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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달글 Nov 22. 2020

[꿈글] 헤델의 글 - 01



이아는 좁은 마을 사거리에 위치한 카페로 들어섰다. 카페의 문 옆에는 라일락 꽃이 화분 가득히 펴 있고, 은은한 향이 그녀의 코에 흘러왔다. 카페로 들어선 이아는 누군가를 찾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두리번거렸다. 구석에서 꽤나 큰 키를 가지고 있는 한 남자가 이아를 바라보며 손을 살며시 흔들었다. 이아는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번지며 반가운 발걸음으로 그 남자에게 다가갔다. 남자도 이아를 마주하는 표정이 밝았다. 테이블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차도 미리 내어져 있었다.


“고마워 잘 마실게.”

“카모마일 차야”라고 남자는 말했다. 카모마일 차는 옅은 페퍼민트 향을 내뿜었다. 그는 치약과 비슷한 페퍼민트 향을 그리 좋아하진 않았지만 이아를 위해서 같은 차를 주문해 놓았다. 그는 비어있는 찻잔에 차를 따르며 입을 열었다.


“일은 어때?”

“헤델. 오빠 덕분에.”라고 말을 하고 덧붙여 이어갔다. 남자의 이름은 모그마인 헤델이였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 우선 좋아하는 글을 무지 많이 읽을 수 있다는 게 기뻐.”

“감사하긴 뭘”이라고 헤델은 말했다.


이아는 출판사에 취직했다. 취직 자리는 헤델이 소개해 주었다. 그녀는 글을 읽는 걸 좋아했을 뿐 출판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피아노가 전공인 그녀는 유난히 문학에 관심이 깊었고, 대부분 글을 읽다가 문득 좋은 음악을 만들었다. 그런 그녀에게 헤델은 자신의 책을 출판하는 회사를 소개해 주었다. 운이 좋게도 출판사 측에서 헤델에게 일을 할만한 지인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는 제의가 들어왔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출판사를 소개해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헤델에겐. 피아노를 가르쳐 준건 헤델이었기 때문이다. 헤델과 이아는 서로 외동으로 자라면서 어릴 때부터 가까운 사이였다. 여섯 살 많은 헤델은 항상 자신의 친동생처럼 이아를 아껴왔다. 그는 문학적으로도 음악적으로 재능이 뛰어났고 일찌감치 진로를 잡아두었다. 그런 헤델과 지내며 이아도 음악과 글에 관심이 깊어졌는지도 모른다. 헤델은 그녀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 피아노를 가르쳐주었고 그녀는 그 이후 피아노를 쭉 공부해왔고 대학에서도 피아노를 전공했다. 하지만 이아는 헤델처럼 재능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었다. 노력을 하지 않아서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녀도 자신에게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고 직업의 폭이 상당히 줄어들게 되었다. 그중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던 이아는 꿈을 접게 되었다. 헤델은 이아를 보며 가슴 한편이 시큰거렸다. 어릴 적 피아노를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또 자신과 살을 비비며 너무 가깝게 지내지 않았더라면 이아는 지금쯤 다른 일을 하며 행복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항상 헤델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피아노는 이제 치지 않는 거야?”라며 그는 조심스레 물었고 카모마일 차를 홀짝였다. 말을 하면서도 이아의 표정 변화에 심기를 기울였다. 하지만 그에 걱정과는 달리 이아의 표정은 여전히 밝은 미소를 유지했다.


“작곡을 하고 싶기도 하고, 피아노를 그만 둘 생각은 없어.”


 그녀는 확고해 보였다. 헤델은 내심 불안했다. 혹시나 그녀가 ‘오빠에게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우지 않았더라면’이라던가 '피아노는 하고 싶지 않아’라던가 이런 말들을 하지 않을까 불안했다. 설령 이아가 혹시라도 피아노를 치고 싶지 않다고 해도 그에게 상처가 될만한 말들은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아는 차에서 내려 조심히 가라며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새끼손가락에는 어릴 적 헤델이 주었던 작은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오래전 검지 손가락에 끼워도 빠질 듯 말 듯 헐렁하던 반지는 이제 그녀의 새끼손가락에 딱 맞았다. 이아는 헤델에게 받았던 것들은 버리지 않고 항상 자신의 방안에 보관했다. 한 번은 바다에서 주웠던 작은 돌을 보곤 ‘언젠가 이 돌이 유성의 파편이라고 밝혀질지 몰라’하며 꼭 큰 값에 팔자는 기대에 부푼 미소를 지으며 이아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 돌도 여전히 이아의 서랍 안에 고스란히 있었다. 갑작스레 떠오른 귀여운 추억에 헤델은 미소 지었고 이아에게 손을 흔들었다. 헤델은 브레이크에서 서서히 발을 떼고 액셀러레이터를 천천히 밟았다.


*


달리는 차가 신호등 앞에서 잠시 멈춰 서고 헤델은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휴대폰에는 두통의 부재중 전화 알림이 있었다. 두통 모두 드림스토리라고 적혀 있었고 그곳은 이아에게 취직을 권유했던 출판사였다. 이아의 문제로 전화했을 리는 없었다. 이제는 그녀의 직장이고 그녀와의 문제가 있다면 헤델을 거치지 않고 바로 그녀에게 연락을 했을 터였다. 헤델은 자신에게 볼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드림스토리라고 적혀있는 부재중 알림을 눌러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은 길게 가지 않았고 상대방은 전화를 받았다.


[네 헤델입니다.]

[안녕하세요 헤델씨. 딘 로즈아입니다. 오랜만이네요.]


 차분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즈아는 드림스토리의 총책임자의 자녀였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집필하고 있는 원고가 있으신가요?]


 로즈아는 비즈니스에 있어서 냉정했고, 단도직입적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사업에 있어 상당히 많은 이윤을 창출하는 직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기적이거나 배려가 없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헤델은 그녀의 능력을 높이 사고 있었다. 그녀와 알고 지낸 지 꽤나 오랜 시간이 되었고, 오랜만에 통화를 하더라도 별다른 안부인사 없이 일을 진행하곤 했다. 오늘도 다름없이 둘의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될 것 같았다.


[딱히 준비 중인 작품은 없습니다.]


 헤델은 자신의 원고를 항상 작품이라고 불렀다. 딱히 자신의 글을 높게 평가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글을 존중했고, 사랑했다.


[그러시군요. 가까운 향후 계획에도 작품 준비는 따로 없으신가요?]


 로즈아도 그의 글을 작품이라고 불렀다. 딱히 원고라고 말해서 실수라거나 헤델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작품이라고 말해주는 게 헤델에게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아뇨. 보름 후쯤 장마가 시작될 때, 작업하려 합니다.]

[비가 내리는 이야기인가요?]


 로즈아는 출판사 직원치고 문학에 있어서 상당히 감이 없었다. 관심도 없었고 단지 가업을 이을 뿐 그녀에겐 출판사는 회사이고 사업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비즈니스에 문제가 생긴다면 문제가 될지 모르나 그녀에겐 문학의 빈자리는 큰 문제를 야기하지 않았다.


[음… 비가 내리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해가 뜨는 이야기에 가까울 것 같네요.]


 헤델은 정중히 대답했다. 로즈아도 자신이 문학에 감이 없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부끄러워하거나 창피해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항상 당당했다.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자 매력이었다.


[그렇군요. 다음 작품도 저희와 계약을 맺었으면 해요. 헤델. 특별히 책을 좋아하지 않는 저도 당신의 글에는 묘하게 끌리거든요. 또 이윤을 톡톡히 볼 수도 있고요.]


 로즈아는 말을 끝내고 가볍게 웃음 지었다. 그녀의 말은 듣기 좋으면서도 목적이 확실했고 솔직했다.


[로즈아씨가 제 글에 끌리신다니 상당히 기쁘네요. 저도 드림스토리와 오래도록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드림스토리에서도 원하고 있다면 저도 기쁘게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그럼 좋은 작품 기다리고 있을게요. 혹시 도움이 필요하거나 따로 제게 부탁할 거라도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기쁘게 받겠습니다.]

[네 좋은 작품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오늘 통화 즐거웠어요. 로즈아.]

[네. 헤델]


 로즈아는 짧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떻게 보면 이윤을 창출해주는 헤델에게 을의 입장으로 다가가 관계를 가질 수도 있지만 로즈아는 철저하게 갑과 을을 나누지 않고 동등한 위치에서 헤델을 대했고 헤델 또한 그런 점이 좋아 드림스토리와 오랜 관계를 이어왔다.

 헤델은 로즈아에게 이아에 대하여 묻지 않았다. 충분히 잘 해내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걱정되지 않았고 로즈아에게도 이아에 대한 이야기나 평가는 내심 듣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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