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아침을 맞는 방식

하루를 여는 차이 문화

by 형형색색

새벽 6시, 어김없이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소리.

'칙—칙—팔팔팔.'

그건 알람도 아니고, 자동차도 아닌, 찻주전자가 내는 삶의 소리다. 인도의 아침은 그렇게 '차이(Chai)' 한 잔으로 시작된다.

나는 인도 델리의 한 가정집에서 5년을 살았다. 처음엔 그냥 교환학생 신분으로 몇 달만 있다가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어느새 다섯 번째 디왈리를 보내고, 세 번째 몬순을 건너고, 두 번째 이웃 결혼식에 다녀왔다.

그 시간 속에서 가장 깊이 스며든 건 다른 무엇도 아닌, 차이의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그게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다.

홍차잎을 끓이는 거고, 우유 넣고 향신료 넣고 마시는 거겠지,

그냥 ‘마살라 밀크티’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차이는 ‘음료’가 아니라 삶의 의식이었다.


“차이 마셨니?”로 시작되는 아침

인도에선 “Good morning” 대신 “Chai piyo?”

의역하자면 “차이 한 잔 했어?”다.

이건 인도의 정중한 인사이자, 가장 따뜻한 관심 표현이다.

현지 가족과 함께 살던 나는, 매일 아침 할머니가 찻주전자를 올리는 걸 보며 눈을 떴다.

스테인리스 냄비에 생강을 얇게 썰어 넣고, 부드러운 홍차잎을 손으로 움켜 넣고, 그 위에 우유를 자작하게 붓는다.


가끔은 카다멈(엘라치)을 빻아 넣고, 날이 추우면 정향 한 알도 넣는다.

그 순간 부엌 안은 마치 향신료 박물관처럼 깊은 냄새로 가득 찬다.

처음엔 그 냄새가 너무 진해서 머리가 아팠다.

한국의 맑은 국이나 미역국 향과는 다르게, 이건 명확히 무거웠고, 강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향을 맡아야 아침 같았다.

나중에 알게 된 건, 이 차이가 단순한 홍차가 아니라는 거였다.

이건 ‘마살라 차이’ – 수천 년을 이어온 인도의 내공 있는 아침 한 잔이다.


인도의 길거리, ‘차이왈라’라는 풍경

인도 차이왈라.png

아침 7시쯤 되면 동네 거리는 하나둘 깨어난다.

가게 셔터는 아직 닫혀 있지만, 도로 가장자리에는 이미 몇몇 차이왈라(Chaiwala)가 가스버너 위에 냄비를 올려놓고 있다.


차이왈라는 ‘차이를 파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단순한 노점상이 아니다.

그는 이 동네 사람들의 하루를 열어주는 ‘사회적 알람’ 같은 존재다.

출근 전 정장을 입은 남자도, 셀룰러폰을 만지작거리는 대학생도, 가게 앞을 쓸고 있는 아주머니도 모두 잠시 이곳에 멈춰 서서, 작은 찻잔을 받아 든다.


인도는 차이를 마실 때 '유리컵'이나 '스틸컵'을 쓴다. 아니면 흙으로 구운 일회용 토기인 '쿨하드(Kulhar)'를 쓰기도 한다.

이 쿨하드는 한 번 쓰고 버리는 방식인데,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되어 자연친화적이다. 그 컵에 담긴 차이는 유난히 흙냄새가 섞여 깊다.

마치 ‘지금 이 순간’이 살아있는 것처럼.

차이 한 잔은 5루피에서 15루피 정도. 한화로 100~300원 남짓.

하지만 그 안에는 그 어떤 스타벅스보다도 풍성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차이에는 ‘기다림’이 있다

인도에서 차이는 ‘주문 즉시 제조’가 기본이다.

미리 끓여 놓은 음료를 따라주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차이 하나 주세요” 하면 그때부터 물을 붓고 잎을 넣는다.

그래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도,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중요하다.

나는 이 기다림의 미학이 참 좋았다.

바쁜 하루 중 유일하게, 스마트폰도 내려놓고, 가만히 서서 사람 구경을 하게 되는 순간.

이곳에선 ‘빠름’을 그다지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천천히, 제대로, 그리고 함께가 중요하다.

그 덕분일까.

차이를 받는 손길은 언제나 감사하고, 마시는 얼굴은 늘 미소가 있다.


내 안에 남은 인도의 아침

지금은 한국에 돌아와 서울의 빠른 일상에 몸을 담고 있지만,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출근 준비가 버겁고, 머릿속이 복잡하고, 마음이 허전한 날.

그럴 때 나는 아주 작은 냄비에 우유와 물을 반반 섞고, 홍차잎 한 스푼, 얇게 썬 생강 한 조각, 그리고 약간의 설탕을 넣어 끓인다.

그게 내가 가진 인도의 아침 루틴이다.

창문을 열어놓고 그 냄새가 퍼질 때면, 눈앞에 델리의 골목이 아른거린다.

스쿠터 경적 소리, 가게 앞에서 신문을 펼치는 아저씨, 그리고 “차이 마셨니?” 하고 웃는 할머니의 얼굴.


인도의 아침은 ‘차이’로 깨어난다

한국에서 커피는 ‘깨우는 음료’다.

카페인을 통해 정신을 확 들게 하고, 속도를 높이고, 리듬을 빠르게 맞춘다.

하지만 인도의 차이는 그 반대다.

천천히 몸을 데우고,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준다.

속도보다 온도에 집중하고, 말보다 향에 집중하게 만든다.

만약 당신이 인도에 가게 된다면, 꼭 새벽에 눈을 떠 차이를 끓여보길 바란다.

우유가 넘칠까 조심하며 눈을 맞추고, 향신료를 직접 으깨 넣고, 팔팔 끓는 그 순간을 온몸으로 느껴보길.

그게 바로 인도의 진짜 아침이다.

햇살보다 먼저 피어오르는 향기,

사람보다 먼저 깨어나는 찻잔,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삶의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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