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으면 듣는 소리에 집중하게 되고 눈을 감고 숨을 쉬면 온몸의 세포를 확장시킬 수 있다. 귀를 막으면 눈으로 보는 것이 생경해진다. 하나를 제한하면 하나를 깊게 느낄 수 있다.
9년 전, 어느 날 지하철에서 쓰러졌다. 귀에서 삐- 소리가 나며 구역질이 날 거 같았다. 다행히 엄마가 옆에 있어 부축을 받았고 바로 병원으로 갔다. '큰 병원에 가보셔야 할 거 같은데요'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오른쪽 귀의 청력은 돌아오지 않을 거고, 지금까지 이명이 들릴 줄은.
결국 한쪽 청력을 잃었다. 청천벽력 같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주일간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아주 강한 스테로이드 주사를 3일 동안 귀에 맞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돌아오는 청력이 앞으로 내가 가지게 될 수준이라고 했다. 3일이 지나고 다시 청력 검사를 했다. 안타깝게도 오른쪽 청력의 80%를 잃었다.
내 반응은 무심했다. '응 그렇구나. 안 들리는구나.'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기보다는 '괜찮을 거야'라고 대답했다. 다가오는 슬픈 일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괜찮을 거야'라는 말뿐이 없었으니까. 일주일간의 입원은 오랜만에 마주한 참으로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병실에 앉아서는 창밖에서 들어오는 햇빛을 자각하기 시작했고 창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봄바람을 맡을 수 있었다. 간호사 언니는 매일 괜찮냐고 물어보며 내 상태를 체크해 주었고 부모님은 어린아이처럼 나를 돌봐주었다. 그 물음들에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무심한 듯 보였지만 못 듣는다는 것에 대한 가장 큰 슬픔은 이제는 양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듣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때 알 수 있었다. 내가 얼마나 하루종일 이어폰을 꽂고 살았었는지, 얼마나 노래에 위로를 받았었는지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 적은 용돈을 모아 내가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이어폰을 샀다. 잘 때도 노래를 들으며 잤고 공부도 노래를 들으며 했다. 그런 나에게 더 이상 음악을 이어폰으로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은 가장 큰 불행이었다.
아주 오랜 겨울잠에서 깨어났다. 청력을 잃고 몸의 감각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하나를 잃으니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보였고 잘 못된 것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어쩌면 이 병은 작은 해방이었다. 어쩔 때는 주변의 소리를 듣지말고 자신의 소리를 들으라는 뜻이라고 의미부여를 하기도 했다. 귀를 막고 행동을 하면서 너의 감각들로 세상을 살아나가라고. 라면서 말이다. 나를 잃어갈 때면 눈을 감고 오른쪽 귀의 멍멍함과 이명을 듣는다. '깨어나. 일어나. 정신 차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