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와 기획병의 함정
나는 정돈되지 않은 모습을 드러내는 걸 꺼려한다. 그 습성은 그림을 그릴 때도 자연스레 드러난다. 그래서 나는 늘 ‘기획’부터 시작한다. 아무렇게나 그리고 싶어도, 그러고 싶다고 해도, 먼저 컨셉을 정하고 그 틀에 맞게 그림을 그려 넣는다.
기획은 나에게 하나의 방패다. 자잘하고 우왕좌왕하는 나를 가리고,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선별해서 꺼낼 수 있게 해주는 ‘멋진 장치’인 셈이다.
멋져 보이고 싶은 건 누구에게나 있는 자연스러운 욕망 아닌가? 다만, 여기서 말하는 ‘멋짐’이 꼭 예쁘거나 근사한 외형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정리된 생각’, ‘명확한 취향’, ‘완성도 있는 결과물’처럼—사람들에게 내가 누군지, 뭘 하는 사람인지 한눈에 전달되는 어떤 일관성 말이다.
그런 면에서 기획된 모습은 일종의 자기소개서이자 방어막이다. ‘이 사람이 이런 걸 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쉽게 이해하게끔 만들 수 있으니까.
반대로, 너무 사적인 취향(비밀입니다 쉿)이라든지 어지러운 책상 위 풍경 같은 것들은 감춰두고 싶다. 애초에 그걸 굳이 누가 알고 싶어 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작가로서의 예의이자 태도라고.
그런데 요즘, 브이로그를 보다 문득 그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솔직한 일상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진정성 있게 느껴졌고,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담백한 장면에 담긴 솔직한 생각, 어쩌면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습관들, 지극히 평범한 하루들이 오히려 나를 끌어당겼다.
그 솔직함은 자연스럽게 구독으로, 그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만약 그들이 포근한 흰색 시트와 모닝 브런치, 미니멀 화이트 인테리어만 보여줬다면, 나는 신기해하면서 즐겁게 몇 편 정도는 봤을 것이다. 하지만 구독까지는 안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보여준 모습이 거짓되었기에 그런건 아니다. 실크 잠옷을 입고 등장한 그들은, 분명 실제로도 실크 잠옷을 입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완벽한 하루’로 기획된 브이로그는 이상하게도, 그 사람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지 않았다. 왜 그럴까?
회사는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 끊임없이 말한다. 그것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굳이 입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조금.. 어.. 민망하다.)
기획된 ‘완벽한 하루’는 정확히 말하자면, 후자의 전략이다.
제공자가 ‘내가 이렇게 보였으면 좋겠어’라는 마음을 담아 접근하는 것. 그래서 그들은 어느새 브랜드가 된다. 완벽한 기획에는 관객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것이 보는 사람에게 심리적인 거리감을 만들고 그저 먼 곳에서 바라보게만 만든다.
반면, 자신의 모습을 선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사람은 다르다. 관객들은 그 사람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스스로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아,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그렇게 공감과 유대가 생긴다.
전자가 타인이라면, 후자는 친구다.
우리는 낯선 이의 일기장은 궁금하지 않지만, 친구의 일기장은 기다려진다.
물론 기획이 필요한 순간은 있다. 무언가를 팔거나, 뚜렷한 브랜딩이 필요할 때.
하지만 아직 ‘초창기 작가’인 나는, 회사보다 친구가 되는 편이 낫지 않을까?