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신료, 색, 삶이 뒤섞인 곳
처음 인도의 재래시장에 발을 들였을 때, 나는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었다.
눈앞에 쏟아지는 색, 코끝을 휘감는 향신료 냄새, 사방에서 쏟아지는 말들.
한마디로 말하자면 ‘혼돈’이었다.
하지만 그 혼돈 속엔 묘한 질서가 있었고, 어수선함 속엔 살아 있는 온기가 있었다.
인도의 시장은 그 나라의 맥박이다.
사람이 움직이고, 거래가 이루어지고, 정이 오가고, 삶의 냄새가 농축된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인도에 진짜 발을 디뎠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델리에 위치한 카롤바그(Karol Bagh) 시장은 내가 처음으로 온전한 ‘인도 시장’을 경험한 곳이다.
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색이다.
강렬한 오렌지빛 사리, 핫핑크 커튼, 황금빛 장신구, 그리고 수북이 쌓인 고추와 울긋불긋한 향신료 통.
모든 것이 진하고, 명확하고, 어딘지 모르게 당당하다.
길가에 앉은 상인들은 가만히 앉아 눈으로 흥정을 하고,
바닥에 털썩 앉은 아주머니는 옆 사람과 가격을 비교하며 감정을 주고받는다.
구매와 판매가 마치 한 편의 연극처럼 펼쳐진다.
나는 이곳에서 바르마씨라는 향신료 가게 주인을 만났다.
그는 “이건 할디(강황), 저건 메티(호로파), 이건 가람마살라!”라며 내게 시큼하고, 알싸하고, 쌉싸래한 가루들을 연이어 들이밀었다.
그 중 일부는 맡자마자 기침이 날 정도였지만, 신기하게도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그 향들은 “나는 인도다”라고 소리치는 듯했다.
인도의 시장은 가격이 붙어 있지 않다.
그건 ‘흥정’이라는 이름의 의식 때문이다.
처음엔 “이게 얼마냐”고 물었다가, “300루피!”라는 대답에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곧바로 “그럼 안 사요”라는 말에 “그럼 200!”이 되더니, “150까지는 괜찮아”라고 돌아오는 걸 보며
여기서 중요한 건 제품이 아니라, 그 제품을 둘러싼 말의 힘, 눈빛의 교환, 그리고 일상의 농담이라는 걸 깨달았다.
흥정은 싸움이 아니다.
대화의 연장이고, 관계 맺기의 시작이다.
어쩌면 인도의 시장은 거래를 핑계로 매일 작은 인연을 맺는, 그런 곳일지도 모른다.
시장을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이곳은 단순한 판매의 공간이 아니다.
어린아이의 웃음소리, 어깨에 천을 걸친 여인의 걸음, 땀을 닦는 노인의 손, 양동이를 들고 장을 나선 아버지의 발걸음…
그 모든 것이 이 시장을 ‘살아 있게’ 만든다.
한국의 대형마트처럼 정돈된 공간은 아니지만,
이곳엔 예상치 못한 감정들이 있다.
낯선 이와 웃으며 마주치고, 모르는 향에 눈살을 찌푸리고,
처음 본 물건에 호기심을 느끼고, 익숙한 표정을 찾아 안도한다.
그게 바로 ‘시장’이라는 공간이 가진 리듬의 힘이다.
시장은 속도를 늦추고, 감각을 깨우며, 우리를 살아있는 사람으로 만든다.
몇 시간을 시장에서 헤매고 난 뒤, 나는 발끝에 먼지가 가득 묻은 걸 보았다.
손에는 작은 향신료 봉지가 있었고, 어깨에는 어느새 익숙해진 냄새가 걸쳐져 있었다.
비로소 나도 그 시장의 일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시장엔 사람들의 생계만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의 ‘성격’과 ‘기억’과 ‘시간’이 함께 흐르고 있다고.
지금도 가끔 카레를 끓일 때,
그날 사온 가람마살라를 넣으면
마치 시장 골목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혼란스럽고, 시끄럽고, 강렬하지만… 왠지 모르게 따뜻한 공간.
인도의 시장은 그 나라의 심장이고,
사람 냄새, 삶의 무게, 그리고 사랑스러운 과잉이 뒤섞인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