렇게 베이커는 계속해서 제인의 사랑을 열망한다.


낭만주의자 제인과 이기적인 남자 베이커. 두 사람의 낭만은 누구를 향해있었을까? © 영화 '본 투 비 블루'



마약에 대한 중독이 사랑에 대한 집착으로 옮겨지며 베이커는 점점 제인에게 감정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해서 혹은 음악적 영감을 받기 위해 베이커는 이기적인 사랑의 태도를 보인다. 배우를 준비하며 오디션을 보러다니는 제인에게 서운함을 느꼈고 그녀의 꿈이 아닌 오직 자기 자신의 꿈을 뒷받침해주길 바랐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결핍을 껴안으며 낭만적인 관계를 이어가지만 그들의 사랑은 외발 달린 의자처럼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남자를 위해 희생하는 낭만주의자 제인과 음악에 대한 욕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이기적인 예술가 베이커는 위태로우면서도 아름다운 사랑을 이어나간다.



죽음과 두려움 그리고 선택된 삶 "Born to be blue"



오랜 공백기 끝에 버드랜드에서 노래하는 피터 베이커 © 영화 '본 투 비 블루'



‘악마가 부른 천사의 노래’라고 평가받던 쳇 베이커의 음색은 사랑에 빠진 어린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듯하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선물 받았던 소중한 트럼펫 고리를 전하며 프러포즈하는 그의 모습은 희망에 찬 어린아이처럼 순진함이 묻어난다. 사랑을 지키겠다 다짐한 베이커는 제인에게 다신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어느새 영화는 그의 찬란한 시절을 함께했던 뉴욕의 재즈 클럽, 버드랜드의 무대로 돌아간다. 음악적으로 가장 성공했지만 동시에 열등감과 부담감으로 얽매이던 공간 앞에서, 베이커는 성공적으로 일어설 수 있을까. 



재기를 위해 음악 작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베이커, 그를 구원으로 이끌었던 건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 영화 '본 투 비 블루'



하지만 그는 오랜 기간 준비하던 꿈의 무대를 앞두고 다시금 불안해진다. 마약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르겠다는 제인과의 약속을 지킬 것인지, 아니면 마약을 해서 최상의 연주를 선보일 것인지. 사람으로서의 양심과 예술가로서의 성공을 두고 선택의 기로에 놓인 그는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Born to be blue'라는 상징적 제목처럼 영화는 베이커가 겪었던 고통을 낭만적인 요소와 더불어 감성적으로 기억되게 한다. 우울과 슬픔을 상징하는 파랑(Blue)은 영화 곳곳에 녹여져 서정적 멜로디의 잔상을 남긴다. 

오래도록 고독과 싸우던 비운의 예술가가 특별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뭘까. 아마 지금까지도 그의 고통이 많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달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과 집착으로 반복되던 쳇 베이커의 삶은 결국 외로운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그의 삶을 설명하는 데에는 오직 음악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https://youtu.be/3y11EHQAGhU

Chet Baker - Born to Be Blue



I guess i'm luckier than some folks / 난 남들보다 운이 좋은 거 같아 
I've known the thrill of loving you / 널 사랑했던 희열을 맛봤으니까 
But that alone is more than i was created for / 그것 말고는 내가 존재할 이유가 없어 
'Cause i was born to be blue / 왜냐면 난 원래부터 우울하니까  

 〈 Born to be blue >  





글 | 김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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