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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Jun 23. 2021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화백 '김환기'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광섭, <저녁에>





  망망대해보다도 넓은 우주 아래에서 만난 인연은 마치 반짝이는 별과 같이 특별하다그러나 아침이 오면 별이 사라지고 해는 어둠 속에 사라지듯 우리는 수없이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그렇게 김광섭은 별에 서로를 바라보는 눈동자를 투영한다그리고 그 눈빛이 얼마나 아름답고 애틋한지 노래한다이렇게 <저녁에>는 우주그리고 어둠에 빗대어 그리움을 노래한다.



김환기, <우주> ©환기재단



  김광섭 시인의 작품을 읽으면서 떠올렸을 밤하늘과 우주의 모습이 김환기의 캔버스에서 펼쳐진다거대한 캔버스를 가득 채우는 푸름과 그 안에 부유하는 점들은 마치 우주와 같다그러나 조금만 더 가까이서 작품을 바라보자하나하나의 점이 마치 반짝이는 별과 같지 않은가그리고 더 자세히 보면 그 별이 그리운 사람을 기억하는 아픈 눈망울 같지 않은가캔버스 공간에 네모난 점을 찍으며 김환기는 그리운 사람들순간들을 떠올렸을 것이다그것이 그가 기나긴 유학 생활과 전쟁 상황 중 고향을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신동아



  그는 이 작품을 만들며 화면 전체에 점을 찍고 그 점 하나하나를 반복하여 둘러 칠해 색이 서로 합쳐지고 번지도록 하였다이러한 그의 표현 방식은 김광섭의 시에 드러난 별빛의 일렁이는 모습을 상징할 것이다더불어 하나의 점이 점차 여러 색을 입게 되는 과정은 퍼져 나가는 그리움 그리고 계속해서 덧입혀지는 슬픔을 보여준다.


  하나하나의 점은 서로 구별되는 색다름을 얻고각자의 의미를 얻는다각각은 슬픔의 눈동자이기도 하고 원망의 눈동자이기도 하며동경의 눈동자이기도 할 것이다이렇게 김환기는 자신의 캔버스의 자신을 그리는 이들의 정제되지 않은 다양한 감정을 담아낸다김환기는 일기에 다음 작품에 대해 “서울을 생각하며오만가지 생각하며 찍어가는 점”, “내가 그리는 선하늘 끝에 더 갔을까내가 찍은 점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라고 적었다그는 그의 그림 속 별이 점이 되어 하늘에 닿길 바란 것이다.



김환기, <피난열차> ©환기재단



  김환기는 긴 일본 유학 생활과 전쟁으로 계속 한국에 머물지 못하였지만 언제나 한반도의 산천을 그리워했다일본과 파리에서 선진 미술가와 교류하며 추상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가면서도 언제나 마음 한편엔 한국의 예술한국의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전쟁으로 인해 한국의 미술 활동이 위축되었을 때에는 국문학도들과 모여 글에 몰두하기도 하였다.


  그는 언제나 창작과 사유를 멈추지 않았고 자신의 본질인 한국의 미학을 계속하여 상기했다서양 미술의 좋은 점을 끊임없이 탐독하면서도 의식적으로 해외의 것에 너무 깊게 물들지 않기를 바랐다동시에 그는 세계 무대를 동경했다한국에서 미술가로서 모든 권위를 이룬 뒤에도 그는 끊임없이 더 큰 세상을 갈망했고새로운 세계에 진출할 때마다 늘 초심으로 임했다.



김환기, <부부 항아리> ©환기미술관




예술에는 노래가 담겨야 할 것 같소.
거장의 작품에는 모두 강력한 노래가 있구려




  김환기는 늘 회화로써 시의 정신을 달성하기를 꿈꿨다회화에 시와 같은 서정성이 담기길 바란 것이다그리고 작품을 통해 우리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어 했고 그 까닭으로 자연을 동경했다더 나아가 그는 자신의 그림에 자신만의 노래가 담기길그림이 그 노래를 불러주기를 바랐다그리고 우리가 그의 그림이 부르는 노래에 귀를 기울일 때 그의 그리움과 고민들이 기억될 것이다.




김환기와 그의 작품 ©매일경제



  그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서 그리운 이들을 기억하고우리는 그런 그의 그림을 보면서 과거의 아픔그리고 그 시절을 살아간 이들의 영광스러운 삶들을 기억한다그가 살아간 시절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지만그가 남긴 그림 속 한국은 여전히 아름답고 따뜻하다.





글 | 이서연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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