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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달글 Nov 14. 2020

[문곰]시간의단상(2)

후회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우리가 시간을 마주하며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다. "만약 그때 그랬더라면 지금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후회라는 것은 나중이 되어서야 돌아본다는 것인데, 돌아보기 위해서는 가던 길을 멈춰야하고, 멈추는 데에는 또한 이유가 필요하다. 보통 그 이유는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데에 있기에, 후회라는 단어를 부정적인 의미로 사람들은 사용하고 있다.


<흔히 하는 후회들>
"고등학교때 이과를 선택했더라면..."
"그때 비트코인을 샀었더라면..."
"동아리에서 A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비슷한 말이지만 긍정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추억, 회상이 있다. 추억과 회상은 후회와 마찬가지로 현재를 멈추고 과거를 보기에, 행위의 이유가 부정적인 현재에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과거를 보는 방식에서 차이를 갖는데, 후회는 '만약'이라는 시점의 분기를 통해 과거에서 가상의 장면들을 덧붙이는 반면, 추억과 회상은 과거를 그대로 재생한다. 물론 기억이라는 것이 완벽하기 않기에, 재생되는 장면들은 사실과 다를수도 있고 더욱 미화될 수도 있지만, 그것들의 근본이 가상의 것이 아니라는 데에서 후회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점을 알고, 영화에서 시간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살펴보자. 우리가 평소에 하는 후회라는 것은 사소한 것들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인간의 상상력은 무한해서, 현재에서 과거로 갔다가 알 수 없는 저 너머까지 갔다 오기도 한다. 영화 <라라랜드(2016)>가 이를 극적으로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중후반까지, 두 주인공이 어떻게 만나고 헤어지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끌어오면서, 관객들과 공통된 기억을 만든다. 그런데 결말에 다와서 '만약'의 경우를 시각적으로 빠르게 보여주며, 감정을 끌어올린다. <라라랜드>의 '이럴수도 있었는데'의 시나리오를 우리의 일상으로 가져와보면, 한 친구가 어느날 농담처럼 '그때 이랬으면 어땠을까'라는 말을 꺼낸다면, 어쩌면 그 사람이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될 것들일지 모른다.

이런 엔딩이 또 있을까


하지만 현실에서는 과거를 바꿀 능력이 없다. 그렇기에 어떤 사람들은 후회를 하기 보다는 '일어났던 것은 어떻게서든 일어났을 것'이라는 운명론을 믿기도 한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에서는 삶의 상호작용과 관련된 장면이 있는데, 간단히 표현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아다리'가 맞아야한다는 것이다. 어떤 하나라도 달랐다면,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연이라는게 과연 있을까


그렇기에 '역사에는 만약이 없다'라는 말도 있지 않을까. 혹자는 더 나아가 이 세계는 기계처럼 이미 시스템적으로 타임라인이 짜여있다고도 보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영화 <덩케르크(2017)>와 <컨택트(2017)>가 레퍼런스가 된다. <덩케르크>는 됭케르크 전투와 다이나모 작전을 소재로,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와 시공간이 한 시점에서 교차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덩케르크>는 '삶의 상호작용'을 약 2시간에 걸쳐 표현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또 <컨택트>는 과거-현재-미래가 단순히 이어진 것 뿐이 아니라 공존한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때문에 <컨택트>는 미래의 장면을 먼저, 현재의 장면을 나중에 배치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인과관계가 없는 장면들이 인과관계가 있게끔 생각하도록 착각을 준다. 결국 일어날 것은 일어나는 것일까. (이 주제는 나중에 <테넷(2020)>과 관련하여 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좌) 덩케르크와 (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 : 우리도 어떤 역사 속의 한 장면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인사이트)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는 내가 나 자신인 이유가 된다. 카프카의 <변신>에서처럼 나의 몸이 벌레로 변하더라도, 내가 나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한 나는 나인것이다. <뷰티 인사이드(2015)>에서 주인공은 자고 일어나면 겉모습이 매일 바뀌지만, 기억이 계속 유지되기에 같은 사람일 수 있다. 극중 주인공의 친구인 이동휘가 주인공이 본인인지 확인하는 방법으로도 두 사람이 공유하는 '기억'을 물음으로써 아이덴티티를 확인한다. 이러한 점에서 후회하는 일들도 지금의 내가 존재하게 되는 일부인 것이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다르더라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삶은 계속된다. 내가 500일동안 썸머라는 여자를 과거에 만났더라도 지금은 또다른 누군가를 만날 수 있고, 지금은 맞는데 그때는 틀린 것들도 있을 수 있다. <비포 선라이즈(2005)>에서 <비포 미드나잇(2013)>까지, 지나고나면 단편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순간들 속에서도 나는 종종 시간을 멈추고 더 나은 미래가 오기를 바라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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