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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권태 Jul 20. 2021

따릉이

2020년 4월 30일에 써 두었던 짧은 글

서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의 장점은 여러 개지만, 삶은 연예 일간지처럼 미심쩍은 것과 단점 사이의 애매모호한 것만 부풀리는 경향이 있어, 어쩌면 잊고 지낸 서울의 가장 큰 장점은 흔히 발걸음에 채는 곳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거대도시가 제공하는 가장 작은 장점으로 ‘둔갑하고 있는’ 공공 자전거가 사실은 아주 작지만 값비싼 다이아몬드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서울시 외의 곳에도 공공 자전거는 많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따릉이가 그런 다이아몬드가 아니라고 딴지를 걸고 싶을지 모르겠지만, 자원은 그 희소성과 유용성에 따라 그 가치를 부여받는다는 것은 자명하나 그 희소성은 꼭 유일함에서 비롯될 필요는 없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공공 자전거가 있는 다른 도시의 주민들이 이 글에서의 따릉이를 통해 그 지역의 공공 자전거를 떠올리고, 그 도시에도 끝내주는 장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아마 하나뿐이고 나눌 수 없는 최고의 가치를 찾아 헤매는 것 보다야 다수의 효용은 더 높아질 것이다.


따릉이의 장점은 저렴한 가격, 좋은 접근성, 간단한 사용법 등등이 있겠으나 가장 큰 장점은 이 따릉이가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늘 지나치고 마는 것들의 좋은 마스코트라는 것이다. 내일부터 운동해야지, 가끔 동창들을 만나 보는 건 어떨까, 부모님께 전화 한 통 드리자, 어제 지나가다가 본 월드비전 광고에 전화를 걸어 조금이라도 후원을 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것들. 꼭 따릉이를 본다고 저 모든 것이 떠오른다는 보장은 없으나 가볍게 빌린 자전거에 몸을 맡기고 바람을 가르면 평소에는 안중에도 없던 생각이 떠오를 확률은 조금이라도 높아질 것이다. 걷거나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는 것이 지겨워지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자전거를 타라! 타고 원래의 길에서 기꺼이 벗어나라! 이 모든 것이 한 시간에 천 원이다!(2020년 상반기 현재 제로페이로 결제한다면 50%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이보다 좋은 거래가 있을까?


파랑새를 찾아 떠난 두 사람은 결국 파랑새는 집에 있었다는 진부한 결말을 맞는다. 하지만 원래 소중한 건 눈에 잘 보이지 않고 보통 그것을 잃은 후에야 소중한 줄을 알아차리는 셈이다. 삶은 늘 그런 식이다. 중요한 것들은 진부한 장소에 대충 두고 중요하지도 않은 것을 얻기 위해 사람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게 만든다. 귀중한 것을 갖기 위해서는 그만한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경제학의 논리가 꼭 삶에 해당되는 것은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사실 무엇이 진짜 중요한 것인지 알려 주는 정보를 얻는 것이다. 따릉이를 타고 생각해 보라. 대체 뭐가 그리 중요했지? 한 시간에 천 원(할인을 받는다면 오백 원)으로 인생을 다시 뒤적일 기회를 갖는다면 이것은 꽤나 수지맞은 장사라 하겠다. 나라면 그냥 속는 셈 치고 자전거를 한 번 더 타 볼 것이다.  






전여운 | 공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경제학도입니다.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깨달음들을 기록하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떠오른 이야기들을 씁니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을 생각들과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쓰는데, 그 글이 독자들에게도 재미있게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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