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천 조각, 그 이상의 이야기
인도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눈을 뗄 수 없었던 건 바로 사리(Sari)였다.
도시 한복판을 걷는 여성들의 발끝에서부터 어깨 위까지 흘러내리는 그 긴 천.
너무나 자유롭고, 동시에 너무나 단정했다.
여성의 몸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도 같고, 또 절묘하게 감추는 것도 같았다.
그건 단순한 옷이 아니었다.
사리는, 그 사람의 신분이자 정체성이고, 계절이며 감정이며 언어였다.
사리는 평균적으로 5~6미터 길이의 천이다.
단추도 지퍼도 없이, 온전히 손의 기술과 감각으로 몸에 감아 입는 옷이다.
어깨에 걸쳐지는 천자락은 ‘팔루(Pallu)’라고 하는데, 이 부분 하나만으로도 사리의 품격이 달라진다.
도시마다, 계층마다, 심지어 종교나 언어에 따라서도 사리의 패턴과 드레이핑 방식이 조금씩 달라진다.
방갈로르에서는 단정하게 허리에 꽉 조이고, 마하라슈트라에서는 물결처럼 길게 흘리며, 서벵골에서는 앞뒤로 자연스럽게 두 번 감는다.
어떤 천은 면이고, 어떤 것은 실크이며, 때로는 수작업 자수가 빼곡히 들어간다.
어떤 날은 너무나도 화려해서 ‘이걸 어떻게 일상복으로 입을까’ 싶지만,
어떤 날은 찰랑이는 그 사리가 그 사람의 생애를 고스란히 감싸고 있는 듯 느껴진다.
인도 여성의 인생에서 사리가 처음으로 ‘정식 의복’이 되는 순간은 결혼식이다.
여성들은 빨간색 또는 황금빛 사리를 입고, 머리에는 꽃을 얹고, 팔에는 유리팔찌를 잔뜩 끼운다.
그 모습은 단순한 아름다움 그 이상이었다.
결혼식은 인도 여성에게 ‘성인’의 선언이다.
그날 이후부터는 사리 입는 법을 익히고, 팔루를 어떻게 넘기고, 걸을 땐 어느 쪽을 더 감싸는지,
어깨 위로 넘긴 끝단을 때론 얼굴까지 덮으며, 자연스레 '부끄러움과 당당함 사이의 미학'을 익히게 된다.
한 지인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사리를 입는다는 건, 어른이 되었다는 뜻이에요. 내 몸의 무게를 내가 감싸는 일이니까요.”
나는 가끔 거리에서 사리를 입은 여성들을 바라본다.
어깨에 가볍게 걸친 팔루가 살랑거릴 때, 그건 마치 감정의 그림자 같다.
기분이 좋은 날엔 선명한 분홍색 실크,
누군가를 만나는 날엔 꽃무늬가 잔뜩 들어간 면사리,
어떤 날은 짙은 남색의 단조로운 패턴에 조용히 귀걸이 하나만 더한다.
말하지 않아도 그녀의 사리가 그녀의 마음을 말해준다.
그건 한국에서 우리가 옷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고, 훨씬 더 시적이다.
사리는 단순히 여성의 몸을 감싸는 천이 아니다.
그건 그녀가 살아온 시간, 기후, 환경, 감정, 문화, 언어, 침묵, 그리고 무게를 함께 감싸고 있는 천이다.
한 인도 친구가 말했다.
“사리를 입으면 어깨가 펴져요. 그건 내 어머니가 입었던 것이기도 하고, 내가 언젠가 딸에게 물려줄 것이기도 하니까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사리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옷이 아니라, 이야기였다.
매듭이 아니라, 기억이었다.
나도 한 번은 사리를 입고 인도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한 적이 있다.
현지 아주머니가 두 손으로 내 허리에 천을 감아주고, 어깨 위로 팔루를 넘겨주었다.
그 순간, 나는 비로소 어떤 존중 속에 들어간 느낌을 받았다.
내가 이 문화에 발을 들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옷을 입는 것이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걷는 동작 하나, 손끝의 위치 하나에도 신경을 쓰게 되고,
천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마음도 정돈되는 느낌이 들었다.
사리는 단지 옷이 아니라 움직임 그 자체였고,
감정의 언어였고,
전통과 현재가 공존하는 몸짓이었다.
요즘은 도시 여성들 사이에서도 사리는 점점 특별한 날에만 입는 옷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날이면 그녀들은 옷장 깊숙이 보관해 둔 그 사리를 꺼내어 다림질을 하고, 정성껏 입는다.
그것은 그저 예쁜 옷이 아니라,
자신의 뿌리를 다듬고, 다시 꺼내어 오늘의 나와 연결하는 ‘의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