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본가에 방문했다. 오자마자 침대에 누웠다. 월화수목금, 일을 하고 금요일 저녁 바로 운전해 집에 왔더니 너무 노곤하다. 엄마는 오랜만에 본 나를 반가워한다. 어쩌면 엄마에게는 단조롭고 공허한 집에 오랜만에 놀러 온 사랑하는 손님.
하지만 지금은 한껏 예민하다. 엄마가 거는 질문에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답변과 단답을 내뱉는다. 아. 아 알았다고. 아 그랬어. 응. 마치 말을 걸지 말라는 듯이. 5분 10분… 약간 정적의 시간이 지나갔다. 아 이게 아닌데… 또 익숙함에 속을 뻔했다. 차가운 입의 온도가 다시 올라간다.
'엄마 그래서 저녁은 뭐 먹었어?'
이내 엄마의 답변이 들려온다.
'냉모밀 먹었어~ 집에 면이 있어가지고. 치킨 먹고 싶었는데~'
'그랬어? 그냥 시켜 먹지 그랬어'
'남잖아~ 다음에 같이 먹어줘'
'아이고, 알았어'
5분, 10분 흘렀던 정적의 시간은 이제 우리가 서로를 배려하고 있다는 의미다. 예전 같았으면 그 정적의 시간 안에 서로의 서운함을 한껏 내뱉었을 거다. 너는 엄마가 말 거는데 이것도 맞장구 못 쳐주니. 예쁘게 말 못 하니. 거기에 아니 나 지금 힘들다고. 쉬고 있잖아. 안 보여?라고 대답했을 거다. 하지만 폭풍 같은 시간을 지나 온 우리는 이제 서로에게서 독립했다.
엄마는 나에게. 많이 피곤한가 보구나. 나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는 건 아닌데... 엄마는 날 기다렸을 텐데. 엄마와 나 사이, 아주 약간의 거리감은 서로에 대한 배려로 채워진다. 모녀의 사춘기가 끝나고 더 좋은 관계로 향하는 모녀의 두 번째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