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캣츠>의 막이 오르는 순간,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환상에 빠진다. 배우들의 몸짓 하나, 손동작 하나가 모두 살아있는 고양이 같다. 사람들은 무대 위와 객석 사이사이를 누비는 고양이들에게 매료된다. 그만큼 극의 내용 자체는 별로 주목받지 못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오로지 배우들의 연기만이 볼거리라고 한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에 비해, 긴 시간 동안 나열되는 이야기와 노래들은 지루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나씩 들여다보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무대 위 고양이를 연기하는 것이 사실 한 사람 한 사람의 배우이듯, 고양이들의 이야기처럼 보이는 이 이야기도 결국에는 사람들,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한 무도회에 참여한 고양이들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무도회의 사회자 고양이는 선지자 고양이 ‘듀터라노미’가 한 고양이를 선택해 새로운 삶을 살게 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고양이들은 새로운 삶을 받는 ‘젤리클 고양이’로 선정되기를 기대하며 각자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고 노래를 부른다. 수많은 고양이들이 통통 튀는 노래와 춤을 보여주는 가운데, 한 고양이가 눈길을 끈다. 바로 나이 든 극장 고양이, ‘거스’이다.
거스는 유명했던 극장의 대스타였다. 거스는 무대 위에서 자신의 찬란했던 과거를 노래한다. 비록 이제는 늙고 병들어버린 그지만, 과거를 노래하는 그 순간만큼은 다른 고양이들처럼 기운이 넘치고 빛난다. 하지만 이미 빛은 다 바랬고, 그 시절의 영광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저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거스는 그렇게 천천히 무대에서 퇴장한다. 다른 고양이의 부축을 받아 무대를 퇴장하는 거스의 뒷모습은 쓸쓸하고,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 과거는 빛나고 반짝거린다. 하지만 거스의 영광스럽던 과거가 그러했듯, 언젠가는 우리의 곁을 떠나가고야 만다.
흔히 우리는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 이제 더 이상 빛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것이 바로 ‘그리자벨라’이다. 그리자벨라는 이제는 추해진, 공동체 밖으로 쫓겨난 고양이다. 그리자벨라 역시 과거의 빛났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회상한다. 하지만 그리자벨라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리자벨라는 해가 뜨는 새로운 날을 노래한다. 이때 그리자벨라가 부르는 넘버가 바로 ‘Memory’이다.
Daylight, I must wait for a sunrise,
I must think of a new life and I mustn't give in
(아침이 오면 다시 떠오르는 태양과 같이,
나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거야. 난 포기할 수 없어.)
<Memory> 中
이제는 모두가 그리자벨라를 거부하고, 내치지만 그리자벨라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지나간 날들을 모두 추억으로 남기고 이를 발판으로 새롭게 행복을 찾아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씩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살아가곤 한다. 과거가 더 빛나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과거는 그 자리에 멈춰 있고, 아름답던 그 시절 그대로 박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재는 너무나 불확실하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마치 거스가 과거를 노래할 때 다시 빛이 나듯, 과거는 우리가 그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준다. 어쩌면 거스의 다음으로 그리자벨라가 노래를 부르는 것이 이런 뜻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과거의 영광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이를 기반 삼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빛났던 과거는 현재를 살아갈 힘이 되어줄 것이다.
글 | 김채원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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