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시간은 '흐른다'라고 한다. 마치 물처럼 방향을 가지고 있으며,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지나간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똑같이 주어진다. 그러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각자에게 달려있다.
때문에 동일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경쟁이 붙는다면 우리는 '시간 싸움'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시간이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고 믿기에, 이를 다스릴 방법을 연구하고 상상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은 정말 다스릴 수 있는 것인가.
시간은 사실 무형의 존재인데, 시계라는 측정의 도구가 있음으로써 유형의 존재의 성질을 띤다.
예로부터 인간은 생존을 위해, 이후에는 농사를 짓기 위해 시계를 사용한다.
그러면서 시간을 낮과 밤의 구분에서 점점 세세하게 구분하게 되는데,
낮의 길이 혹은 달의 모습을 보고 양력과 음력을 만들고
1년이라는 시간 속에 자신이 어디에 위치해있는지를 파악하게 된다.
지금의 우리가 알고 있는 시/분/초의 개념은 영국에서
시계탑이 생기고 나서라는 것을 유현준 교수의 팟캐스트에서 들은 적이 있다.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사용자는 좀 더 노동자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방식이 필요했는데,
빅벤이 런던의 한 복판에 위치함으로써 모두가 시간이라는 정보를 공유하게 되고,
이에 따라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좀 더 규칙적으로 변한다.
대표적인 예가 <모던 타임스>에서 찰리 채플린이 정해진 시간에 노동을 하고 나서 휴식을 하고,
다시 노동을 하는 사이클이 생기는 것을 들 수 있으며,
더불어 <셜록 홈스> 같은 추리소설에서 용의자들이 어떤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알리바이'를 입증함으로써
사건의 범인을 찾는 것도 시계탑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현대 시간의 표준시(GMT)가
영국을 기준으로 하게 된 것도 이런 환경에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플레밍과 같은 위인들, 인터넷과 핸드폰의 보급 등으로 우리는 모두 같은 시간의 개념을 공유하고 있다.
일종의 동기화(Sync)가 이루어 짐으로써, 이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같은 시계를 보게 되었고,
보다 강한 시간의 규칙에 지배를 받게 되었다.
삼국시대만 해도 12 간지로 구분되던 하루의 시간이, 지금은 0.001초보다 낮은 단위까지 계산되면서,
시간에 지배받는 인간의 삶도 꽤나 팍팍해졌다.
어떤 아이디어가 자신의 것으로 인정받으려면 누구보다 빨리 그 아이디어를 POST 해야 한다.
내가 제일 먼저 했다는 Timestamp는 내가 1등이라는 증거가 된다.
올림픽에서 사람들은 0.01초로 세계 신기록을 경쟁했지만,
이제는 기계들이 자신들이 얼마나 더 빠른지 밀리초를 다투고 있다.
9시 1분은 9시가 아니라는 배달의 민족이 다른 민족들을 이긴 이유도
이러한 전장의 규칙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의 한자어를 뜯어보면, 때와 때의 사이를 가리킨다.
한 시점, 한 시점이 모여 선을 이루는 것으로 우리는 보통 시간에 연속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는 '타임라인'으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우리가 시간 위에서 경쟁을 하면서, 시간을 소모하고 만드는 것들은 '지난 시간'이라는 자취이다.
누군가는 이를 역사라 부르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이를 기억, 추억 등으로 부르기도 하며,
이런 자취 위에서 인간은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를 알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인간은 아직 시간을 완전히 다스리지는 못했다. 끊임없이 마주하는 현재를 감당하지 못하고,
과거를 지나간 것으로 그냥 두기에는 후회되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계속해서 미래를 알아보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으며,
가능하다면 과거 또한 바꾸고 싶어 한다.
사실 이 글은 여러 작품과 매체에서 그려진 '시간을 다스리는 법'과 관련된
상상들을 정리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시작된 글인데, 서론이 길어졌다.
대략적으로 그냥 오타쿠 성향의 필자가 넷플릭스에 중독돼서
그런 것 같다고 쓴 것들이니 모두 가볍게 읽어주면 고마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