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인의 하루

느리지만 풍요로운 리듬

by 형형색색

인도에서의 삶은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손목시계가 가리키는 숫자는 같지만, 사람들의 발걸음은 덜 조급하고, 말의 속도도 느긋하며, 무엇보다 기다림이 하나의 생활 방식처럼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인도 북부의 작은 도시에서 3년을 살았다.


처음엔 문화 충격 그 자체였다.

예정된 시간에 오지 않는 버스, 아무렇지 않게 ‘15분 뒤’라고 말해놓고 1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약속 상대.


한국에서 자란 나에게 그건 불편함 그 자체였고, 때로는 무례하게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그 느림 속에 어떤 풍요로움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아침, 향기로 깨어나는 하루

인도의 아침은 일찍 시작된다.

길거리엔 벌써부터 차이(Chai)를 끓이는 냄새가 피어오르고, 사원에선 스피커로 기도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침 6시 반쯤, 나는 항상 이 두 가지 소리 사이에서 눈을 떴다.

그리고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은 늘 따뜻했고, 이른 새벽부터 동네를 쓸고 있던 아주머니의 빗자루 소리는 내게 아침 뉴스보다 먼저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동네 노점상은 천천히 셔터를 올리고, 거리에 앉은 개들은 졸린 눈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누구도 서두르지 않는다.

출근길에도, 장을 보러 가는 길에도, 이웃을 마주치면 잠시 멈추고 인사를 나눈다.

“아주, 차이 마셨어?”


그 말은 인도의 하루가 ‘차이 한 잔으로 여유롭게 열린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정오, 나른함마저 자연스러운 풍경

정오 무렵이면 태양은 이미 머리 위로 쏟아지고, 거리에는 정적이 흐른다.

점심시간.


상점들도 문을 닫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고, 어른들은 커튼을 치고 선풍기를 틀어놓은 채 낮잠을 청한다.


나는 처음에 그게 신기했다.

“이 시간에 문을 닫으면 장사는 언제 해?”

그런 질문은, 인도에선 물어선 안 되는 질문이다.


인도의 한 가게 주인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장사보다 중요한 건, 하루를 제대로 살아내는 거야. 피곤하면 자야지.”

단순한 말인데, 그 안에 얼마나 건강한 삶의 태도가 숨어 있는지 나는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낮잠이 끝나면, 다시 차이 냄비에 불을 올리고, 동네는 다시 천천히 깨어난다.


그리고 햇빛이 살짝 기울 무렵부터, 아이들은 골목을 뛰어다니고, 남자들은 동네 모퉁이에서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눈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느슨한 리듬 위에 놓여 있다.



저녁, 가족과 함께 하는 진짜 시간

해가 지고 나서야 인도의 하루는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

한국처럼 ‘하루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하루를 온전히 누리는 시간’이다.


식탁 위엔 커다란 철제 쟁반이 놓이고, 그 위에 로띠, 달, 사브지, 밥, 피클이 담긴다.

그날 남은 야채로 만든 반찬이지만, 가족 모두가 모여서 손으로 먹는 그 식사는 무엇보다 따뜻하다.

TV를 보면서도 수다를 놓지 않고, 식사 후엔 옥상에 올라가 별을 보며 쉬거나, 동네 친구네 집에 잠깐 들러 이야기를 나눈다.


그 어떤 일정에도 쫓기지 않고,

그 어떤 성과에도 압박받지 않으며,

그저 사람과 사람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에 가치를 둔다.


느린 삶이 내게 남긴 것들

나는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자주 생각한다.

인도에서 배운 ‘시간의 결’에 대해서.


그곳에선 ‘무언가를 빨리 하는 것’이 꼭 능력이 아니었다.

대신, ‘누군가와 천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진짜 가치였다.


물론 인도에도 분주한 도시가 있고, 야근하는 직장인이 있고, 경쟁하는 학생들이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는 ‘쉼의 틈’은, 이 나라 사람들의 리듬이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이제 하루를 마무리할 때, 핸드폰을 잠시 내려놓고 창밖을 본다.

그게 인도에서 익힌 습관이다.

그리고 아주 가끔, 진한 차이를 한 잔 끓여 마신다.

그건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나에게 조금 느려도 괜찮다는 위로의 언어다.



느리게, 그러나 깊게 살아가는 사람들

인도는 ‘정확함’보다 ‘정성’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빠름’보다 ‘함께함’을 더 깊게 품는다.

그곳에서 나는 매일매일 가르침을 받았다.

일정을 맞추기보다 눈앞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실속보다 표정의 온기를 챙기는 것,

하루를 ‘성취’보다 ‘흐름’으로 바라보는 법.

인도인의 하루는 분명히 느리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엔 시간의 진심, 그리고 사람의 온도가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인도에서 아침을 맞는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